[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자 한국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최전선이 되었다. 그 전선의 가장 앞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에는 북한-소련-중공등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한국-미국 등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계의 나라들이 한국 땅에서 전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때 한국을 지원한 나라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국가인 16개국의 전투병 참여국가들과 전투병은 아니지만 각종 의료와 봉사활동과 원조를 해준 나라들이 있었다. 프랑스는 한국에 전투병과 함께 의료지원을 함께해준 나라로, 1950년 7월 22일 한국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여 1개 대대(전투병1,000여명)를 편성하고, 지원군(400여명)으로 편성한 군대를 파견해 주었다.
이들은 전국의 수많은 격전지에서 전투를 수행하였고, 이곳 홍천에서도 치열한 전투를 치렀는데, "쥴 쟝루이" 소령은 1950년 11월 프랑스 의무대장으로 참전하여 남성리, 지평리, 1037고지 전투 등에 참가하여 많은 부상병들을 치료하였다. 그러던 중 1951년 5월 8일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전투에서 지뢰를 밟은 한국장병 2명을 구출하고 철수하던 중 중국군이 매설해 놓은 지뢰를 밟아 순국하고 말았다. 쥴 쟝루이 소령은 당시 나이 36살이었다. 소령의 죽음이 더욱 아까운 것은 프랑스에서 의학박사까지 취득한 영재로 한국전쟁 참가가 아니었다면 프랑스에서 아무 걱정없이 잘 살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너무도 아깝게 산화한 "쥴 쟝루이 "소령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던 홍천군은 한불 수교 100돌이던 1986년 그가 한국땅에 바친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산화한 장소와 가장 가까운 이곳에 작은 공원을 세우고, 그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해마다 그가 죽은 5월 8일에는 주한 프랑스 대사를 초청하여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올해는 한불수교 137돌이 되는 해이며, 그가 산화한지 72주년 되는 해로, 쥴 쟝루이 공원에서 홍천군수를 비롯한 프랑스 인사들과 지역 주민들이 모여서 엄숙한 기념식을 거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