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윤지영 기자]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김동명 ‘파초’-

▲ 이것이 파초나무, 기념관 뒤쪽에 3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게 바로 파초랍니다” 스스로를 문학관 지킴이라고 소개하는 김혜경 씨는 문학관 뒤편 김동명 시인 무덤으로 가는 언덕길 입구에 심어져 있는 바나나나무처럼 생긴 ‘파초’를 손으로 가리켰다. 언뜻 보면 바나나나무 같은 파초는 시인이 말한 “남국을 향하는 향수”처럼 작년 7월 문학관 개관 때 심어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초허 김동명 시인(金東鳴, 1900~1968)은 강릉 사천 출신으로 망국(亡國)의 한을 노래한 “파초”를 비롯하여 “내 마음은 호수요”, “수선화” 등 주옥같은 시를 남긴 한국 현대시사에 있어 대표적인 전원파 시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보다 그는 일제에 항거하여 1942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붓을 꺾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민족시인 이었고 군사정권 하에서는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불의 앞에 항거한 시인이기도 하다.
![]() |
||
문학관 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가니 “어서오세요”라고 인사하며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이하는 직원이 있어 문화해설사냐고 물으니 “지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김혜경 씨의 안내로 작고 아담한 문학관 안을 둘러보았다.
문학관 안에는 대부분의 문학관에서 볼 수 있듯 작가의 일생과 작품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글과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고 저서들도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로 시작하는 국민가곡 “수선화”를 비롯하여 “내 마음은 호수여 그대 노 저어 오오...”와 같은 불멸의 시를 남긴 시인임에도 김동명 시인은 작품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벽에 전시한 김동명 시인의 책들
초허 김동명 시인은 1900년 6월 4일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 노동하리 71번지 (현, 강릉시 사천면)에서 아버지 김제옥과 어머니 신석우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주한 이래 5년 만에 다시 함흥으로 옮겨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흥남에서 소학교 교원으로 활동하다가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아오야마 전문학원에서 수학했다. 유학 중인 1922년 《개벽》지에 “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이라는 보들레르에게 바치는 시로 문단에 나온 이래 1930년 첫 시집 《나의 거문고》를 냈다. 이어 1936년 47편을 묶어 두 번째 시집《파초》를 펴낸 이래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정책에 항거하여 1942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붓을 꺾고 창씨개명을 거부하였다.
![]() |
||
| ▲ 김동명 시인 | ||
김동명 시인은 윤동주, 이육사, 심훈처럼 우리 문학사에 빛나는 저항시인으로 그 지조와 절조를 지녔던 분임을 문학관을 돌아보며 다시 느꼈다. “저항”이라는 말은 광복 두 시간 전까지 친일하던 김동인, 성전(聖戰)에 조선의 청년년들이여 어서 죽으라던 김동환, 님의 부르심을 받드는 여인 노천명, 오장마츠이를 위한 사모곡을 쓴 서정주처럼 숱한 문학인의 변절을 지켜본 우리에게는 매우 값지고 소중한 “가치”이다.
개관한지 얼마 안 되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김동명문학관이지만 전시관 한쪽에는 시모임을 하면 딱 좋을 만한 공간에 넉넉히 테이블을 마련해두고 언제든지 시낭송 등 문학활동을 할 수 있게 꾸며 놓아 앞으로 이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쉬운 것은 전시관 안에 붙박이로 적어 놓은 김동명 시인의 해적이(연보)와 사진 말고는 그 흔한 홍보물 한 장 없는 것이 좀 아쉬웠다. 생가 터에 문학관이 들어서 있어 약간 외진 느낌이 들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장점일 수도 있다. 번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김동명문학관에 와서 김동명 시인의 작품을 배우고, 시를 접할 수 있는 장·단기적인 프로그램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지자체에서 숱한 예산을 들여 그럴듯한 문학관을 잘 지어놓고 있지만 정작 들여다보면 문학관의 주인공에 대한 살아있는 정신을 이어 받을 수 있는 내용이 부실한 곳이 많다. 우리가 좋은 이야기를 나눌 때 흔히 “이야기 꽃을 피운다” 라고 하듯이 문학정신이 살아 있어 “말꽃”으로 우리의 삶 속에 다시 피어나게 하려면 화석화된 전시관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볼거리, 느낄거리, 읽을거리” 를 만들어내고 무엇보다 중요한 “참여할 거리”를 부지런히 창출해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김동명 시인은 경주 김씨 문중들과 합장 되어있다
전시관을 나와 김혜경 씨는 문학관 뒤 언덕 넘어 김동명 시인의 무덤까지 안내해 주었다. 김동명 시인은 68살 되던 해인 1968년 1월 21일 3년간 않던 고혈압으로 숨져 서울 중랑구 망우동 묘소에 안장되었다가 42년 뒤인 2010년 10월 10일 지금의 강릉시 사천면 노동하리 산 32-4번지 선영으로 이장되었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김동명문학관 모습
김동명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기자는 그의 명작 “내 마음은 호수요”를 조용히 불러보았다. 그의 노랫말처럼 최후의 한 방울도 아낌없이 태운 촛불처럼 주옥같은 시로 그리고 민족의 수난기에 불굴의 저항정신을 발휘한 몇 안 되는 민족시인으로 한 시대를 살다간 그의 위대한 문학혼이 파초의 너른 잎처럼 온 나라에 퍼지길 빌어보았다.

▲ 김동명 문학관 앞 동네에 누군가 벽화를 그려 놓았다
*주소: 강원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11
*전화: 033-640-42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