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 12월 첫날 저녁 5시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가치하다’에서는 <김연정의 승무와 태평춤 이야기> 강연콘서트 공연이 열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김연정 춤꾼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 낭송하며, “이날 공연에 오신 분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온 것이다. 저에겐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고백한다. ‘강연콘서트 공연을 하기로 하고선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한 것은 아닌가’라고 고민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말했다. “오늘 공연할 승무와 태평춤은 하늘의 춤과 땅의 춤이라 할 것입니다. 승무는 하늘의 이치, 곧 자연과 만물의 변화 원리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춘다면, 태평춤은 땅의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보듬는 마음으로 춘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춤은 나에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 말을 관객 여러분께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김연정은 그냥 춤꾼이 아니라 강연콘서트를 해야 할 만큼 춤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하면서 그를 보러온 사람들에게 함께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판소리에서 완창한다면 보통의 내공을 가진 소리꾼은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춤에서는 완판 춤을 춘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승무’ 한 종목으로 40분가량을 춤을 추는 김연정은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그 긴 시간 춤 동작을 반주에 맞춰 한 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혼신을 다 하는 공연이었다.
장삼 자락을 휘날리면서 춤을 추고, 힘껏 북채를 두드리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김연정의 내공이 쏟아지면서 그 긴 40분의 시간이 어느새 지나버리고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갈채는 쏟아졌다.
승무가 끝나자 반주하고 있던 김용성 명인이 유인상 명인의 장구 반주에 맞춰 아쟁산조를 연주했다. 오열하는 듯한 아쟁산조 소리는 아녀자의 슬픔이 아닌 남정네의 눈물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것은 소리가 무겁고 장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쟁은 느린 진양조 가락에서는 격정적으로 흐느끼다가 중모리ㆍ중중모리로 이어지고 빠른 자진모리와 휘모리로 넘어가면서 차츰 한을 풀어헤치다 드디어는 한을 뛰어넘기까지 한다.
아쟁산조가 끝나고 다시 김연정이 마이크를 잡았다. “태평춤은 경기도당굿의 악과 춤에 바탕을 둔 춤으로 우리춤의 특징인 무속적인 원형성과 즉흥성이 잘 살아 있는 춤입니다. 한성준, 한영숙 선생께 이어받고 거기에 이애주 선생님께서 70, 80년대 시대의 아프고 힘든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 안으며 재구성하셨는데,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춤을 재구성해 간 스승의 마음을 한층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귀한 유산을 물려주신 이애주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라고 말한다.
태평춤을 추는 동안 음악감독 겸 장구 유인상, 대금 정동민, 피리 고령우, 아쟁 김용성, 꽹과리 정부교, 징 박주홍 등이 하나가 되어 태평춤의 완벽한 바탕이 되어 준다. 무속적인 원형성과 즉흥성을 완전히 살려 줌으로써 김연정의 태평춤이 완전히 비상하도록 했다. 특히 춤을 추는 내내 유인상 음악감독의 구성진 구음은 관객들을 꼼짝 못 하게 한다.
<김연정의 승무와 태평춤 이야기> 공연은 이로써 완벽한 강연콘서트가 되었다. 그동안 조지훈의 시 ‘승무’만 되뇌던 사람들도 이젠 완전한 ‘승무’ 춤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더구나 하늘과 땅의 춤을, 김연정을 통해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마포 창천동에서 온 고연홍(47) 씨는 “과거 승무를 여러 차례 보았지만, 완판 승무, 그것도 김연정 춤꾼의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동을 본 것은 그동안 본 승무를 완전히 잊게 했다. 더구나 강연콘서트를 통해서 승무와 태평춤의 의미를 완전히 다잡아 준 것도 오늘 공연을 본 관객에게는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여덟째 절기인 소만(小滿) 무렵 어떤 이들은 손톱에 봉숭아물을 물들이고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빠지지 않으면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첫눈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며칠 전 첫눈이 내렸지만, 어쩌면 12월을 시작하는 첫날 김연정의 공연이 또 다른 첫눈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