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섯 번째 만남
일주일이 조금 지나 미스 최 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이 금요일인데 《아리랑》 제5권과 선물로 준 책을 다 읽었으니 만나자고 한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만날까 예상했었는데, 너무 속도가 빠르다. 이러다가 일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젊은 아가씨가 만나자고 하는데 남자로서 고자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거절한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5번 만났지만 아직까지 금전적인 면에서 그리고 성적인 면에서 부담이 없이 그저 친구 만나듯 했으니 더욱 뿌리치기 어렵다. 김 교수는 5시에 잠실의 호텔로 가겠다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김 교수는 프라이드를 운전하고 잠실로 갔는데, 그날은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차가 밀려 5시 10분에야 겨우 도착했다. 십 분 지각이다. 2층 커피숍에 올라가 둘러보니 아가씨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가 갔나? 김 교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 나이에 바람맞는 것은 아닌가? 그럴 리가 없지. 아, 내가 아가씨에게 빠져드는가 보다. 김 교수는 ‘아가씨가 조금 늦겠지’라고 위안하면서 제일 안쪽 자리에서 입구를 바라보며 소파에 앉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지루한 법이다.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감을 느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커피숍 아가씨가 넓은 종이판에 ‘000 씨’라고 써서 통로를 돌고 있다. 카운터에 전화가 와 있다는 연락 방법이다. 김 교수가 쳐다보니 자기 이름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가서 전화를 받았다. 미스 최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오빠?”
“그래, 나다. 거기 어디야?”
“여기 집이에요. 지금 갈께요, 오빠. 기다리세요.”
“알았다. 기다릴게.”
십 분도 안 되어 미스 최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예쁜 코트를 걸치고 화장을 꽤 진하게 한 모습이었다. 여자는 젊어야 아름답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전에는 예쁜 여자가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젊은 여자는 모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순전히 나이 탓인가 보다. 아가씨는 김 교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 교수는 일어나서 테이블을 돌아 아가씨 옆에 앉았다. 앉자마자 손을 잡았다. 손이 차거웠다.
“잘 있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손이 차냐?”
“날씨가 쌀쌀하네요. 오빠, 많이 기다렸어요?”
“어, 조금. 그런데 여자가 이렇게 손이 차가우면 어떻게 해? 평소에도 손이 차니?”
“예, 좀 찬 편이에요.”
“여자가 손이 찬 것은 좋지 않지. 혹시 아랫배도 차지 않니?”
“네, 그래요.”
“여자가 배까지 차다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야. 한약이라도 한 재 지어서 먹어라. 악착같이 돈만 벌려고 하지 말고. 아프면 돈도 다 소용없다. 네가 병나면 너만 서럽지. 누가 너를 돌보아 줄 수 있겠니?”
“알았어요. 오빠.”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
“화장하느라고 좀 늦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