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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나라를 세웠다’는 의문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답사 중간 지점을 통과하여 청도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어제 오전부터 목이 부어 약을 먹기 위해 저녁으로 미음을 한 그릇 먹었다. 대원들이 챙겨준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다. 답사단의 리더로서 소통이 원활해야 하는데, 말하기조차 어려우니 답답한 마음이다. 오늘 저녁까지 따뜻한 물만 먹는데도 넘어가지 않는다. 내일의 여정을 위해 서둘러 자리에 누웠다. ▶알백대(阏伯台, 상구(商丘), 11km분) : 알백은 제곡의 아들로 약 4,500년 전 상(商)나라의 시조로, 불을 관장하는 '화정(火正)'이라는 직책을 맡았기에 그를 모신 곳을 ‘화신대(火神台)’라고 부른다. 끝없이 펼쳐진 산둥 평원에서 위로 솟은 알백대는 도성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사당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계단 뒤편으로 가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인 화성대(火星台)가 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별자리를 보고 농사 시기를 결정했던 만큼 고도의 문명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알백의 봉호(임금이 내려 준 호)가 '상(商)'이었기 때문에 이 언덕을 '상구'라고 부르게 된 것에서 지명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특히 넓은 광장 중앙에 화상(華商)의 시조 왕해(B.C. 1854~B.C. 1803)의 동상이 서 있다. 광장이 넓고 미로 같은 진입로 때문에 일부 단원들이 남문 주차장으로 가서, 광장 중앙으로 안내하였다. ▶ 미자 사당(微子祠) :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의 형이자, 멸망한 뒤 은나라 유민을 다스렸던 송(宋)나라의 시조 미자의 무덤이다. 기원전 1,046년 경, 주나라 무왕(周武王)은 은나라를 멸하고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을 시켜 은나라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나 무경이 반란을 꾀하다 전사하자, 주나라는 주왕의 형인 미자(微子)를 봉해 은나라 유민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기자는 미자의 태사(太師)가 되어 송나라 건국을 도왔다고 한다. 미자 무덤이 상구 남쪽, 기자 무덤이 상구 북쪽에 있는데, 무덤의 위치로 보아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나라를 세웠다는 '기자조선설(箕子朝鮮說)'에 의문이 간다. 진나라 이전 자료 살펴보면 《논어》에 공자는 기자를 은나라 3명의 현인(三仁)이라고 칭송한 내용은 나오지만, 조선과 관계된 내용은 없다고 한다. 《논어(論語)》, 「微子」 :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미자(微子)는 주(紂)왕을 버리고 떠났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었고, 비간(比干)은 간언(諫言)하다가 죽었다고 공자가 말하였다. 은나라에는 세 분의 어진 사람(仁者)이 있었다.” 이곳 상구에서 미자와 기자의 흔적을 확인함으로써, 공자가 말하는 은나라의 현인 가운데 비간 만 빼고 두 분을 다 만나게 되는 것이다. 비간(比干)은 미자, 기자와 함께 은나라의 '삼인(三仁)'으로 불리는 충신이다. 답사 중 서길수 교수님이 자료를 보내주어 이곳을 답사하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임금의 무덤이라 규모가 있다. 기자와 미자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다. ▶제곡릉(帝喾陵, 五帝, 25km, 30분) : 오제(五帝) 가운데 한 명으로 황제의 증손자이자 소호 금천씨의 손자다. 전욱 고양 씨의 뒤를 이어 조카인 고신 씨(高辛氏)가 제위에 올랐는데, 이가 바로 제곡이다. 그는 성인(聖人)의 덕을 지녔다고 전해지며, 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거(倨), 호는 고신 씨다. 궁상(穷桑)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 수양구 고신진(高辛镇)에 봉해졌다. 요임금의 아버지이자 상나라, 주나라 등이 제곡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 능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거대한 봉분의 크기에 견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되어 아쉬움이 남았다. 묘역 비석 주변에 동네 노인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데, 고대 제왕의 성역이라기보다 마을의 쉼터가 된 듯한 풍경이라 묘한 대조를 이룬다. ▶ 기자묘(箕子冢) : 하남성 상구(河南 商丘)와 산동성 조현(山东 曹县) 두 곳에 있다고 전해진다. 먼저 상구시 양원구 몽장사촌을 찾아가 촌장과 주민들에게 물었으나, 모두 기자의 무덤을 모른다고 답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산동성 조현의 탕릉(汤陵) 서쪽인 왕창촌(王厂村)에도 기자의 무덤이 있다고 하나, 일정상 그곳까지 갈 수 없었다. 바이두 백과 등 자료에는 기자 무덤의 위치와 사진이 남아 있으나 현장에서 실체를 찾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산동성 넓은 들판에는 농부들이 마늘을 심고 있다. 끝없이 이어진 옥수수밭 위로 오전에 반짝 비쳤던 해는 사라지고, 오후 내내 가시거리 300m 정도의 짙은 연무가 깔렸다. 상구에서 임치(临淄)로 향하는 길 전체가 연무에 휩싸여 마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번 답사 가운데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한 고된 하루였다. (임기 临沂, 442km, 3시간 이동, 호텔 : 新闻大厦丽呈酒店 0539-896 3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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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노래가 도시를 북돋운 날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광화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거리가 밝아졌다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길이 붐비고, 가게마다 손님이 늘고, 서울 곳곳에 웃음이 번졌다고 합니다. 노래를 들으러 모인 사람들이 도시의 기운까지 살려 놓은 셈입니다. 이 모습을 보며 생각난 우리말이 있습니다. 바로 '북돋우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북돋우다를 '기운이나 정신 따위를 더욱 높여 주다'라고 풀이합니다. 쉽게 말하면 힘이 나게 해 주고, 마음이 더 잘 움직이게 밀어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북돋움'은 '북돋우다'에서 나온 이름씨꼴로, 그렇게 힘을 나게 해 주는 그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북돋우는 일을 자주 합니다. 동무가 힘들어할 때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도 북돋우는 일이고, 아이가 잘했을 때 칭찬해 주는 것도 북돋우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등을 살짝 두드리며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기운은 살아납니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래를 들으러 모인 사람들 덕분에 거리가 살아나고, 가게에 손님이 늘고, 도시가 밝아졌습니다. 공연이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고, 그 마음이 다시 경제와 도시를 북돋운 것입니다. 사람의 기운이 살아나면 주변도 함께 살아난다는 것을 보여 준 모습입니다. 그 열매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불편함을 참아 준 많은 분들 덕분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북돋우는 일은 뭐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됩니다. 큰 돈이나 큰 행사가 없어도 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반가운 인사 하나, 함께 웃는 시간만 있어도 넉넉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살아나면 그곳에 밝은 기운이 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기운을 북돋워 보시면 어떨까요.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함께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됩니다. 그 작은 북돋움이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한 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북돋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식구들이 잘 다녀오라고 말해 줄 때 힘이 나는 것도 북돋움이고, 동무가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 때 용기가 생기는 것도 북돋움입니다.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지고, 가게 주인이 밝게 인사해 주면 하루가 기분 좋아지는 것도 모두 북돋움입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나를 북돋워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떠올려 보고, 내일은 내가 먼저 누군가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 되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북돋우다 (움직씨) 뜻: 기운이나 정신 따위를 더욱 높여 주다 보기: 동무의 따뜻한 말이 내 마음을 북돋우었다. [한 줄 생각]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는 작은 말 한마디가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