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하는 까마귀도 ‘반포지은’을 하는데

  • 등록 2023.12.12 1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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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5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계면조의 느낌은 어두운 단조(短調) 음계에 비교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원래 계면(界面)이란 말은 눈물을 흘려 얼굴에 금이 그어지기에 붙여진 명칭이라고 했다. 특히 슬픈 대목이 많은 <심청가>는 사설의 전개 과정이나 가락의 진행 속에서 계면 소리임이 확인된다. 6~7살 된 심청이가 “내일부터 자신이 밥을 빌어 아버지를 공양하겠다”라는 대목이나 ”고맙기는 하나 그런 말은 당초에 말라.”라고 제지하는 부녀 사이 대화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감동을 주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였다. 그 뒤로 슬픔을 느끼게 하는 계면의 소리는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심봉사가 “그런 말은 당초에 말라”고 해서 주저앉을 심청이는 애초에 아니었다. 아버지 앞에“말 못 하는 가마귀도 공림(空林)의 저물어진 날에 반포지은(反哺之恩)을 허옵난 듸, 하물며 사람이야 일러 무엇 허오리까?”라는 대목이 또한 감동적이다. 까마귀가 새끼를 위해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어 성장을 돕지만, 이제 새끼가 자라나면 먹을 것을 구하다가 늙은 어미에게 되돌려 보답한다는 말이다. 부모에게 불효하는 못된 인간들에게 회초리를 들고 가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심청이가 하는 말이 곧, “아버지 어두신 눈으로 짚은(깊은)데, 야찬(얕은)데, 천방지축 다니시다 병이 날까 염려오니, 아버지는 오날부터 집에 가만히 계옵시면, 제가 나가 밥을 빌어서 조석 공양을 허오리다.”라는 말이 바로 반포지은이라는 말이다. 이 명쾌한 설득이 아버지의 허락을 얻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심청이가 밥을 빌러 다니게 되면서 동네의 잔일도 마다치 않고 봉사해 오는 가운데, 그녀의 사정이 원근에 알려지면서 건넛마을의 장 승상 댁으로부터 모녀지간(母女之間)의 청을 받게 되는데, 이때가 심청의 나이 15살쯤 되던 시기였다.

 

하루는 공교롭게도 심청이가 장 승상 댁에 가 있는 시간에 사건이 터지게 된다. 저녁시간이 늦어감에도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간 심봉사가 급한 마음에 개천에 빠지게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눈으로 확인이 된다면 몰라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물에 빠진 심봉사가 자력으로 헤쳐 나올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다행히 몽은사 화주승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이 부분 소리 역시 진양조의 느린 장단과 슬픈 계면조의 소리로 아래와 같이 표현되고 있다.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추워 한기(寒氣)들 제, 먼데 절 쇠북소리, 날 저문 줄 짐작하고, 딸 오기만 기다릴 제, 어찌하야 못 오느냐. 부인이 잡고 말리는가? 길에 오다 욕을 보느냐? 백설은 펄펄 흩날린데, 후후 불고 앉았느냐? 새만 푸르르 날아들어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낙엽만 버석 떨어져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아무리 불러도, 적막(寂寞)공산(空山)에 인적이, 끊쳤으니, 내가 분명 속았구나. 이놈의 노릇을, 어찌를 할거나. 신세 자탄으로 울음을 운다.”

 

 

심봉사가 딸을 기다리는 급한 마음은 마냥 진양의 느린 장단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내 빠르게 몰아가는 잦은몰이 장단으로 이어진다.

 

“이래서는 못 쓰것다. 닫은 방문 펄쩍 열고,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나오면서, 청아 오느냐. 어찌하여 못 오느냐,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정신없이 나가는데, 그때의 심봉사는, 딸의 덕에 몇 해를, 가만히 앉아 먹어 노니, 도랑 출입이 서툴구나. 지팽이 흩어 짚고 이리 더듬, 저리 더듬. 더듬더듬 더듬어 나가다가, 길 넘은 개천물에, 한발 자칫 미끄러져, 꺼꾸로 물에 가, 풍 빠져노니,

‘아이고 도화동 심학규 죽네~.’

나오려면 미끄러져 풍, 빠져들어 가고, 나오려면 미끄러져 풍, 빠져들어 가고, 나오려면 미끄러져 풍, 빠져들어 가고, 그저 점점 들어가니, 아이고, 정신도 말끔하고, 숨도 잘 쉬고, 아픈데 없이 잘 죽는다.”

 

급한 상황이 한참 이렇게 진행되는 가운데, <엇머리> 장단의 ‘중타령이 이어진다. 흔히 판소리에서의 새로운 인물이 출현하면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뀌는데,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경우, 장단도 엇몰이 장단으로 처리하여 이제까지의 분위기와 다르게 진행하는 예가 많다.

 

이 중은 몽은사 화주승으로 시주 집 내려왔다가 급히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염불을 마치고 올라가며 한곳을 살펴보니, 어떠한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리 끼웃, 저리 끼웃거리고 올라가는데, 어떠한 사람인지, 개천물에 풍덩 빠져, 거의 죽게 되어 급한 마음에 물 위의 백로(白鷺)격으로 들어가, 상투를 채어, 건져 놓고 보니, 심봉사였던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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