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용한 사무실에 ‘타닥타닥~’ 소리가 울린다. 바로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기계식 키보드가 유행이라고 한다. 주변에도 화려한 키보드를 보유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을 것이다. 많은 개발자와 게이머들도 기계식 키보드를 선호한다. 대체 왜 기계식 키보드를 쓰는 것일까? 기계식 키보드의 주요 원리와 장단점에 대해서 알아본다.
#1 할리데이비슨이라는 오토바이가 있다. 100년도 넘은 역사를 자랑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독보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누리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소리’에 있다. ‘두두두둥~’하면서 라이더의 가슴을 울리는 말발굽 엔진음이 이 오토바이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다.
#2 군대 시절 행정병을 했다는 직장인 ㄱ 이사님. 당시엔 군대에 컴퓨터가 없어서 타자기를 사용했다는 그는 오래전부터 기계식 키보드 매니아로 활동 중이다. 일반 키보드에 견줘 값은 비싸지만, 타자기의 느낌이 나서 좋다는 게 그의 답변이다.
한때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소수만 사용하던 기계식 키보드(Mechanical Keyboard)가 사용자층을 점차 넓혀 나가고 있다. 기계식 키보드는 스프링과 몇 가지 부품을 써서 스위치들이 각각의 자판 버튼을 구성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기판에서 입력을 인식하는 방식의 키보드다. 원래는 금속의 접촉으로 키 눌림을 감지하고 작동하는 키보드와 구분하기 위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금속 스프링으로 된 스위치를 가지고 이동이 끝나기 전의 어느 시점에서 걸쇠가 걸려 작동하는 스위칭 메커니즘을 쓰는 키보드를 ‘기계식 키보드’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걸쇠식 키보드(Latch-Based Keyboard)’라고도 부른다.
기계식 키보드의 역사
기계식 키보드의 원조는 타자기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멤브레인(Membrane)’ 입력 방식의 키보드가 보급되어 싼값을 바탕으로 기계식 키보드를 밀어냈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키 밑에 전기가 통하는 고무 패드가 깔린 현재 대부분이 사용하는 일반 키보드라고 할 수 있다. 각 버튼 밑에 고무가 깔려 있어 이 고무가 바닥에 눌리면 전기가 통해 온(On)이 되고, 키가 눌리지 않았을 땐 고무의 탄성으로 떨어져 오프(Off)가 되는 원리다.
그동안 키보드는 컴퓨터를 사면 덤으로 주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은 싼값에 양산 가능한 멤브레인 방식의 키보드가 대중화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2010년경 독일 체리사에서 내놓은 스위치를 이용한 기계식 키보드가 출시되면서 기계식 키보드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멤브레인이나 다른 키보드와 견줘 품질 차이는 크지 않고, 값 차이는 커서 개인 소비자 외 PC방 등의 업계에서는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체리사의 독점 특허권이 만료되면서 다른 제조사들이 스위치를 사용한 저렴한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해 기계식 키보드 사용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기계식 키보드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게이밍 기어 시장이 활성화된 것과도 흐름을 같이 한다. 작은 차이가 승부에 직결되는 게임의 특성상 키보드와 마우스는 가장 중요한 게이밍 장치(기어) 가운데 하나기 때문이다. 모든 게이밍 키보드가 기계식인 것은 아니지만, 고성능을 요구하는 게이밍 기어 시장에서 기계식 키보드는 고성능 이미지를 내세워 사용자층을 점차 확대하기 시작했다. 또한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MZ세대의 문화도 기계식 키보드 시장을 확대한 요인으로 꼽힌다.
기계식 키보드의 구조
기계식 키보드는 스프링과 그 위에 얹어 키캡과 연결되는 플라스틱 구조물, 그리고 이를 감싸는 플라스틱 덮개가 하나의 스위치(축)를 이룬다. 스프링의 강도와 구조물의 모양을 다르게 만들면 키를 누르는 느낌이 달라지며, 이를 구별하기 위해 구조물에 색상을 입히고 스위치의 이름을 색상으로 명명하고 있다.
압력이 조금만 달라져도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스프링 강도를 바꾼 축은 다른 색깔로 분류해 출시하지만, 구동 방식이 비슷하면 색깔은 달라도 같은 카테고리에 넣는다. 그래서 클릭, 넌클릭, 리니어 등으로 분류한다. 청축, 녹축은 클릭에 속하고, 갈축, 백축은 넌클릭에 속하며, 흑축, 적축은 리니어에 속한다.
기계식 키보드는 건반(키)을 누를 때 흔히 ‘키감’이라고 불리는 촉감이 제품별로 다양하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누를 때 획일적인 압력을 갖지만, 기계식 키보드는 내장된 축에 따라 각기 다른 반발력을 갖는다.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타자기를 치는 느낌을 주는 ‘청축’, 조용하지만, 키 압력이 낮아 빠른 타이핑에 유리한 ‘갈축’, 키 압력이 가장 높아 키가 다시 튀어 오르는 반발력도 높아 반복적인 키 연타에 적합한 ‘흑축’ 등이 대표적인 축 종류다.
청축은 중간 슬라이더가 축과 분리되어 있으므로 축이 중간 슬라이더를 별도로 움직이게 만들면서, 입력하는 느낌과 별개로 좀 더 누를 때 소리가 크게 난다. 따라서 입력감과 딸깍거리는 클릭음이 합쳐져 훨씬 큰 구분감을 느끼도록 하는 기계식의 가장 기본적인 스위치다. 특유의 타닥타닥 거리는 시끄러운 소리는 대부분 청축 키보드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청축을 뺀 다른 축들은 슬라이더가 축과 결합했다. 갈축은 돌기부분이 돌출되어 있어서 접점부에 닿을 때 걸림이 발생한다. 이렇게 돌기에 굴곡이 있어 구분감을 주는 스위치를 통틀어 넌클릭 스위치라고 부른다. 적축, 흑축은 리니어 타입 스위치로, 돌기부분에 굴곡이 없고 평평하여 걸림이 없는 타입이다. 이처럼 키압과 키감에 따른 다양한 종류의 스위치가 있어 작가, 프로그래머, 게이머에게 특히 선호도가 높다.
기계식 키보드의 장단점
기계식 키보드는 커스터마이징(맞춤제작)이 가능한 키보드다. 기판, 스위치, 하우징, 키캡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재료들도 커스텀 유저들 사이에서 공동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획일화된 키보드 디자인을 벗어나 독특한 디자인의 키보드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도 기계식 키보드 매력의 고갱이다. 개별 키마다 다른 축을 적용해 나만의 최적화된 키보드를 만들 수도 있고, 키캡 교환으로 색다른 키보드를 만들 수도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효과의 LED로 빛나는 기계식 키보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만약 키가 고장 나더라도 해당 키만 교체할 수 있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또한 게이밍 키보드로 주로 쓰는 것은 무한 동시입력이나 매크로 등 다양한 게임 특화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여러 키를 순서대로 눌러야 할 때나 동시에 눌러야 하는 상황을 하나의 키로 동작할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어 게임 스타일에 따라 바쁜 손놀림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무한 동시입력(Anti-Ghosting)은 로스팅 블로킹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고스팅(Ghosting)은 누르지 않은 키와 연결된 회로로 전류가 흘러, 해당 키에서 키가 입력되는 현상을 가리키며, 3개 이상의 키를 동시에 누르면 발생할 수 있다. 블록킹(Blocking)은 고스팅을 막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고스팅을 발생시키는 키 입력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기계식 키보드는 구조상 키를 끝까지 누르지 않아도 입력(일명 구름타법)이 가능하다. 이러한 기능을 오버트래블(Overtravel)이라고 한다. 키보드에서 오버트래블은 빠르게 타이핑을 하는 도중에 실수로 키를 끝까지 누르지 못해 키를 입력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인체공학적 설계다. 기계식 키보드는 오버트래블 덕분에 키를 바닥까지 눌러줘야 하는 부담감 없이 편안한 타자가 가능하다.
기계식 키보드의 단점도 있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일반적으로 1만 원 안팎의 싼값이지만 기계식 키보드는 싼 것은 10만 원대에서 좀 비싼 것은 50만 원대를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최근에는 6만~7만 원대까지 가격을 낮춘 기계식 키보드도 출시되고 있다.
아울러 일반 키보드와 달리 방수나 방진 처리를 하기 힘든 것도 단점이다. 기계식 스위치는 전도성과 물리적인 접촉을 요구하고 금속 접점의 특성상 산화에 취약하므로 액체, 먼지와는 상극일 수밖에 없다. 먼지 관리를 철저하게 해주지 않거나, 쓰지 않고 보관만 하면 오작동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힘들여 타자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집이 아닌 사무실과 같은 곳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쓸 때는 사전에 주위 사람들의 양해를 구해야 할 수도 있다. 취향도 좋지만 시끄러운 소리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도 있으니 환경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좋다.
AhnLab 콘텐츠기획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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