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최항(崔恒), 우승지(右承旨) 한계희(韓繼禧) 등 문신(文臣) 30여 인에게 명하여, 언자(諺字) 곧 한글을 써서 잠서(蠶書)를 뒤치게 하였다.” 이는 《세조실록》 23권, 세조 7년(1461년) 3월 14일 기록으로 세조 임금이 한문으로 된 잠서(蠶書)를 한글로 뒤치게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잠서(蠶書)>는 중국 청나라 때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당견(唐甄, 1630∼1704)이 정치ㆍ경제 따위에 관하여 적은 책입니다. 이 책에서 당견은 ‘진(秦)나라 때 이래 역대 제왕은 모두 도둑’이라고 했을 정도로 봉건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경제에 대해서는 은의 사용을 금지할 것과 빈부 격차를 비판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당견은 명나라 이래 은을 사용했으나 은이 날로 줄어들어 가난이 여기서 비롯된다고 보았지요.
조선왕조 제7대 임금 세조는 1453년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반대파를 숙청하고 단종을 몰아낸 뒤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로 비판을 받습니다. 또 대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을 모반의 죄명을 씌워 강화로 축출한 뒤 죽이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그런 세조도 <잠서>를 어리석은 백성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뒤치게 한 것은 물론 수양대군 시절 아버지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에 이바지했고, 불경 《석보상절》, 《월인석보》을 한글로 뒤쳐 펴내는 일에 참여하는 등 한글 창제와 보급에는 종요로운 몫을 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