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고 읽힌 일의 그물을 당겨줄]벼리

  • 등록 2025.12.16 11:00:19
크게보기

[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벼리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철이, 온이 겨울로 가득 차는 온겨울달의 열여섯째가 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날씨가 어제보다 따뜻하고 여느해보다 따뜻한 날이 이어질 거라는 기별에 마음까지 따뜻해졌습니다. 나라 안팎에서 들리는 기별 가운데 통일부 장관을 지낸 분들이 "나라의 대북 정책이 헌법의 원칙을 벗어났다"며 걱정 어린 쓴소리를 던졌다는 기별이 있었습니다. 나라의 큰 기틀이 흔들린다는 말씀에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분들도 계실 것같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서로 나누고 좋은 수를 찾아가야 하는 때, 우리는 쓰는 말도 좀 가려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핵심'이나 '기강' 같은 딱딱한 한자어 대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물을 손질하며 쓰시던 거칠지만 힘 있는 토박이말, '벼리'를 썼으면 하는 마음에 오늘은 그 말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벼리'라는 말은 본디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오므렸다 폈다 하는 '으뜸 줄'을 뜻합니다. 그물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코가 있어도 이 벼리를 잡고 당기지 않으면 그물은 그저 헝클어진 실타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일이나 글의 뼈대나 줄거리'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 말의 맛을 제대로 살린 옛말이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 "그물이 삼천 코라도 벼리가 으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밑감이나 연장(재료나 수단)이 많아도, 가운데(중심)를 잡아주는 벼리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이지요.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이 벼리는 잘 쓰였습니다. 송기숙 님의 <녹두장군>에 "마치 투망으로 고기를 싸 놓은 꼴이 아니고 뭐냐? 이렇게 싸 놓은 고기라면 벼리 당기는 일만 남았는데…."와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어떤가요? 무슨 일인지 똑똑히 몰라도 '벼리'만 당기는 일만 남았다는 것으로 봐서 일을 거의 다 이루어 가기 바로 앞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멋진 말을 우리 나날살이에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기별종이에서 본 것부터 우리말로 다듬어 보겠습니다. "헌법 원칙이 무너졌다"는 날 선 말보다, "헌법은 우리 나라를 지탱하는 벼리입니다. 부디 이 벼리를 놓치지 말고 평화의 그물을 단단히 당겨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서로를 탓하는 거친 말보다, 뼈대를 바로 세우라는 그윽한 바람이 더 묵직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에서도 이 말을 쓸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힘겨워하는 아버지나 이끎이(리더)에게 이렇게 건네는 겁니다. "당신은 우리 집(우리 일터)의 벼리예요. 당신이 단단하게 버텨주셨기에 우리가 흩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또, 한 해를 갈무리하는 찍그림(사진)을 찍어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도 써 보세요.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 느슨해진 마음의 벼리를 다시 팽팽하게 당겨봅니다."

 

올해 마지막 달을 보내고 계신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벼리는 튼튼하신가요? 누리가 시끄럽고 어지러울수록, 내 마음속 벼리 하나만은 꽉 쥐고 놓치지 않는 뚝심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창수 기자 baedalmaljigi@gmail.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편집고문 서한범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