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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고운의 문장 속 차를 다시 읽는 까닭
[우리문화신문=손병철] 고운 최치원은 흔히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자 입당 급제의 수재, 그리고 귀국 뒤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은둔의 길로 들어선 지식인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삶과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바탕에는 늘 ‘차’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는 고운에게 단지 갈증을 푸는 음료가 아니라, 시와 문장을 맑히고 마음을 씻는 수양의 매개였으며, 차와 시서의 풍류가 한데 어우러지는 문인적 삶의 일상적 토대였다.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며 대륙의 중원에서 이름을 떨쳤다. 특히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 격문으로 알려진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당대에 “천하의 문장이 번개처럼 떨어졌다”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명문장으로 회자된다. 그 기세와 문장은 젊은 천재의 빛나는 성공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그 문장 속에는 전란과 혼란을 직시하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시기의 고운은 칼날 같은 문장으로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귀국 뒤의 삶은 달랐다. 신라 조정의 혼탁한 정치 현실 속에서 그의 개혁적 이상은 번번이 좌절되었고, 경남 일대의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에도 세도와 문벌의 장벽은 그를 밀어냈다. 함양에 남아 전해지는 천년숲 상림(上林)공원은, 고운이 태수라는 관직의 번다함 속에서도 자연과 더불어 사유하고 백성의 쉼을 도모하려 했던 문인의 면모를 전해 준다. 정치를 넘어 삶의 공간을 가꾸려 한 그 시도는, 차를 달여 벗과 나누던 고운의 풍류와도 통한다. 그의 《계원필경집》에 남아 있는 차에 관한 글을 보면, 고운의 일상적 수양이 더욱 생생히 드러난다. 새 차를 받았을 때 그는 차의 산지와 향, 달이는 법과 잔의 기품을 한 폭의 산수화처럼 묘사하며, 선승이나 도인을 맞아 고요히 마시는 장면을 그린다. 차는 고운에게 마음을 맑히는 의식이자, 시를 낳는 물이었고, 붓끝의 번뇌를 씻는 한 모금의 휴식이었다. 또한 사신선이 바다를 건너왔을 때 차와 약재를 함께 구해 집으로 보내려 했다는 대목은, 차가 이미 당대 생활 속에서 건강과 치유의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만년의 고운은 세속의 벼슬을 버리고 산천을 유랑하며 은둔의 길로 접어든다. 해인사 일대에 전해지는 ‘고운이 짚고 다니던 소나무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자랐다’라는 전설, 그리고 마침내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그가 현실 정치의 번뇌를 벗고 자연과 도의 세계로 귀의한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민간의 기억일 것이다. 사산(四山, 사면에 둘러 있는 산들) 비문에 담긴 고승들의 삶을 기리는 문장 속 ‘진실을 지키고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태도’는, 곧 고운 자신 삶의 방향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고운 최치원의 삶은 입당 급제의 찬란한 성공, 토황소격문의 문명(文名), 귀국 뒤의 좌절과 은둔, 그리고 신선 설화로 이어지는 한 편의 장대한 서사다. 그 서사의 사이사이를 잇는 조용한 실마리가 바로 차다. 차는 전란의 격문을 쓰던 젊은 날의 심장을 식히고, 관직의 번다함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며, 산천을 떠돌던 만년의 고독을 따뜻하게 데웠을 것이다. 고운에게 차는 시를 낳는 물이요, 문장을 맑히는 향이며, 붓끝의 고단함을 씻는 한 모금의 쉼이다. 차를 달이는 솥과 잔은 곧 시서의 작업대가 되고, 그 위에 피어오르는 김과 거품은 무상 속에서도 맑음을 지키려는 문인의 마음을 비춘다. 오늘 우리가 고운의 문장 속 차를 다시 읽는 까닭은, 한 잔의 차와 시서의 필묵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동아시아 문인의 태도임을 새삼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신의주가 바라보이는 단동에서 라석)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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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가물 꺼질 듯 피어나는 마음의 불꽃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창가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아끼던 기억들이 바다 끝 너머로 몸을 숨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어제 일처럼 뚜렷했던 얼굴들이 시간의 먼지에 쌓여 모습만 남은 채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멀리서 깜빡이는 등대 불빛을 닮았습니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아스라한 그림자들을 붙잡아두고 싶어 우리는 마음의 눈을 가늘게 뜨곤 합니다. 바쁜 나날에 가려져 잊고 지냈던 마음속 풍경들이 이토록 위태롭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만듭니다. '가물거리다'는 '불꽃이나 빛 같은 것이 꺼질 듯 말 듯 자꾸 약하게 흔들리다' 또는 '정신이나 기억이 흐릿해지다'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입니다. 이 말의 말밑을 생각해보면 작고 여린 움직임을 나타내는 '가물'에 같은 움직임이 되풀이된다는 뜻의 '-거리다'가 붙어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단순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으려고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깜빡이는 생명의 힘이 담긴 표현이기도 합니다. 빛이 완전히 꺼지기 전의 그 간절한 깜빡임, 혹은 잠들기 바로 직전 꿈결 같은 상태를 이보다 더 섬세하게 나타낼 낱말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연의 빛이 흐려지는 모습과 사람의 마음이 흐릿해지는 과정을 하나의 결로 바라보며 이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 쓰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또렷하고 확실한 것만을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참모습은 때때로 똑 부러지는 논리보다는 가물거리는 기억의 조각 속에,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그리움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곤 합니다. 가물거리는 불빛을 억지로 밝게 켜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흐릿함이 주는 넉넉함과 아련한 기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잊혀가는 것들이 보내는 마지막 인사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잃어버렸던 나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흐릿해진다는 것은 아주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억의 층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가물거리며 신호를 보내는 소중한 무언가를 가만히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을 위한 덤] 잊혀가는 소중한 순간들을 적바림하기 위해 오늘 하루 중 가장 아련했던 장면 하나를 짧은 날적이(일기)로 남겨보세요. 흐릿해진 기억의 실타래를 억지로 풀려 하지 말고 그 느낌 그대로를 마음의 사진첩에 담아두는 연습을 해 보는 것입니다. '어릴 적 할머니 옷에서 나던 포근한 냄새'나 '비 오던 날 창가에 비친 가로등 불빛의 번짐' 같은 것들을 글로 적어보세요. 서툰 글이라도 괜찮으니 그때 느꼈던 가물거리는 마음의 결을 자세히 그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가물거리며 빛나고 있는 추억은 무엇인가요? 그 희미한 빛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잠시 그곳에 머물러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오늘의 토박이말] ▶ 가물거리다 뜻: 1. 작고 약한 불빛 따위가 사라질 듯 말 듯 움직이다. 2. 물체가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움직이다. 3. 의식이나 기억이 조금 희미해져서 정신이 있는 둥 없는 둥 하다. 보기: 저 멀리 바다 끝에서 고깃배의 등불이 가물거리며 깊어가는 밤을 지키고 있었다. [한 줄 생각] 희미해진다는 것은 기억이 마음의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는 다정한 신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