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얇은 책 한 권이 국보를 다 설명하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7월 22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월인 콘퍼런스 2026'에서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소책자 《국보 월인천강지곡》이 행사 이후에도 잔잔한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학술대회의 부속 자료로 만들어진 얇은 소책자(리플릿) 한 권이, 정작 본 행사 못지않은 주목을 받은 것이다. 이 소책자가 눈길을 끈 까닭은 분명하다. 한글 7쪽, 영문 7쪽의 완전 대역 구성으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국보 한 종을 놓고 그 문헌적 내력부터 세계사적 의미, 세종의 한글 사랑, 전승의 곡절, 그리고 오늘날의 활용까지를 일곱 개의 마당으로 나눠 압축해 담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마당에, 외국인 참가자와 나라 밖 관계자에게 그대로 건넬 수 있는 영문 자료가 함께 묶였다는 점도 호평을 받았다. 하나의 달, 천 개의 강 첫째 마당은 제목 풀이에서 시작한다. "밝은 달빛 하나가 천 개의 강물에 비친다"라는 부제 아래, 부처의 자비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비치는 것을 달빛에 견준 제목의 뜻을 풀어 놓았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세종이 1446년 아내 소헌왕후를 여의고 그 명복을 빌기 위해서 직접 지은 한글 찬불가로, 1447년경 펴냈다. 상ㆍ중ㆍ하 모두 3권에 담은 노래 583곡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것은 상권 194곡이다. 《월인석보》에 남아 있는 것까지 합치면 498.5곡이 된다. 소책자는 이 책을 "세종대왕의 아내 정신과 한글 사랑 그리고 왕후를 향한 지극한 마음이 빚어낸 한글 문화의 정수"로 규정했다. 구텐베르크보다 8년 앞선 '세계 최초’ 둘째 마당 '세계사적 의미'는 "인류 인쇄문화사의 획기적 전환점"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세계 처음 자국문자 금속활자본(1447년경)이자, 구텐베르크 금속활자(1455년)보다 8년 앞서 간행된 첫 한글 전용 창작 문학작품이라는 점을 짚었다. 기술 혁신의 측면도 놓치지 않았다. 훈민정음 창제 1년 만에 금속활자를 제작했고, 갑인자 병용 한글자로 인쇄했으며, 상권만으로도 9,986자에 이르는 대규모 한글 활자를 구현했다는 것이다(전체는 3만여 자로 추정).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월인천강지곡》(1447년경)—구텐베르크 금속활자(1455년)를 나란히 놓은 연표는 이 책의 자리를 한눈에 보여준다. 448년을 견딘 보존의 기적 셋째 마당 '문화유산적 가치'는 "대한민국 국보를 넘어 세계의 보물로"를 내걸었다. 역사(임금이 직접 지은 유일한 찬불가), 국어학(15세기 한국어 사용의 생생한 기록), 문학(583곡에 달하는 대서사시), 종교(불교 사상의 예술적 승화), 서예(한글 서체의 조형미 극치), 인쇄(빼어난 금속활자)라는 다층적 값어치 체계를 조목조목 정리했다. 특히 '보존의 기적'이라는 항목이 인상적이다. 1466년 실상사 본존불 복장(腹藏)에 봉안된 뒤, 1914년 훼손된 불상에서 발견되기까지 448년 동안 절에서 완벽하게 보존됐다는 것. 출처와 소장 경로가 명확한 희귀 사례임을 강조했다. 2017년 국보 지정, UN본부 한국 대표 문헌 전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이라는 국제적 인정의 흐름도 함께 실렸다. 12mm 한글, 5mm 한자 넷째 마당은 이 소책자에서 가장 '새로운' 대목으로 꼽힌다. "한글 전용의 선구적 실천, 한글 주류 문자의 꿈"이라는 부제 아래, 세종이 이 책에서 한글은 큰 글꼴로, 한자는 작은 글꼴로 배치한 '한글 우위 표기'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원본 실측 자료가 그대로 실렸다. 받침 있는 글자 '월'은 가로 12mm 세로 14mm인데 그 아래 한자 '月'은 5mm에 9mm, 받침 없는 글자 '지'는 13mm에 12mm인데 '之'는 7mm에 9mm다. 한글이 한자보다 확연히 크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되는 셈이다. 또한 《용비어천가》와 《석보상절》이 한문 원작을 한글로 뒤친 것이지만, 《월인천강지곡》은 처음부터 한글로 직접 창작했다는 결정적 차이를 세 문헌의 판면 사진을 나란히 놓아 대비시켰다. 임금이 백성과 직접 소통하려 한 의지가 표기 방식에까지 배어 있다는 해석이다. 1447년에서 2026년까지, 살아 있는 유산 다섯째 마당은 전승 과정을 연표로 풀었다. 1447년경 간행(세종 29년) → 1466년 부안 실상사 불상 복장 봉안(효령대군) → 1914년 백학명 스님(내소사 주지)이 소각 직전 수습 → 미상의 사가(私家) 유전기 → 1961년 서지학자 진기홍의 서지학적 검증과 소장(3권 체제 확인, 영인본 간행) → 1972년 (주)미래엔(대한교과서) 김광수 회장 인수 → 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기탁 보관 → 2017년 국보 제320호 지정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통과해 살아남은 내력이 한 장에 정리됐다. 끝에는 2026년 4월 24일 세종시와 (주)미래엔이 맺은 '월인천강지곡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업무협약식' 사진을 실어, 등재 추진이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다시 살아난 금속활자, 그리고 위패도 여섯째 마당 '금속활자에 담겨 온 한글'은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복원한 현대 활자판과 그 인쇄 결과를 첫째 장 원본과 나란히 배치했다. 《훈민정음》(1446)과 같은 돋음체이지만, 목판본이 아니라 금속활자본이며, 사용된 활자는 1434년(세종 16년) 주자소에서 구리 활자로 제작된 갑인자(甲寅字)로서 모양이 바르고 크기가 고르다는 설명이 붙었다. 일곱째 마당 '월인석보 속 월인천강지곡'은 학술적으로 가장 묵직한 대목이다. 《월인석보》 1권(모두 108장)의 짜임새를 입체 도해로 보여준 뒤, 그 안에 실린 위패도(位牌圖)를 확대해 실었다. 위패에 새겨진 "世宗御製月印千江之曲 昭憲王后同證正覺"은 "세종이 몸소 지으신 《월인천강지곡》으로, 소헌왕후께서 함께 바른 깨달음을 이루소서"라는 뜻으로, 《월인천강지곡》을 세종이 직접 지었다는 가장 명시적인 증거로 꼽힌다. 《월인천강지곡》 등재추진위원회 기획 소책자는 월인천강지곡 등재추진위원회가 기획하고 세종국어문화원이 펴냈다. 글은 김슬옹, 맵시는 강수현, 번역은 강형원, 교열은 신연수ㆍ송윤솔, 감수는 박병천ㆍ김동래가 맡았다. 국보 한 종을 열여섯 쪽에 담아내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작은 책은 학술적 엄밀함과 대중적 친절함을 함께 붙들었고, 무엇보다 영문 대역을 통해 《월인천강지곡》을 세계 앞에 내놓을 준비를 마쳤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긴 여정에서, 이 소책자는 첫 번째 명함 노릇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