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와 숙제 만나러 수양산에 들어가다

  • 등록 2025.06.10 1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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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3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소상의 8경 가운데서 어촌의 해 지는 모습을 노래한 ‘어촌석조(漁村夕照)’와 강 위로 내리는 저녁 눈의 모습인 ‘강천모설(江天暮雪)’, 산촌(山村)의 한가한 모습을 표현한 ‘산시청람(山市晴嵐)’, 그리고 산사(山寺)에 울려 퍼지는 쇠북 소리가 객(客)의 마음을 울린다는 ‘한사만종(寒寺晩鍾)’을 소개하였다. 이렇듯 소상의 8경은 각각의 특징이 있는 경관들을 너무도 구체적이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어서 공감이 크다. 부르는 이나 듣는 이들도 그 모습들을 연상해 보며 부르고 감상하는 것도 단가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번 주에는 <탐경가>(探景歌)를 소개해 보도록 한다.

 

‘탐경(探景)’이란 멋진 경관을 찾는다는 뜻이다. 이 단가를 일명,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도 부르는 것은 인간사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한바탕 꿈과 같다는 내용이고, 또한 이러한 사실은 노래 전반에 두루두루 보인다.

 

특히, 끝 구절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인가 하노라”라는 노랫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단가가 ‘일장춘몽’임을 알게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해, 노래의 제목처럼 인생의 헛된 영화(榮華)나 덧없는 꿈이 부질없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설파하고 있어 우리들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 공명을 버리고 향촌에 숨어 지내던 인사들의 생활과 정신이 바로 은일(隱逸)이었고. 양보였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벗하며 인생을 자족하며 살던 길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 분위기를 짐작하게 만드는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천생(天生)아재(我才) 쓸 곳 없다. 세상공명 하직하니 인간 영화 몽중사(夢中事)라. 죽장망혜로 백이, 숙제 보려 하고 수양산 들어갈 제, 운무심이출수(雲無心而出峀)하고 조권비이지환(鳥倦飛而知還)이라. 벽산(碧山)이 무어(無語) 하니 뉘더러 물어볼까. 지자체산중(只在此山中)이언만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라. 산형을 둘러보니 경개 절승하여 층암절벽은 반공에 솟았는데 낙락장송은 임자 없이 푸르렀다.”

 

“세상에 태어나 내 재주를 쓸 곳이 없어 죽장망혜(竹杖芒鞋), 곧 짚신에 대나무 지팡이 손에 들고 백이와 숙제를 만나러 수양산에 들어가는데, 구름은 무심하게 산속의 굴로부터 피어 나오고, 날기 피곤한 새들은 되돌아오고 있구나, 푸른 벽산이 말이 없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 지금은 이 산중에 있으나, 구름은 깊은 그곳을 모르는구나. 산의 형세를 보니 경개는 뛰어나 층층 절벽은 반공(半空)에 솟아있고, 낙락장송, 소나무들은 푸르렀다.”로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백이, 숙제 보려하고 수양산 들어갈 제’란 가사가 나오고 있는데, 수양산에 들어가 만나고자 하는 백이(伯夷)는 누구이고, 또한 숙제(叔齊)는 누구인가? 잠시 소개하고 넘어가 보기로 한다.

 

이들은 중국 은(殷)나라의 임금이었던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형제로 백이는 형, 숙제는 동생이다. 임금은 형 백이가 아닌, 동생 숙제에게 왕위를 넘겨주겠다고 천명하는데, 동생 숙제는“형이 당연이 왕위를 이어받아야 한다”라고 절대 그 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인 백이 역시, “동생에게 왕위를 결정한 것은 아버지의 뜻이고 명령이다, 그러니 이 결정은 절대로 어길 수가 없다”라고 하며 동생에게 왕위를 내린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끝끝내 임금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임금들은 장자(長子)에게 양위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한 그렇게 실행해 왔음에도, 역사는 그렇지 못한 사례도 빈번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임금 자리를 놓고, 형제가 싸우고, 패거리 정치로 인해 백성이 피곤하고, 인심이 흉흉해져 결국은 나라가 망했다는 사례가 어디 하나, 둘인가?

 

하여튼 쉽게 얻어지는 자리가 아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고, 서로 양보하는 백이와 숙제는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형제간의 우애를 보여주었는가! 두 형제는 한사코 사양하다가 끝내는 도망을 가게 되었고, 그 바람에 왕위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 뒤, 나라가 망하게 되자. 이들 형제는 음식을 먹는 것이 부끄럽다고 해서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고 지내다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마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 같아 신뢰하긴 어렵지만, 이 형제의 이름은 충절의 상징이 되어 단가의 노랫말을 비롯하여 12가사, 시조, 단가, 판소리, 잡가, 민요 등등 우리음악 전반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이 단가에서는 꿈과 같이 경치를 찾아가는 투로 시작하면서 중간중간에 도연명의 귀거래사, 손흥공의 산수부(山水賦)의 글귀, 육처사, 소자첨, 강태공, 동방삭 등의 인물들도 나오고 있어 노랫말을 이해하고 부르거나 감상한다면, 보다 더 가깝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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