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아가씨의 이름을 모두 자기 아내 이름으로

  • 등록 2024.07.19 10:55:26
크게보기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 번 찍어도> 2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모처럼 집을 떠난 남자들은 새장에서 벗어난 새 같은 기분이 되었다. 가장의 책임과 교수의 의무를 벗어나 모두 홀가분한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저녁식사 뒤에 집을 떠난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술집에 갔다. 서울에서 술집에 가면 룸에 들어온 아가씨가 혹시 학생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사실 근거가 있다. 장 교수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사업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술집에서 만나 사귀던 아가씨가 너희 학교 학생인데 요즘은 잘 만나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아가씨의 이름을 대면서 전화번호를 알아봐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더란다. 김 교수도 그런 비슷한 말을 주변의 몇 사람에게서 들었다. 술집에 갔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자기를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학교와 학과까지도 스스럼없이 밝히더라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은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술집에 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교수 처지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가 자기 강의를 듣는 학생이 우연히 술자리에서 옆에 앉게 된다면? 술맛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교수라는 직업이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유일하게 그 점만은 좋지 않다.

 

그런데 서울을 떠나 멀리 유성에 왔으니 김 교수는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게 되고 모처럼 기분 좋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기분인가 보다. 남자 수만큼 아가씨가 들어왔다. 파트너가 정해지고 술잔이 돌았다. 김 교수는 옆에 앉은 아가씨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젊은 아가씨는 모두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젊었을 때는 “이 아가씨는 코가 좀 못생긴 것 같고, 저 아가씨는 입술이 너무 두텁고...” 등등 조건이 까다로웠다. 그런데 나이 40을 넘어 50을 바라보게 되자 이제는 눈이 늙어졌는지 무디어졌는지 그저 젊은 아가씨는 모두 예뻐 보인다. 젊음이란 그래서 좋은가 보다.

 

“자기소개를 해야지.”

“안녕하세요. 미스 최입니다.”

“최 무어? 이름도 말해야지.”

“최 진실입니다.”

“영화배우 이름하고 똑같구나. 그런데 최진희라고 이름을 바꾸어라. 앞으로는 진희다.”

“왜요?”

“나의 애인 이름은 모두 진희다. 너는 오늘 나의 애인이 될 운명을 가지고 이 방에 들어온 여자다. 그건 피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이다. 내 애인이 되려면 이름은 무조건 진희다. 그런데 진희야, 너 참 미인이구나.”

“알겠어요, 오빠. 최진희입니다.”

“그렇지. 예쁘게 말하는 입도 참 예쁘네. 예쁜 진희야 술 한 잔 따라야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빠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김 이사다. (일행은 술집 입구에서 지금부터는 교수 대신 이사로 호칭을 바꾸어 부르기로 약속하고 들어왔다.) 저분은 최 이사님이고, 그 옆은 가장 영계인데, 장 이사님이다.”

 

 

김 이사가 아가씨의 이름을 진희라고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신문의 토막기사를 보니 어떤 사내가 잠꼬대하다가 이혼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혼 사유가 우습다. 자다가 자꾸 여자 이름을 부르는데 아내 이름이 아니고 술집 여자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본 이후 김 이사는 술집에 가면 아가씨의 이름을 모조리 자기 아내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다. 잠꼬대 실수를 방지하려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진희는 대전에서 수영 강사를 한다는 직장 여성이었다. 서울에서만 직장 여성이 술집까지 진출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한 풍조가 대전까지 내려온 모양이다. 하기야 서울~대전 거리가 차로 2시간이면 충분하니 새로운 풍조가 내려오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김 이사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의 수영 강사가 여성이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서 야릇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렇게 타락했나?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김 이사 탓도 있을 것이다. 김 이사 같은 남자들이 술집에 와서 돈을 펑펑 쓰지 않고 미국 남자들처럼 집에서 아내하고만 포도주를 쨍하거나 동부인하는 파티 같은 데서만 점잖게 술 마신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인데...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