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홍사내 기자] 우리는 많은 ‘아버지’를 알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서양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수학의 아버지 피타고라스, 진화의 아버지 다윈, 현대과학의 아버지 아인슈타인,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메디슨, 근대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찌 등이 그들이다. 이것은 모름지기 서양사람의 주장이다. 이를 무턱대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 교육의 큰 잘못이다.
서양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된 철학적 사고를 인간의 사회적인 실천활동 속에서 가꾸어 발달시켜, 관찰·분석·종합·귀납·연역·가설만들기·실험 등을 통하여 사람에게 삶의 질을 높이고, 수학적 법칙을 규명하려는 노력의 산물을 과학이라 하였다. 이러한 자연과학은 서양에서도 르네상스 이후에 생긴 새로운 학문으로서, 우리의 현대 교육이 서양 교육을 따라 하고 있는 마당이니 상대적으로 동양 또는 우리 겨레의 과학적 탐구가 과소평가되거나 불모지처럼 여겨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예컨대, 서양에서는 이른바 근대과학의 시작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저술한 《새로운 두 과학》(Discourses and Mathematical Demonstrations Concerning Two New Sciences, 1638년)에 두고 있으며, 이로써 그를 근대 과학의 아버지 또는 최초의 과학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자들만의 주제였던 과학에 대해 수학적인 방법으로 이론들을 설명한 최초의 저서로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빠져 있던 그 당시 철학자들 및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단순히 철학적인 사고를 통한 주장이 아닌, 처음으로 수학적인 증명과 엄밀한 실험을 통하여 물체의 운동과 고체의 강도에 관한 이론에 대해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위에 열거한 수많은 ‘아버지’는 그에 앞서 어떤 사람도 생각지 못한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하였거나 그 분야의 역사를 바꿔놓을 만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글자에 대한 인식은 매우 희박하고 무식했다. 잘 알다시피 서양의 모든 나라는 로마자를 쓰고 있다. 그 아버지격인 글자가 라틴글자이고, 그 아버지가 그리스글자이며, 그 아버지가 페니키아글자이고, 그 아버지가 이집트 그림글자이다. 그림을 단순화시켜 만든 글자, 그래서 나라마다 한두 자씩 늘어나면서 지금의 알파벳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지배에 따라 전유럽에 퍼진 로마자는 나라마다 다른 제나라 말을 표현하기 위해 몇 가지 글자를 더 만들게 되고 러시아에서는 33개나 되는 알파벳으로 늘어난 것이다. 필기체와 인쇄체를 합치면 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 로마자는 과학적이지 못하여 발음을 정확히 나타낼 수 없다. 모음이 전혀 없던 이집트글자에서 한두 개씩 모음이 만들어지면서 빌려온 글자로 제나라 말을 짜 맞춰 적을 수밖에 없었음에도 서양 사람들은 과학적인 글자를 만들 상상조차 못하였던 것이다. 문자에 대한 미흡한 과학적 사고는 동양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한자의 할아버지뻘 되는 갑골문자는 그림글자였으며 여기에 많은 글자가 끝없이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한자이다. 하지만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결국 현대에 와서는 뜻글자인 한자를 단순화하여 소리글자로 전환시키고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말은 소리로서 전달되며 그 소리는 연속적인 규칙이 있고 없음에 따라 의미 없는 소리와 말로 크게 나누어진다. 그 연속적 규칙을 표현한 것이 글자가 되는데, 글자는 사람의 발성에 따라 자음과 모음으로 나눌 수 있고, 소리의 자질에 따라 구분하여 여러 개의 글자가 만들어지게 된다. 세계 모든 글자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말을 제대로 적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세종은 소리란 모든 사물에게서 생겨나게 마련이고, 그 소리는 각자 다르지만 그것을 아우르는 법칙은 단순하다고 보았다. 소리가 발생하는 입안의 모양과 위치를 면밀히 분석해서 글자를 만들고, 그 글자를 겹쳐서 말의 세기와 겹침을 표현하였다. 점으로 높낮이를 구분하였고, 소리의 차례대로 첫소리와 가운뎃소리, 끝소리의 자리를 매겼다. 그리하여 그 글자 만든 원리를 자세히 밝히고, 글자 쓰는 법을 낱낱이 설명하는 책을 내었다.
▲ 세종을 과학의 아버지라 부르는데 가장 큰 과학적 성과 <훈민정음>
그 원리가 너무도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어서 누구나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었다. 당시 유식한 자들은 이것이 무슨 문자더냐 하며 그 폐단을 걱정하였지만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지극한 정성으로 그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갈릴레이가 주장하였을 때 그에게 종신 연금령을 내린 것과 같은 지경이었다.
인체 구조와 발성에 대한 10여 년 동안의 관찰과 분석, 이를 정리하여 만든 종합적인 규칙. 소리의 자질과 초성, 중성, 종성의 원리를 세워 결합 방법을 정립하였고, 수많은 실험을 통하여 글자의 모양과 개수를 정하고 이를 겹쳐서 같고 다른 말과 글자의 짝을 맞추었다. 그 이론의 앞뒤가 충돌하지 않고 모순되지 않으며 기본 글자 28자를 수학적으로 생성하면 11,172자 이상의 무궁무진한 글자를 만들 수 있는 공식을 세웠던 것이다. 그 이론서가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이 책은 ‘문자의 철학적, 과학적 원리’라는 부제를 달 만한 과학서임에 틀림없다. 이는 갈릴레이의 책보다 200여년이나 앞선 과학 이론서이기도 하다.
세종 이도(李祹)는 어려서부터 왕자로서 쉴 틈 없이 학문을 배웠고, 세자(맏아들)를 내치고 새로운 세자로 삼은 지 석 달 만에 임금이 될 만큼 명석했다. 어릴 때부터 하루 온종일 공부로 시간을 보냈고, 한 가지 책을 수십 번 이상 읽었으며,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교육을 받았으니 그 지식과 사고력은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똑똑하고 지혜롭고 올바로 자란 스물한 살의 청년이었기에 이른바 준비된 임금이었다.
책벌레, 공부벌레였던 그가 임금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불합리 투성이었다. 그는 모든 학문이 중국에 중심을 두어 현실과 맞지 않음을 일깨우고, 세법, 농법, 병법, 천문, 지리, 척도, 측량, 음악 등 어느 것 하나 손대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과학적 탐구를 통하여 현실에 맞도록 정밀하고 정확하게 고친 지식인이었다.
그러므로 세종을 ‘과학의 아버지’라고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글자는 인류의 역사와 과학을 만들어가고 쌓아가는 데 가장 밑바탕이 되는 요소이니, 이를 과학적 원리로 규명하였다는 것은 인류 발전에 가장 크게 공헌한 바일 것이다. 더욱이 세종은 문자 창제뿐만 아니라, 음악과 도량형에서도 그 정밀함은 대단했으니, 악기의 음을 맞추고, 그의 지휘 아래 만들어진 악기가 여러 가지이며, 정간보라는 악보를 만들었고, 직접 작곡한 노래도 수없이 많다.
▲ 세종 과학의 개가, 신기전의 위용(영화의 한 장면) |
▲ 절대음감의 소유자 세종은 박연도 몰랐던 편경의 잘못된 것을 찾아냈다.("지음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칠정산 내외편은 해, 달, 별의 운동을 계산한 수학적 방법의 역학(曆學) 결산서이며, 세금을 징수할 때는 토지의 질, 수확의 양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19등분으로 나누어 매겼고, 이를 위해 자와 저울, 되말을 정확히 규정하였다. 땅의 거리를 재는 ‘기리고차’, 최초의 로켓포 ‘신기전’도 세종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종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모든 분야에 과학적 사고를 접목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세종실록》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으니 누구도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일이다. ‘문자의 아버지’, ‘언어학의 아버지’, ‘도량형(度量衡)의 아버지’, ‘천체관측의 아버지’, ‘역학의 아버지’, ‘측량의 아버지’, ‘음악의 아버지’, ‘(백성)교육의 아버지’, ‘(여성)인권의 아버지’ 등, 이른바 서양의 ‘아버지’로 불리는 많은 사람들보다 앞선 15세기에 이미 그는 근대 과학적 사고와 그 실천으로 수많은 서적과 과학기기를 남긴 사람이니, 그를 ‘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주저할 일이 없지 않은가?
2014.2.10.©홍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