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없는 나라 부탄

  • 등록 2025.11.01 1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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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잔혹성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
[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11]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전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의 포화를 피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멎지 않고 있다. 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끊임없는 비극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이 잔혹한 현실은 문명의 발전과는 별개로 되풀이됐다. 이 가운데 한국 또한 이 비극은 예외가 아니었다.

 

한반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전쟁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그 시작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부터였다. 이 사건은 외세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첫 번째 비극이자, 침략의 서막이었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한반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이 이어졌고, 몽골의 침입과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나라의 존망을 뒤흔드는 대전란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일본군을 물리쳤지만, 국토는 폐허로 변했고 수많은 백성이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병자호란에서는 청의 침공 앞에 치욕적인 항복을 겪으며 국가의 자존이 무너졌다.

 

이후 한일강제병합을 통해 국권을 잃은 35년 동안의 식민 지배는 전쟁 못지않은 고통을 안겼다. 언어와 문화가 말살되고,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그 시기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쓰라린 수난의 시간이었다. 간신히 해방을 맞이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곧이어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맞이했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끝에 전쟁은 정전으로 멈추었지만, 완전한 평화는 오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전쟁은 멀리 있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그림자다. 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그리고 언젠가 진정한 평화를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의지이자 희망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없는 나라 부탄으로 가보자

 

국가의 힘이란 반드시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부탄은 “국민의 행복이 곧 국가의 힘이다”라는 철학을 실천하며, 전통적인 안보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나라다. 부탄은 경제적 성장보다 정신적ㆍ사회적 풍요를 우선하는 국민총행복(GNH)정책을 국가 운영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 철학은 네 가지 기둥 위에 서 있다.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 ▲환경 보전 ▲문화 보존과 증진 ▲좋은 통치(굿 거버넌스)가 그것이다. 부탄은 영토 확장이나 군사적 힘으로 국가를 지키기보다는, 국민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안보의 기초로 삼는다.

 

부탄의 안보 본보기는 전쟁 없는 안정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독특하다. 무엇보다 내부 안정이 곧 외부 방어로 이어진다는 원리를 실천하고 있다. 국민이 행복에 만족할수록 내부 갈등은 줄어들고, 쿠데타나 내전 같은 불안 요소가 사라진다. 실제로 부탄은 정권 불안이나 폭력 사태가 거의 없는 나라로 평가받으며, 이는 안보의 가장 큰 자산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내부 결속은 정신적 기반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부탄은 불교의 가르침을 국가 정체성에 깊이 새겨 넣어 자비와 평화, 공존의 값어치를 실천한다. 전쟁이나 무력 충돌 대신 대화와 중재를 선택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국민은 “우리는 작은 나라지만 정신적으로 강하다”라는 자긍심을 공유하며, 이 정신적 무장은 어떤 군사력 못지않은 국가 방어력이 된다.

 

환경 또한 중요한 전략 자산이다. 험준한 산악 지형과 울창한 숲을 보존하는 부탄의 국토는 자연스럽게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한다. 동시에 환경을 지키는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평화국가의 이미지를 확립하여 외교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평화 이미지와 국제적 신뢰는 군사력보다 훨씬 강력한 소프트파워로 작용한다.

 

따라서 군사적 확장을 지양하는 것보다 인도와의 협력을 통해 안전망을 마련한 점도 부탄 안보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자체 군사력을 키우는 대신 인도와 상호 의존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외부 위협에 대비하고, 절감된 군사비는 국민의 삶과 행복 증진에 재투자된다. 국제사회에서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 나라”라는 신뢰를 쌓아 외교적으로 안정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결국 부탄은 군사력 대신 ‘행복지수(GNH)’를 안보의 핵심으로 삼는 나라이다.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행복을 통해 결속을 다지고, 외부적으로는 평화국가의 이미지를 통해 신뢰를 구축한다. 여기에 환경과 문화라는 고유 자산이 더해지면서, 전쟁 없이도 국가를 지키는 독창적인 안보 본보기가 완성된다. 그래서 부탄은 “작지만 강한 나라”로 불리며, 무력의 시대에 평화와 문화, 환경의 힘으로 생존과 번영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서 전쟁과 안보전략에 있어서 한국과 부탄을 견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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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부탄은 안보 전략에서 뚜렷이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 분단과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힘을 통한 평화”를 안보의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강력한 군사력과 동맹, 특히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억제력을 유지하며, 국가 예산에서도 국방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과 외교력을 병행하는 전략이다.

 

반면 부탄은 산악지형의 소규모 국가로 군사력 확장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신 ‘국민총행복(GNH)’이라는 철학을 국가 존립의 중심에 두고, 전쟁을 억제하는 힘을 국민의 행복과 국제적 신뢰에서 찾는다. 국방은 인도에 상당 부분 의존하며, 재원은 군사비보다 교육ㆍ문화ㆍ환경에 집중한다.

 

내부적으로도 한국은 안보 위기 속에서 경제 발전을 통해 국민 단합을 유도했지만, 긴장 상황이 사회적 불안으로 번질 때도 있었다. 부탄은 불교와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국민적 신뢰와 결속을 다지며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외교 전략에서도 한국은 강대국 외교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군사ㆍ경제 협력을 병행한다. 반면 부탄은 조심스러운 외교를 펼치며, 평화와 환경을 강조한 국제 이미지로 지지를 얻는다. 중국과의 국경 문제도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한국은 강한 군사력으로 안보를 지키는 나라이고, 부탄은 국민의 행복과 평화의 이미지를 방패로 삼는 나라다. 하나는 ‘군사력의 국가’, 다른 하나는 ‘행복의 국가’라는 뚜렷한 안보 전략의 대비를 보여준다.

 

전쟁은 인류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정복 전쟁으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은 더 정교해지고 잔혹해졌다. 고대의 전쟁은 영토 확장을 위한 무력 충돌이었다. 도시를 점령하면 주민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는 일이 흔했다.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몰살했다. 전쟁은 힘의 논리였고, 인간의 생명은 하찮게 취급되었다.

 

중세에 이르러 전쟁은 종교의 이름으로 더욱 잔혹해졌다. 십자군 전쟁 당시 예루살렘은 무차별 학살의 현장이 되었고, 마을과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신의 이름은 칼날 위에 새겨졌고, 종교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근대에는 제국주의가 전쟁의 불씨였다.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를 침략해 자원을 약탈하고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렸다. 전쟁은 국가의 권력을 키우는 ‘사업’이 되었고, 민중은 희생양이었다.

 

20세기 들어 전쟁은 인류사 최악의 참극으로 번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약 7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홀로코스트의 집단 학살, 난징 대학살의 무차별 살육,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의 참상은 인간이 얼마나 스스로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오늘날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자지구의 전쟁 등 현대 전쟁은 첨단 무기를 앞세워 민간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총성이 멎어도 잔혹한 상처는 세대를 넘어 남는다. 전쟁은 더 이상 칼과 창으로만 치러지지 않는다. 정보전, 사이버전, 드론전으로 진화하며, 그 잔혹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해도 폭력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전쟁의 잔혹성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다. 외교와 협력, 인권과 신뢰의 값어치가 전쟁보다 강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전쟁의 역사는 우리에게 폭력을 미화하지 말고, 평화를 선택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일취스님(철학박사) cleanmind300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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