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나직하게 들려오는 빗소리에 잠을 깨신 분도 계시지요? 온 나라 곳곳에 앞낮(오전)까지 내린다는 이 봄비는 메말랐던 땅을 촉촉하게 적시고, 뿌옇게 쌓였던 먼지들을 말끔히 씻어내어 세상을 한결 맑게 해 줄 것입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날씨가 부쩍 따뜻해져서 봄기운을 넘어 여름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하니, 마치 하늘이 봄을 재촉해 보내려고 정성껏 몸을 씻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듯 보입니다.
빗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른 새벽부터 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쓸며 깨끗한 둘레를 지켜낸 미화원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을 뭉클합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세상의 때를 벗겨낸 그분들의 부지런한 손길 덕분에, 비 갠 뒤의 거리는 거울처럼 깨끗한 빛을 되쏘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내 안에 쌓인 욕심과 고집을 맑은 빗물에 헹궈내고, 본디 있던 깨끗한 마음을 되찾는 일이 무엇보다 값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빗물에 씻겨 맑은 얼굴을 드러낸 길 위로, 부지런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을 때 들려올 그 야무진 소리를 머릿속에 그려 봅니다. 세상의 거칠고 소란스러운 시끄러움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거짓없이 닦아내는 사람의 뒷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봄비가 그친 뒤의 환한 햇살을 닮아 우리 마음의 때를 말끔히 벗겨내 줄 토박이말 '보드득'을 꺼내어 봅니다.
'보드득'은 단단하고 반드러운 물건을 정성껏 문지를 때 나는 맑고 야무진 소리를 뜻하는 토박이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단단하고 질기거나 반드러운 물건을 야무지게 문지르거나 비빌 때 나는 소리'라고 풀이하고 있으며, 또한 '쌓인 눈 따위를 약간 세게 밟을 때 야무지게 나는 소리'라고도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이 소리가 단순히 물건을 닦을 때 나는 소리를 넘어, 삶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걷어내고 바탕을 찾아가는 바르고 곧은 몸짓으로 읽힙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정갈하게 씻은 쌀을 바구니에 담아 일거나, 잘 마른 빨래를 다독일 때 이 낱말을 빌려 깨끗하게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나타냈습니다. 억지로 문지르는 것이 아니라 야무지게 정성을 다해 닦아낼 때 비로소 들리는 소리이기에, 이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셈입니다. 이 말은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 현진건 님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보면 '손바닥에 침을 보드득 발라서는'이라는 대목이 나와 인물의 간절하고도 생생한 움직임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가끔 세상에 잘 보이기 위해 겉모습을 치장하느라 정작 내 마음의 속살이 얼마나 흐려졌는지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과 꼲기(평가)라는 먼지가 두껍게 쌓이다 보면, 내가 어떤 빛깔을 가졌던 사람인지조차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보드득'이 일러주는 삶의 슬기는 겹겹이 쌓인 거짓 모습을 걷어내고 내 참 모습을 맑고 야무지게 닦아내는 바름과 곧음에 있습니다.
이번 봄비에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내듯 손끝에 전해지는 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거나, 내가 머무는 자리를 정성껏 치우는 일은 우리 삶을 '보드득' 소리 나는 희망으로 채우는 값진 시작이 됩니다.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에서 묵묵히 제 빛을 내는 햇살처럼, 우리도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맑게 닦아내야 합니다. 멋진 삶은 아름답고 고운 빛깔을 입히거나 묻히는 것이 아니라, 보드득 소리가 날 만큼 깨끗하게 마음의 때를 벗겨내어 맑은 얼을 지켜내는 일에 있을 것입니다. 날카로운 싸움과 다툼보다 맑음과 바름과 곧음으로 누리를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이좋음에 닿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덤]
오늘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쌓인 걱정거리를 시원하게 씻어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반드러운 마음이 맞닿을 때 나는 그 야무진 소리는 어제의 시름을 씻어내고 따뜻해진 오늘을 새롭게 비롯할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비가 그친 뒤 여러분의 책상을 닦거나 유리창의 빗물을 닦는 것도 '보드득' 소리 나는 삶을 만드는 아름다운 몸짓이랍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비 온 뒤의 바람빛(풍경)처럼 그대의 웃음이 보드득 소리가 날 만큼 맑아 좋습니다."라고 살가운 말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여러분이 가장 야무지게 닦아내고 싶은 값진 참마음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토박이말]
▶ 보드득
뜻: 단단하고 반드러운 물건을 야무지게 문지르거나 쌓인 눈을 밟을 때 나는 소리.
보기: 비에 씻긴 창유리를 걸레로 '보드득' 닦으니 마음까지 환해졌다.
[한 줄 생각]
참 아름다움은 화려하게 꾸미는 데 있지 않고 보드득 소리 나게 닦는 데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