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젊은 소리꾼, 노은주가 목포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는 이야기, 그가 근무하고 있는 <판소리보존회>는 일제강점기 <조선성악연구회>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이야기, 동 연구회에 참여했던 당시 인물들의 공연물이나 음반들이 이 분야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소리꾼, 노은주의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이전에도 소리가 깊고, 공력이 들어있어 인정은 받고 있었으나, 전통과 권위가 있는 대회에서 장관상이나 총리상을 뛰어넘는 수상 경력이 없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위의 아쉬움을 사고 있었다.
그러던 차, 2024년 7월 목포에서 열렸던 제36회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창부에 참여했던 그는 심사위원 전원의 만점으로 대상(대통령상)을 받게 되면서 자타가 인정하는 명창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처럼 노은주 소리꾼을 명창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지도해 주고, 이끌어준 분들은 여러분이지만, 누구보다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소리의 세계를 안내해 준, 강도근 명창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주신 부모님과 인심 좋은 고향, 남원도 잊을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고 강도근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그때는 교재(敎材)도 없이, 그냥 알려 주시는 대로 가사를 받아 적어 가며 대목, 대목들을 따라 불렀지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조금씩 가사도 다르게 부르시고, 다른 가사에 따라, 가락도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 제가 큰 발견이나 한 듯 손을 들고 ‘선생님! 소리 틀렸어요’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저에게 ‘그럼 너 배운 대로 불러 보라’고 해서 불렀는데, 뒤에 알고 보니 선생님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다양한 사설과 가락으로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제가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 기억에 따라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내려주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옛 지도방법은 나름대로 장점도 있겠지만, 교재(敎材)를 통해 전수가 이루어지도록 개선되어야 할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더욱이 처음 판소리를 접하게 되는 어린이들이나, 초보자들에겐 그 수준에 알맞은 교재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은주의 첫 스승, 강도근(1918~1996) 명창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9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는 유명 국악인들이 많이 나왔는데, 대금 산조의 명인 강백천이 그의 사촌형이고, 국극(國劇)으로 이름을 날렸던 강산홍, 가야금 병창의 강정렬, 그리고 가야금 산조의 강순영 등등이 가까운 집안이며 친척이다. 그의 장기 대목은 <흥보가> 가운데 ‘제비 후리는 대목’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은 동편제 명창이었던 김정문에게 배운 뒤, 상경해서 송만갑에게 판소리 5바탕을 배웠고, 그 뒤에는 지리산 일대에서 7년여 독공(獨工)한 뒤에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웠다고 한다. 해방 뒤에는 여러 창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목포와 이리, 여수, 순천 등지의 여러 국악원에서 판소리 강사를 지내다가 1973년 무렵, <남원국악원>에서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속음악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강도근 명창은 돈이나 명예를 좇지 않는, 그야말로 순수한 소리꾼이었다고 한다. 동편제 소리의 맥을 이어오면서 농사꾼임을 자처하며 고향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선생은 70살에 국가무형문화재인 판소리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아 활동하다가 1996년 세상을 떴다. 여류 명창 안숙선도 초창기 그가 길러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
젊은 명창, 노은주도 어린 초등학교 시절부터 강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는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선생을 더욱 그리워하며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선생님께 단가로 <백발가>도 배웠고, 판소리 <흥보가>도 배웠어요. 선생님의 지도방법은 소리 초입부터 시작하여 끝까지 한바탕을 이어가며 지도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유명한 눈 대목들을 뽑아서 먼저 가르쳐 주셨지요. 그런데 지금은 ---,
어린 시절, 강도근 선생에게 처음 소리를 배우던 그 당시를 회상하는 노은주 명창은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눈에는 선생을 그리워하는 제자의 애틋한 눈물만이 글썽거리고 있는 것이었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