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물들의 바둑 사랑

  • 등록 2024.02.26 11: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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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에 웃었다 울었다, 역사 속 바둑 이야기》, 설흔, 스콜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28)

도림은 개로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신이 젊어서 바둑을 배워 자못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제 실력을 한번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개로왕이 도림을 불러들여 바둑을 두어 보니 국수의 실력이었다. 개로왕은 도림을 늦게 만난 것을 한탄하고 손님으로 받아들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 출신 바둑 고수 도림에게 속아 나라를 망친 개로왕의 이야기는 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도림은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점을 이용해 환심을 산 뒤, 궁궐 증축과 같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부추겨 국력을 소진하도록 했다. 결국 개로왕은 백제의 도읍 한성을 공격한 고구려군에 목숨을 잃고 아들 문주왕은 서울을 웅진(오늘의 공주)으로 옮겨야 했다.

 

이렇든 우리 역사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바둑 이야기가 숨어 있다. 바둑을 즐기는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바둑이 때로는 모든 것을 걸게 될 만큼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매력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설흔이 쓴 책, 《돌 하나에 웃었다 울었다 역사 속 바둑 이야기》는 우리 역사에 나오는 바둑 이야기를 마치 친한 친구에게 들려주듯 재미있게 풀어 쓴 책이다. 보통 개로왕과 도림의 이야기만 많이 알려졌지만, 삼국시대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바둑과 관련된 일화가 많았다.

 

 

바둑 때문에 나라를 망친 개로왕, 바둑을 두며 서로 믿음을 쌓고 가까워진 신라 효성왕과 어진 선비 신충, 국제상인이 드나드는 국제항이었던 고려 벽란도에서 송나라 상인과 내기 바둑을 두다가 아내를 잃을 뻔한 상인, 조선 제일의 바둑 고수를 가리기 위해 벌어진 정운창과 김종귀의 대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p.96)

김종귀는 땀이 흘러 이마를 적셨지만, 정운창을 당해낼 수 없었다. 세 판을 지자 뒷간에 가려고 일어서며 정운창에게 따라오라고 눈짓을 했다. 한참 있다 들어와 둘이 바둑을 두는데 정운창이 가끔 실수를 했다. 왜 그랬느냐 하면 김종귀가 빌었기 때문이다. - 《정운창전》

 

그 가운데 정운창과 김종귀의 대결 이야기가 특히 흥미롭다. 조선에서도 바둑은 인기 종목이었다. 임금인 광해군이 후궁과 바둑을 두어 비난을 받기도 했고, 신하가 임금에게 올린 문서에도 ‘고을들이 바둑알처럼 이어져 있는데’,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워 쌓아 올린 바둑알로도 비유할 수 없다’라는 등 바둑에 빗댄 표현이 많이 나온다.

 

요즘으로 말하면 프로 기사라 할 수 있는, 바둑만 전문으로 두는 기사도 있었다. 정운창과 김종귀도 그런 사람이었다. 김종귀가 조선에서 으뜸가는 바둑 고수라는 소문을 듣고 정운창이 김종귀에게 바둑 대결을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김종귀의 실력이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김종귀가 정운창에게 지면서 망신을 당하고, 그 뒤 아무도 바둑으로 자신을 찾지 않아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자 정운창에게 가끔 져 달라고 부탁했다. 정운창은 그 뒤 바둑을 두다 김종귀와 마주치면 슬며시 자리를 뜨거나, 어쩔 수 없이 김종귀와 대결할 때는 일부러 져 주었다.

 

정운창 이야기는 여기저기 많이 나온다. 이옥이 쓴 《정운창전》에도 나오고, 이서구가 쓴 《기객소전(棋客小傳)》에도 나온다. 정운창을 주제로 책이 나올 정도라면, 정운창은 요즘 프로게이머가 인기인 것처럼 당대에 으뜸가는 인기를 자랑하는 바둑기사가 아니었을까?

 

검은 돌과 흰 돌이 빚어내는 무궁한 조화, 그 세계에 빠져든 사람은 예나 오늘이나 많았다. 바둑은 우리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놀이의 하나다. 일본 왕실의 유물을 보관해 놓은 정창원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보낸 나무 바둑판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이 보관되어 있을 정도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 깊숙이 스며든 ‘바둑’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평소에 바둑을 즐긴다면, 또는 바둑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돌 하나에 울고 웃었던 옛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질 것이다.

 

《돌 하나에 웃었다 울었다 역사 속 바둑 이야기》, 설흔(글), 최미란 (그림), 스콜라, 8,550원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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