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새벽 세 시, 부탄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피곤에 지쳐 단잠에 빠져 있어야 할 몸은 오히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창문을 여니, 싸늘하면서도 맑은 공기가 온몸을 감싸왔다. 순간, 몇 시간 전까지 쌓였던 피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 낯선 나라가 지닌 청정한 공기의 힘을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부탄에는 굴뚝이 없다. 공장을 세워 산업을 키우는 대신, 오염원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 담배마저도 공기를 더럽힐 수 있다는 까닭으로 금지해 버린 나라. 청정 자연은 이 나라가 지켜온 ‘삶의 조건’이자 ‘국가의 철학’이다. 그러나 부탄에서 느낀 신선한 숨결을 떠올릴수록, 역설적으로 병들어가는 지구의 현실이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북극의 빙하는 녹고, 바다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기온은 산업화 이후 1.2도나 올랐고, 2도 선을 넘는 순간 식량 위기와 생태계 붕괴가 된다고 환경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폭염ㆍ산불ㆍ홍수ㆍ가뭄이 전 세계를 덮치고, 해마다 수많은 목숨이 자연재해라는 이름 아래 스러져 간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니다. 결국 인간이 스스로 불러온 ‘자업자득’의 결과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인 99%는 이미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 해마다 700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목숨을 잃는다. 바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여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의 혈액과 태반에서까지 검출되고 있다. 토양은 황폐해지고, 사막은 넓어지며, 수십억 인구가 깨끗한 식수조차 구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환경 위기는 더 이상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 지구적 재앙이다.
이 위기의 시대에 부탄은 세계가 주목하는 ‘대조적인 표본’이다. 부탄은 국민총행복(GNH)을 국가 운영의 지표로 삼는다. 헌법은 국토의 최소 60% 이상을 산림으로 지키도록 규정했고, 실제로는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배출보다 흡수하는 탄소가 더 많아, 세계 유일의 ‘탄소 네거티브 국가’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전력의 98%를 수력에서 얻고, 비닐봉지는 20년 전부터 금지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은 국립공원과 보호구역으로 묶여, 눈표범과 붉은판다 같은 희귀종 동물이 지금도 눈에 띈다. 무분별한 관광을 막기 위해 하루 200달러가 넘는 관광세를 부과하는 것도 자연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부탄도 역시 환경 오염의 위협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히말라야 빙하가 녹아 범람 위험이 커지고, 도시화와 소비 확산으로 쓰레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청정 국가라는 위상도 방심한다면 흔들릴 수 있다. 국가 기관과 국민이 제아무리 환경보전에 일치단결할지라도, 양동이에 물이 새듯 외래 산업 문물이 시시각각 들어오고, 이방인들이 발을 디디면서 생각 없이 전통문화를 혼탁 시킨다면, 언젠가는 부탄의 정신적 청정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해볼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자. 오늘날 한국은 세계 첨단기술 산업(Advanced Technology)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삶의 질은 선진국에 들지만, 환경은 급속도로 오염되어 가고 있어 그 해결책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는데,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확대, 녹색도시 조성,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속도와 실효성은 미흡하다. 정부의 정책, 기업의 책임, 시민의 생활 실천이 함께 맞물려야만 한다.

그렇게 넓지도 않은 작은 땅덩이에서 해마다 기라성 폭우(엄청나게 강하고 쏟아지는 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와 폭설, 강원도 강릉 극도의 가뭄 같은 이상 기온은 하늘만 탓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자비한 개발과 대책 없는 선진문화 경쟁에 국가 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 같다. 따라서 글로벌 경쟁에 대한 환경의 부작용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미래 환경 오염에 대한 대응책을 부탄과 한국을 견줘 본다면, 부탄은 이미 오래전부터 철저한 대응책과 실질적인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더 편리하고, 더 빠른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한국같이 발전 지향적인 개발 끝에 극도의 환경 오염과 인성 파괴가 따른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부족해도, 문화가 뒤떨어져도, 청정한 삶과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잃지 않은 삶, 자연과 공존하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세계는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으로 심각한 생태적 전환점에 서 있다. 그러나 부탄은 ‘행복’이라는 값어치와 ‘환경 보존’을 국가 운영의 기둥으로 삼음으로써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 정책의 성공 사례를 넘어, 국가와 사회가 어떤 철학적 지향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성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부탄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정책ㆍ산업ㆍ생활 전반에 걸친 전환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결국 지구 생존의 열쇠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려는 철학적 태도에 달려 있다.
필자는 부탄의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체감한 그 맑은 공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히 신선한 공기가 아니라, 인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메시지였다. 청정한 숨결 속에서 느낀 ‘울림~‘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값어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