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봄을 바랄 뿐

  • 등록 2025.04.23 10: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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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낮에는 덥구나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9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기저기 봄꽃들 피었다.

가로수 왕벚꽃 화려한 왕관을 쓴 채

임대아파트 울타리에 매달린 어린 개나리를 내려다보고

철없는 목련은 하얀 알몸으로

부잣집 정원에서 일광욕을 한다.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다.

                                         .... 한승수 / 4월


 

 

온 천지가 봄이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길이건 주택가건 공원이건 그동안 심고 가꿔온 꽃과 나무들이 모두 피어나 이 계절을 마음껏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 4월이 하순으로 넘어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봄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일제 강점기인 1926년 나온 이 노래는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나온 멋진 노래가 아니던가? 이달 초 필자는 이 노래가 나온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산림녹화와 우리 전통문화를 발굴하다가 이 땅에 묻힌 일본인 아사카와 노리다카 94주기를 추모하면서 이 노래를 같이 불러주었다. 이런 좋은 계절에 우리 땅에 묻혀 있으니, 이곳이 곧 당신의 고향이란 뜻이 된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원수 님이 쓰신 동시다. 1911년생인 이원수 씨는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창원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아 「고향의 봄」을 썼다. 처음엔 「산토끼」를 작곡한 이일래 씨가 곡을 붙여 마산 일대에서 불리다가 홍난파가 다시 곡을 붙인 이래 아리랑만큼이나 민족애를 느끼는 동요로 전국에서 애창되고 있음에랴.

 

약간의 우울한 듯한 멜로디가 오히려 가슴을 파고들어, 객지에서나 외국에서나 조금 힘들 때 이 노래를 천천히 부르면 "그 속에서 살던 때가~~"란 마지막 소절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사랑 받으며 산골 고향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그때가 생각나고 그리운 것이다.

 

 

고향의 봄이란 노래가 나온 지도 내년이면 100년이다. 그 긴 시간 우리들의 가슴속 노래가 되어 준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1919년 3·1 만세 때 33인 중의 한 분인 한용운 님은 일제 말기에 감옥에 가서는

 

昨冬雪如花 지난겨울은 눈도 꽃이려니

今春花如雪 이번 봄날엔 꽃도 눈이런가

雪花共非眞 눈이야 꽃이야 모두 참이 아니건만

如何心欲裂 어찌하여 이 마음 찢어지려 하는가

                                   ... 한용운 / 견앵화유감(見櫻花有感)

 

라고 감옥에서 유리창 밖으로 봄을 비통하게 맞이하다가 해방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 귀한 봄을 우리들은 해방 이후 마음 놓고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봄은 언제까지나 꽃만 피는 것이 아니다. 봄 햇살도 언제까지나 따뜻한 것이 아니다. 곧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 비나 오면 봄 향기는 사라진다.

 

바람 불더니 꽃잎 날리고

진자리에 비가 앉습니다

뜨락에 핀 라일락

꽃향기 찬비가 시샘하는지

온종일 향기를 지웁니다

창가에 앉아서

네가 좋아했던 봄비를

내가 좋아했던 찬 빗방울을 헵니다

                           .... 이호정 / 봄비 그리고 꽃비

 

봄에는 자주 미세먼지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고 가끔 하늘도 흐려진다. 자연이 그럴진대 우리나라는 자연의 공기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공기도 그렇다. 정치라는 공기가 우리 코를 맵게 하고 우리 눈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다. 서민들에게는 직접 상관도 없는 것들을 가지고 연일 따지고 치고받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이 봄을 편안하게 맞이하지 못한다. 앞으로 한 달 남짓 얼마나 많은 소란이 있을 것인가? 누구를 선택하라고 하면서 온갖 멋진 정책을 펴겠다고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온갖 부정적인 표현과 말이 날아다닐 것이다. 벌써 걱정한다. 누가 하든 좋은 말로 좋은 생각을 나누었으면 하지만 현실은 보나 마나 혼탁할 것이다. 가장 좋은 때인 봄, 다음 달 한 달 내내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앞에서 4월이란 시를 인용한 시인 한승수는 뒷부분에 4월에 모든 꽃이 아름답게 피며 서로의 자태를 자랑하지만 다투지는 않는 지혜가 있다며 그런 것이 우리들이 바라는 봄이라고 말한다; ​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화려함이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고

사는 동네가 다르지만

그것으로 서로를 무시하지 않는다.

빛깔이 다르지만,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어우러져서 참 아름다운 세상.

                                      ... 한승수 / 4월

 

 

 

계절의 공주 4월은 곧 계절의 여왕 5월로 넘어갈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봄을 즐기고 싶다. 정치 문제는 듣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희망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꽃과 나무들은 새잎이 나고 새 꽃을 피우는데 사람들 세상에서는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우리를 가만히 두지를 않고 누군가를 선택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도 걱정이 앞선다. 그냥 조용히 참된 인간으로 살고 싶은데 말이다. 벌써 한낮에는 덥구나. 만일에 5월이 너무 덥다면 그것은 기온 때문만은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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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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