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관 신분으로 국경을 지켜내다

  • 등록 2024.09.16 11: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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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우리나라 외교관들》 최은영, 해와나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외교관.

참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직업이다. 낯선 문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다가도 한순간에 무거운 나라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멋지고도 위험한 자리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명예와 굴욕이 교차하는 삶이다.

 

지금이야 전문적인 외교 교육을 받은 직업 외교관이 있지만, 옛날에는 문무대신이 외교관 역할을 겸했다. 일반적인 공무를 보다가 사신이 올 때 영접하거나 타국에 사신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사신으로 잘못 갔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전쟁을 결심할 때 사신을 본보기로 처형하기도 하고, 옥에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기도 했다. 게다가 사신을 어떻게 영접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국가적 문제가 결정되기도 했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은영 쓴 이 책, 《역사를 바꾼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이런 압박감을 뚫고 훌륭하게 국익을 지켜낸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이야기다. 흔히 훌륭한 외교관의 대명사로 알려진 고려시대 서희와 오늘날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뿐만 아니라, 김지남, 조엄, 홍영식 등 많이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그 가운데 통역을 담당하던 역관 신분으로 조선의 국경을 지켜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김지남의 이야기가 특히 흥미롭다. 김지남은 청나라 사신단을 영접하는 조선 사신단의 수장이었던 접반사(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벼슬) 박권을 보좌하는 역관이었다.

 

청나라에서 사신단이 온 것은 백두산을 둘러싼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였다. 압록강가에 온 청나라 사신단은 갑자기 백두산까지 갈 말 백 필을 내놓으라며 몽니를 부렸다. 김지남은 병자호란 이후 걸핏하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청나라 사신단을 상대로 겨우 말 40필로 합의를 보았다.

 

게다가 청나라 사신단 우두머리 목극등은 갑자기 나이 많은 조선의 접반사와 함께 백두산을 오를 수 없다며 트집을 잡았다. 청나라 사신단만 백두산을 오르면 국경을 자신들 마음대로 정해버릴 수 있었기에, 조선 또한 어떻게든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지남은 기지를 발휘해 목극등에게 화원을 동행시켜 백두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의 명산인 백두산 그림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하면서 은근히 백두산이 조선 산임을 강조했다.

 

목극등의 마음을 산 그는 사신단에 같이 온 아들 김경문을 동행시켜 목극등이 마음대로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견제하며, 백두산이 조선 땅임을 계속 상기시켰다. 이런 노력 덕분에 목극등은 비교적 우호적으로 영토 구분을 마무리했다.

 

(p.79-80)

“나라를 위해 이리 헌신적으로 일하는 역관은 처음 보오.”

목극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김지남에게 지도를 건넸다. 그제야 김지남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목극등에게 예를 갖추었다.

조선 사신단의 천막으로 돌아오며 김지남은 다시 지도를 펼쳤다. 백두산에서 압록강까지 굵게 그어진 선이 도드라져 보였다. 이 지도는 청과 조선의 경계가 처음으로 기록된 문서였다.

‘청나라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땅을 지켜내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내가 할 도리는 다 했구나.’

역관으로 살아온 평생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한 김지남과 더불어, 영조 시절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고구마를 들여온 조엄 또한 국위를 떨치게 한 외교관이었다. 대마도 구석구석을 물색해 씨고구마를 구해 조선으로 보내는 등 부족한 곡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쓴 그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조선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군관으로 같이 온 최천종이 의문의 살해를 당한 것이다. 최천종을 칼로 찌른 범인을 찾기 위해 일본에서는 수사단을 꾸리는 한편, 조엄에게 일단 조선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조엄은 최천종을 죽인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자리를 뜨지 않겠다며 일본 수사단의 관사에 머물렀다. 마침내 범인을 잡고 보니, 대마도 역관 스즈키 덴조가 조선 사신단이 체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던 인삼 무역에서 자신에게 배분된 이익금이 너무 적음에 앙심을 품고 벌인 일로 드러났다.

 

(p.105-107)

조엄은 마음을 추스르고는 통신사 일행을 숙소 마당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최천종을 죽인 범인이 잡혔다고 알렸다.

“여기서 최천종의 장례를 치러야 할 터,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우리 조선에서 갖고 온 조선의 물건으로만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 그래야만 나라를 위해 험한 뱃길을 마다 않고 온 조선인 최천종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다.”

조엄은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인삼을 들여와 판매에 열을 올린 일부 사신단을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관복으로 수의를 지어 최천종의 장례를 치렀다.

 

교통조차 편리하지 않았던 시대, 산 건너고 물 건너서 가야 하는 외국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본으로 가는 뱃길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였다. 비록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외교관과 역관들은 슬기롭게 대처하며 나라의 위신이 손상되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오늘날에도 훌륭한 외교관이 배출되고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한 역사 속 외교관들을 돌아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순간마다 나라의 이익을 위해 힘썼던 외교관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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