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배용준.
지금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한때는 온 세계, 특히 아시아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류스타였다. 《겨울연가》의 성공 이래 그가 관심을 가진 모든 것은 큰 화제가 되었고, 그가 방문한 장소들은 일본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인기가 엄청났다.
배용준이 2009년, 여행 수필집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낸 여행》을 냈을 때도 반응은 뜨거웠다. 책에 나온 장소들이 관광 명소가 되었고, 세계 각국에 번역 출판되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나온 지 15여 년 만에 펼쳐본 이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단지 한류스타가 썼다는 이유로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라면 찬찬히 음미할 만한 대목이 많은,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여행 수필이었다.

책은 ‘머물다’, ‘떠나다’, ‘버리다’, ‘사색하다’, ‘돌아오다’ 등 여정을 떠올리는 말들로 구성된다. 한국문화의 본산을 찾아 떠나고, 거기서 한 체험과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놓는 방식이다. 가령, ‘떠나다’ 편에서는 옻칠 장인의 공방을 찾아 옻칠을 배우고, 절에 가서 여러 날 머물며 절 음식을 맛보고, 차를 덖는 과정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며 한국 차를 음미한다.
그가 우리 도자기의 미감에 대해 평해놓은 부분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자기에서 우러나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고귀한 단순성’이라 보았다. 우리 땅에서 나는 흙으로 만드는 자기는 완만하고 뭉긋한 산천의 정서가 담겨있어 단순하면서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p.226)
요한 요하임 빙켈만은 『고대 예술사』에서 그리스 걸작의 중요한 특징으로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성’을 꼽았다. “표면은 동요하더라도 그 깊은 속은 변함없이 고요한 바다처럼, 그리스 인물들의 표정은 열정에 의해 흥분해 있기는 하나 언제나 위대하고 침착한 영혼을 보여준다.” 나는 이 같은 ‘고귀한 단순성’의 일면을 그리스 조각으로부터가 아니라 한국의 자기에서 비로소 처음 발견했다. 한국의 도자기가 색과 형태 발달의 극치를 거치지 않고도 인류 보편의 단순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연환경의 영향도 컸으리라 짐작한다. 아마도 변화가 급격하지 않고 고요함을 그 근저에 품은 산천의 풍경이, 인간의 집착과 욕망을 잠재우고 볼수록 우러나는 아름다움을 한국의 도자기에 담았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아름다움이 일본에서 더 사랑받은 예도 있다. 15세기 일본, 무로마치 시대 사람들은 다도를 즐겼다. 그 시대에 일본에서 유행하던 미감이 적막함, 쓸쓸함, 스산함이었는데, 무심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던 조선의 분청자다완은 무로마치 다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선에서 건너간 분청자다완을 일본인들은 ‘고려다완’, ‘조선다완’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했다.
미륵사를 찾은 지은이 배용준이,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무왕과 그 왕후를 설명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우리가 흔히 ‘서동요’로 알고 있는 서동과 선화 공주가 바로 무왕과 그 왕후다. 적대국 왕족이자 선남선녀였던 두 사람의 혼인은 오늘날의 ‘세기의 결혼’ 못지않게 엄청난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미륵사를 보고 타지마할을 떠올린 지은이의 생각도 퍽 흥미롭다.
(p.255)
문득, 미륵사는 무왕이 왕후에게 선사한 타지마할이 아니었을까 하는 로맨틱한 생각도 들었다. 적국에서 온 공주인 그녀는 어쩌면 백제의 귀족세력들로부터 한 나라 왕비의 지위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는 왕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사랑에 있어 잔인한 일이지만, 왕은 귀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여러 부인을 들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안한 마음이 그지없었을 것이다. 해서, 무왕은 지상에서 가장 큰 사찰을 왕후에게 지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세종대왕을 묘사한 글에서는 그의 위대함을 끊임없는 정보의 습득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대화하고 회의하고 토론하는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찾았다. 아무리 지도자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도 함께 나아가지 않으면 성취를 이룰 수 없다. 다양한 재능과 강점을 지닌 인재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나간 것, 그것이 치세 기간 엄청난 업적을 이뤄낸 비결이었다.
(p.265)
세종대왕은 경연을 3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대왕의 즉위 첫 마디가 당시 도승지 하연에게 말한 “우리 논의합시다”였다고 한다. 꼭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반대하더라도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더 큰 것을 얻는 지름길일 것이다. 자신과의 대화, 세상과의 대화를 포기한 사람과 집단은 당연히 정체되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무릇 잘된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전대(前代)의 치세와 난세(亂世)의 발자취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요, 그 발자취를 돌아보려면 오직 역사의 기록들을 상고하여야 할 것이다.(세종 23년 6월 28일)”
고조선 때부터 전해진 아주 오래된 놀이, ‘윷놀이’에 담긴 천문의 이치도 무릎을 치게 한다. 윷말을 옮기는 윷판은 사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별들을 나열한 것이다. 윷말이 마지막으로 남쪽에 있는 곳, 곧 ‘남두육성’ 자리를 통과하면 놀이가 끝난다. 북두칠성은 사후 천상세계를, 남두육성은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
(p.287)
윷판은 현재 네모난 형태지만 옛날에는 둥근 원형이었다. 별들이 하늘을 한 바퀴 도는 천체의 운행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윷판 안에 찍혀있는 점은 모두 29개인데, 그 중 가운뎃점이 북극성에 해당하고 나머지 28개의 점이 이를 중심으로 도는 하늘의 28수 별자리다. 옛사람들은 이를 놀이화해서 하늘의 법도를 인간의 삶에 투영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몰랐을, 아니면 알고서도 무심코 지나쳤을 우리 문화의 깊은 원리를 가만히 일깨워준다. 사진과 글이 혼합되어 너무 듬성하지도, 너무 빽빽하지도 않은 편집도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한다. 1년 동안 우리 문화를 보고 느끼며 사유한 흔적이 드러나는 고품격 수필집이다.
우리 문화의 매력은 알면 알수록 새롭게 보이는 깊이에 있는 것 같다. 한옥, 한복, 한글, 이 모든 것이 무심해 보여도 그 안에 철학과 미감이 짙게 녹아있음을 더욱 체감한다.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활용해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려 노력한 지은이의 노력에 다시 한번 큰 손뼉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