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다가오는 8월 15일은 우리 겨레가 일제의 억눌림에서 벗어나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지 어느덧 여든 해를 맞는 '광복(光復) 80돌'이라는 참으로 잊지 못할 날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앞두고, 저는 여러분께 조심스럽게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기리는 '광복'이 과연 무슨 뜻인지, 그리고 무엇을 되새겨 보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많은 분들이 ‘광복’이라고 하면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독립한 날' 정도로 짐작하실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본디 뜻을 선뜻 답하기는 쉽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광복은 '빛을(光) 되찾다(復)'는 뜻을 지닌 아름다운 한자말입니다. 이름과 말, 글과 문화까지 모든 것을 빼앗겨 어둠과도 같았던 35년의 일제 강점기를 끝내고, 마침내 '나라의 주권'이라는 밝은 빛을 되찾았다는 뜻이 담긴, 더없이 시적이면서도 무게 있는 낱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즈음에 우리가 오랫동안 애써 얼굴을 돌려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숨어있습니다. 온 겨레가 가장 기뻐해야 할 날을 기리는 이름조차,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뜻을 한 번에 헤아리기 어려운 한자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참 임자, 진정한 주인인 국민이 그 기림날(기념일)의 이름 앞에서 잠시 머뭇거려야 한다면, 그 이름이 오롯이 '우리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나라 찾은 날 여든 돌
우리가 이 날을 토박이말을 살려 '나라 찾은 날 여든 돌'이라 부른다면 어떻겠습니까? '광복 80주년'이라는 말과 마음속으로 견주어 보십시오. 어느 쪽이 더 설명이 필요 없이 쉽게, 그리고 따뜻하게 가슴에 와닿으십니까?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그 누구라도 '아, 일본에 빼앗겼던 우리나라를 되찾은 지 여든 해가 되었구나'하고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말. 군더더기 없는 설명으로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 이것이야말로 살아 숨 쉬는 우리말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값진 기림날의 이름 하나 우리말로 바로 세우지 못한 현실은, 어쩌면 우리가 맞이한 '광복'이 아직 다 이루지 못한 '반쪽짜리'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치적 주권이라는 눈부신 빛은 되찾았을지언정, 우리 겨레의 얼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야 할 '언어의 주권'은 여전히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어의 잔재, 그리고 무분별하게 흘러들어온 외래어의 짙은 그늘에 갇혀 길을 잃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기림날 이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땅 이름, '미추홀', '한밭'이 '인천(仁川)', '대전(大田)'으로
세계는 여전히 우리를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이 아닌, 천 년 전 사라진 왕조의 이름인 '코리아(고려)'로 부릅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정부는 '양해각서(MOU)', '거버넌스', '패러다임'처럼 보통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는 어려운 말로 소통의 담을 쌓고 있습니다. 사람 이름은 저마다 나라를 되찾자 곧바로 다시 찾아 쓰고 있지만, '미추홀', '한밭', '달구벌'처럼 유구한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우리의 땅이름은 '인천(仁川)', '대전(大田)', '대구(大邱)'라는 한자 이름의 틀에 갇혀 그 뿌리와 본래의 뜻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나라를 되찾자마자 타올랐던 '우리말 도로 찾기'의 뜨거운 불꽃은, 정치에 있어서 어지러움과 '먹고사는 문제'의 시급함 속에서 '익숙함'과 '편리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걸림돌에 걸려 힘없이 스러졌습니다. 우리말을 지키고 가꿔야 할 국립국어원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다듬은 말'을 내놓기 일쑤이며,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국어기본법은 강제성 없는 '종이 범(호랑이)이 된 지 오래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뼈아픈 것은,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리말의 뿌리이자 보물창고인 '토박이말'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나라 찾은 날 여든 돌'을 맞아, 우리 사회가 '언어 주권'이라는 종요로운 이야깃거리를 똑바로 마주하고 참된 '언어 광복'을 이루기 위한 길을 하나하나 찾아보고자 합니다. 앞으로 모두 7회에 걸쳐 글을 나누어 실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말의 빛을 되찾기 위한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롯한 우리말을 물려주기 위한 뜻깊은 토론의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고 빕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
2회. '대한민국'이라 쓰고 '코리아'라 불리는 나라: 갈 곳을 잃어버린 나라 이름
3회. 정부는 누구의 말로 소통하는가: 국민은 이 나라의 임자가 맞나?
4회. '미추홀'은 왜 '인천'이 되었나: 땅에 새겨진 식민의 그림자들
5회. 말의 민주화를 위한 첫걸음, '우리말 도로 찾기': 이루지 못한 꿈
6회. 길 잃은 국립국어원, 잠자는 국어기본법: 언어 정책이 나아갈 길
7회. '토박이말'이 살아있는 교실을 꿈꾸며: 바람직한 우리의 말글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