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16년 전에 경남에서 열린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 가운데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준 생태 관광지로 첫손 꼽힌 데가 바로 창녕의 ‘우포늪’이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는 창원의 ‘주남저수지’도 거기에 못지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들 두 관광지의 이름이 하나는 우리 토박이말 ‘우포늪’으로 람사르 정신에 잘 어우러지지만, 다른 하나는 ‘주남저수지’라는 한자말이어서 아쉽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주남저수지’는 아무래도 일제강점기 때에 바꾸어 쓴 이름일 터이고 본디는 틀림없이 ‘주남못’이었을 것이다.
‘못’은 쓸모 있을 적에 쓰려고 사람이 땅을 파고 둑을 쌓아서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이다. 못에 가두어 두는 물은 거의 벼농사에 쓰자는 것이라 논보다 높은 산골짜기를 막아서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못은 거의 벼농사에 쓰자고 물을 가두어 두지만, 바닥의 흙이 좋으면 연을 길러서 꽃도 보고 뿌리를 캐서 돈을 벌자고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연을 키우려고 만든 못을 ‘연못’이라 부른다.
그리고 연못은 집 안에 뜰을 꾸미느라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뜰 안의 연못에 키우는 연은 꽃을 보자는 것일 뿐 뿌리를 팔아서 돈을 벌자는 것은 아니다.
‘늪’은 ‘못’처럼 물을 가두어 놓은 곳이 아니라 물이 저절로 가두어져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늪은 어떤 과녁을 겨냥하여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땅이 낮아서 저절로 물이 고인 곳이다.
가람(강)이나 내가 흘러가다가 굽이를 틀어 버리고 큰 물줄기에서 동떨어져 늪이 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이 땅이 아래로 꺼져 내려서 물이 고여 늪이 되기도 한다. 이런 늪은 못과 달라서 물을 빼어 흘려보낼 수가 없다. 늪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물을 퍼서 올리지 않으면 저절로 흘러가도록 해 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일부러 묻어 버리지 않는다면 물과 함께 푸나무와 벌레와 짐승 같은 온갖 목숨들이 자연 그대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잃어버린 자연의 본디 모습을 찾아 지키고 가꾸려는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가 오래된 늪을 찾아 열리는 것이다.
▲ 사람이 땅을 파고 둑을 쌓아서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저수지'라고 부르지말고 "못"이라 해야 한다. (그림 이무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