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적어도 한 번은 이방인이었을 것, <조용필>

  • 등록 2024.09.30 11: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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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혁의 K-POP 서곡 5

[우리문화신문=임세혁 교수]  십수 년 전 군대에서 제대하고 스승님이 운영하셨던 와인바에서 노래도 하고 매장 관리도 하면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모 가수가 신보 발매와 함께 가게를 하루 전세 내 공연을 진행하는 바람에 방문하신 고객분들에게 일일이 상황설명을 하고 돌려보내야만 했던 날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설명을 듣고 돌아간 사람들 가운데 유명 배우들이 꽤 있었다. 그렇게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가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대관 공연이 진행 중이라 매장 이용을 하실 수 없다고 말씀드리려 다가가려다가 들어온 사람을 확인하고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런데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관객들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뒤를 돌아봤으며 공연하고 있던 가수와 밴드는 숫제 연주를 멈추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가왕 조용필이었다.

 

 

그 동네에 있는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유명한 양곱창집의 사장님이 가끔 그의 전화를 받고 직접 양곱창을 포장해서 배달하러 뛰어간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실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가게 안을 둘러보고서 상황을 파악한 그는 내가 설명하러 가기도 전에 알겠다는 듯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 짧은 찰나에 불과한 순간, 무대 위에 가수가 있는데도 공연장 안의 모든 이목을 순간적으로 집중시켰던 가왕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았다.

 

조용필,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유일한 가수이며 우리의 대중음악이 여러 장르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해온 거장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상징이며 연예인으로서의 인기와 음악가로서의 위상을 한 몸에 가졌던 인물이다. 그의 수많은 대표곡과 평단의 찬사가 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도, 사실 나는 그의 음악에 크게 열광하는 편은 아니다.

 

사실 이건 내가 음악을 듣고 자란 시기와 관련이 있는데 조용필은 80년대 후반부터 후배들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가요대상 수상을 거부했고 당시 나는 가요보다는 영미권 팝음악에 열광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용필의 전성기를 내 눈으로 보고 느낄 기회가 없었다.

 

오해는 마시라. 나는 가왕 조용필의 업적과 함께 그가 시도해 온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그 결과물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의 곡 중에 즐겨 부르는 곡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반응과는 다르게 선뜻 대답하지 못할 뿐이다. 거기다가 조용필은 김희갑, 양인자 부부와 작업한 결과물이 많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김희갑의 곡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듣고서 즐길 일이 없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라오면서 그의 노래와 관련된 기억이 아예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닌데,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노래 한번 해 봐라.’라고 할 때 가장 많이 시켰던 곡이 ‘용필 오빠’ 노래였다. 나름 의뢰인들의 주문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래야 용돈을 주니까) 조용필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하필 먼저 들어본 노래가 ‘허공’,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 겨울의 찻집’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트로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런 까닭으로 조용필이 트로트 가수인 줄 알고 모든 관심을 접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가요 톱텐>을 보고 있는데 조용필이 나와서 신곡을 발표했다. 또 그저 그런 트로트겠지 하고 있던 내 귀에 굉장히 세련된 편곡의 노래가 들렸다. 조용필 13집의 수록곡 <꿈>이었다. 그리고 이 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왕의 곡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들었던 세련된 편곡에는 이유가 있었다. 1991년 당시에 조용필은 자신의 밴드인 <위대한 탄생>를 잠시 해산하고 톰 킨과 기타리스트 마이클 랜도우 같은 미국의 정상급 음악가들과 협업하여 음반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런 작업의 결과물이 13집으로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다른 음반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수준을 보여주는 음반이며 내가 들었던 <꿈>은 그 앨범의 대표곡이었다.

 

 

이제 드디어 내가 부를 수 있는 ‘용필 오빠’의 곡이 생겼다며 기뻐한 나는 엄마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엄마가 이 노래를 꽤 마음에 들어 하셔서 여러 번 불러드린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엄마는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그때만 해도 내가 노래를 생각보다 잘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속으로 자화자찬했었더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엄마가 지었던 미묘한 표정은 내 노래 실력에 대한 게 아니라 고향을 뒤로하고 홀로 서울로 올라와 겪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 조용필 <꿈>

 

조용필은 이 곡을 만들게 된 계기를 돌아보며 서울에 상경해서 힘들게 살아가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의 이야기를 신문 기사로 접하고서 쓰게 되었다고 술회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곡의 가사는 꿈에 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꿈을 향해 가다가 겪게 되는 좌절과 그에 따른 향수에 관한 내용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굳이 도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는 때가 있다. 학교, 군대, 직장같이 그동안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롭게 모든 걸 시작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생에 한 번 정도는 공평하게 주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9년도 작품 <마녀 배달부 키키>에 보면 마녀들의 풍습에 따라 집을 떠나서 새로운 마을에서 생활하는 주인공 ‘키키’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빗자루 타는 기술을 이용하여 택배 배달을 시작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잃고서 호기롭게 집을 떠나던 초반부와 달리 향수병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어린 시절에 볼 때와 지금 다시 볼 때 감상의 무게가 다른데 주인공 ‘키키’가 겪게 되는 시행착오의 모습들에서 서툴렀던 내 지난 날들을 투영해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의 지난날을 떠올려보자. 돈이 많든, 적든, 배운 것이 많든, 적든 간에 우리 모두 인생에 적어도 한 번쯤은 이방인이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늪인지 일일이 다녀보고 알아가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 이 곡은 앞으로의 ‘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난날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물론 그 경험을 얻음으로써 늘어난 건 잔소리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임세혁 교수 sehyukl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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