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4대강 사업의 가장 핵심적인 공사는 16개의 보를 건설하는 토목 공사였다. 16개의 보는 낙동강에 8개, 한강에 3개, 금강에 3개, 영산강에 2개가 배분되었다. 보의 높이는 보마다 다른데 최소 4m 최대 12m, 평균 높이는 약 10m였다. 강에 보를 막으면 상류 쪽에 호수가 생기는데, 호수의 깊이는 모든 지점에서 6m 이상이 되도록 강바닥을 깊게 준설하였다.

4대강 사업 찬성론자들은 보를 막아서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이 좋아진다”라고 주장하였다. 강바닥을 준설하고 10m 높이의 보를 막았기 때문에 물그릇이 커진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이 좋아질까? 4대강살리기사업 추진본부에서 발행한 홍보 책자 《4대강의 진실》 29쪽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보’는 큰 ‘물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이 부족하면 수질이 급격히 나빠집니다.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년 내내 일정한 양의 강물을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보는 물 저장량을 늘리고 수위를 적절히 조절해 수질을 개선하는 큰 물그릇을 만드는 일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맞는 말 같다. 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모두 “맞는 것 같다”라는 대답이다. 필자는 이 주장을 ‘물그릇 이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물그릇 이론을 들으면 일반인들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셔 본 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종이컵의 커피가 너무 진하다고 생각될 때는 물을 부으면 커피 농도가 연해진다. 마찬가지로 4대강에서도 물그릇이 커지면 희석으로 수질이 좋아지리라 생각하기 쉽다.
자판기 커피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요리한 경험을 떠올리면 된다. 국을 끓였는데 수저로 떠서 국물 맛을 보니 너무 짜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물을 더 부으면 짠맛이 준다. 그러므로 4대강 사업으로 물그릇이 커지면 4대강의 수질이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은 맞는 것 같다.
물그릇 이론은 정치인의 발언에서도 등장하였다. 4대강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2010년 4월 3일, 서울대 총장까지 했던 경제학자 출신 정운찬 총리는 경남 양산시 물금취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항이 커야 물고기들이 깨끗한 물에서 자랄 수 있다.” 이 발언을 따져 보면 물그릇 이론을 달리 표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이 2011년에 끝나고 이듬해인 2012년 여름에 낙동강에서 녹조가 발생하였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박재광 교수는 2012년 8월 28일, 선진화시민연대가 연 4대강 세미나에서 이렇게 발언하였다. “녹조가 발생하면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이 나오는데 4대강 사업으로 물그릇을 키웠기 때문에 마이크로시스틴 농도가 떨어져 녹조 피해를 줄였다.” 수질 전문가인 박재광 교수는 물그릇 이론을 녹조에 적용하였다.
2013년 8월 7일, 낙동강의 녹조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당시 홍준표 경남 도지사는 “(4대강 사업으로) 오히려 수량이 풍부해짐으로써 자정능력이 높아져서 과거와 견주어 녹조 현상이 완화되었다”라고 말하였다. 이 발언 역시 물그릇 이론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질문해 본다.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이 좋아지는가? 필자는 ‘소주잔 이론’을 생각해 내었다.
알코올 농도 19도인 소주를 작은 소주잔에 따르거나, 이보다 큰 맥주잔이나 막걸리 사발, 또는 커다란 양동이에 채우면 소주의 알콜 농도가 변하는가? 소주를 담는 그릇이 커져서 소주의 양이 많아지면 알코올 농도가 변하는가? 소주 그릇이 커서 소주의 양이 많아져도 소주 농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달리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4대강의 물그릇 이론이 맞다고 착각할까? 만일 소주를 담고 있는 그릇에 소주 대신 물을 추가하면 소주 농도는 약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에 4대강의 호수에 들어오는 오염된 물 대신에 깨끗한 증류수를 추가하면 수질이 개선될 것이다. 4대강에서는 똑같은 농도로 오염된 물이 흘러드는데, 단순히 물그릇이 커진다고 해서 수질이 개선될 수는 없다.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원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환경부(당시 이만의 장관)에서는 홍보자료를 만들어 공무원 연수 자료로 활용하였다. 필자는 우연히 홍보 자료를 입수하였는데, 물그릇 이론을 설명하는 슬라이드를 보고서 기절초풍 깜짝 놀랐다.
위 그림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4대강 사업 후에 물그릇이 2배로 커져서 수량이 2백만 톤이 되었다면, 물그릇을 채우는 강물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나고 강물에 섞여 있는 오염물질의 양도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위 그림에서 오른편, 4대강 사업 뒤의 오염물질의 양은 2톤이 아니라 4톤이 되어야 맞다. 수질의 농도는 변하지 않았다. 똑같은 강물이 흘러들어 수량이 2배로 늘었는데, 어떻게 수질 농도가 1/2로 줄어들 수가 있겠는가? 물그릇 이론이 맞는다면 수질을 개선하기가 아주 쉬울 것이다. 물그릇을 10배로 크게 하면 수질은 1/10로 감소할 것이니 말이다.
4대강 사업에서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상식을 동원하여 따져 보면 틀린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이 준공된 뒤 14년이 흘렀다. 그렇지만 물그릇 이론을 믿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고 생각된다.
과학적으로는 지동설이 맞다. 그러나 해가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오늘 아침에 동쪽에서 떠오른 해는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물그릇 이론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알려면 언론만 믿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