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쯤 되면 대개의 아가씨는 넘어가기 마련이다. 자기를 예쁘다는데 싫어할 아가씨가 어디 있을까? 고향, 나이, 성씨, 코, 입, 눈, 등등 모든 것이 다 예쁘다니 그것이 빈말인 줄 알면서도 아가씨들은 일단 이 남자에게 호감이 느끼고 대하는 것이다. 한참 떠들면서 술을 먹다가 김 교수가 지방 방송을 끄라고 하더니 썰렁한 퀴즈를 냈다.
“여러분, 인연과 연인의 차이를 압니까? 옷깃이 스치면 인연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연인은 무엇이 스치나요?”
“입술!”
“정답은 아닙니다.”
“그러면 뭘까?”
“정답은 속옷입니다. 속옷이 스치면 연인이 됩니다.”
“말이 되네요, 하하하.”
김 교수가 술집에 가서 쉽게 인기를 끄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를 많이 알기 때문이다. 구세대 사람들이 익숙한 고금소총 이야기는 물론, 과거에 유행했던 참새 씨리즈, 그리고 요즘 신세대 사이에 인기인 만득이 시리즈. 그리고 술자리에서 안줏감으로 빠질 수 없는 갖가지 Y담 등등 김 교수의 이야기보따리 속에는 온갖 종류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다. 술자리의 분위기에 따라서 적절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기술을 김 교수는 가지고 있었다.
몇 차례 사람들이 재미있게 웃은 뒤에 김 교수가 아가씨에게 조용히 물었다.
“미스 최, 그런데 고향이 승주군이라고 했지?”
“네. 그렇지만 승주군에서 산 것은 아니고 본적이 거기에 있을 뿐, 초등학교부터는 서울에서 나왔어요.”
“뭐라고, 그러면 승주군 아가씨가 아니군 그래.”
“아니에요. 할아버지 산소가 거기에 있고, 해마다 아빠와 설ㆍ한가위에는 고향에 내려가는걸요. 큰아버지가 거기에 살고 계시죠.”
“그러면, 조정래라는 사람 알아?”
“그게 누구에요? 모르겠는데요.”
“태백산맥을 읽었는가?”
“태백산맥을 읽다니요. 태백산맥은 산 아닌가요?”
“에이 무식한 녀석, 산을 어떻게 읽니? 소설 제목이 태백산맥이야. 십여 년 전에 조정래라는 작가가 태백산맥 대하소설 10권을 썼는데, 대학생들에게 인기였지. 특히 운동권 학생들이 필독서로 많이 읽은 소설이야. 요즘 한창 인기인 아리랑이라는 12권짜리 소설도 그 사람이 쓴 것이지.”
“재미있는 책인가요?”
“그럼.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이지. 태백산맥은 6·25 때의 이야기이고,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때 이야기인데, 고난받는 우리 민족의 삶과 비극을 절실하고도 흥미있게 그려낸 작품이야. 언제 한번 읽어 봐. 그 조정래라는 사람의 고향이 승주군 선암사란다. 승주군에 선암사라는 절 있지? 그 절이 고향이래.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부고, 태고종은 조계종과는 달리 스님들이 혼인하는 절이야. 혼인하는 스님을 대처승이라고 말하고. 그러니까 조정래는 대처승의 아들이지. 그 책을 읽다 보면 네가 아는 전라도 쌍소리가 모두 나온단다.”
“아, 그래요? 저는 몰랐는데요.”
분위기가 무르익자, 네 남녀는 번갈아 가며 노래방 기계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방 기계는 가라오케라고도 말하는데,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 세계를 석권한 상품이다. 가라오케라는 일본말 대신에, 요즘에는 모두 노래방이라고 부르며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대중오락이 되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은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옛 기록인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우리 조상들은 영고나 동맹 등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때에는 며칠 동안이고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셨다고 쓰여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는 문화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마 종주국 일본보다도 우리나라에 노래방이 더 많을 것이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음치 클리닉’이라는 틈새 업종이 생겨났다. 여기 가면 강습비를 내고서 몇 달 동안 노래를 잘 부르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크게 효과는 없지 않을까?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린다든가 운동을 잘하는 것처럼 타고난 재능일 것이다. 연습한다고 해서 없는 재능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재능이란 다분히 선천적인 요소가 많으니까.
그렇지만 노래를 못한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래를 잘 못해도, 음정과 박자가 틀려도, 당당하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더 좋아 보인다. 생각해 보면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도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사람이 있어야 잘 부르는 사람이 돋보일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천재라면 천재라는 말은 소용없는 단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 세상에는 노래 못 부르는 사람, 운동 못하는 사람, 공부 못하는 사람, 돈 못 버는 사람, 못생긴 사람 등등이 모두 다 필요한 존재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