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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노래 <목포의 눈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1935년에 나온 노래 ‘목포의 눈물(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입니다. 이희철 어르신의 회고록 《못다 이룬 귀향의 꿈》에 나온 노래들을 음미하다가, ‘목포의 눈물’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1999년과 2000년에 목포지원에서 근무할 때 이 노래를 많이 들었거든요. 목포를 대표하는 노래인지라, 유달산에 오르다 보면 이난영 노래비가 있고, 그 노래비에서는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지요. 그 당시 저는 아침 운동으로 노적봉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달산 일등바위까지 뛰어오르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들어 뛰다 서다 하였는데, 나중에는 한 번도 안 쉬고 일등바위까지 오를 수 있더군요. 그때마다 이난영 노래비 앞을 지나쳤고, 오래되어 기억이 확실치 않으나 가끔은 노래비에서 흘러나오는 ‘목포의 눈물’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난영 선생(1916~1965)이 목포를 대표하는 가수라 목포시에서는 파주공원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이난영 선생의 유해를 2006년 목포로 이장하고, 이곳을 난영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난영가요제를 열고 있지요. 이난영 선생은 이렇게 죽은 뒤 목포의 가수로 존경받지만 생전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편 김해송은 바람도 많이 피우고, 아내 이난영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다가 6·25 때 납북되었는데, 일각에서는 납북이 아니라 월북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더군요. 그 뒤 이난영 선생은 혼자서 자녀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1957년부터 가수 남인수와 사실상 부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인수마저 1962년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목포의 눈물’이 실제 이 노래를 한 가수의 눈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군요. 그리고 광복 뒤 첫 걸그룹인 유명한 김시스터즈가 이난영 선생의 딸들과 조카라는 것은 많이 알려졌지요? 그런데 어머니인 이난영 선생이 일제강점기 때 첫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저고리 시스터즈의 구성원이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가만있자... ‘목포의 눈물’ 이야기하면서 정작 노래 자체에 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았네요. 노래 가사를 보니 헤어진 연인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군요. 그러니 노래 제목이 ‘목포의 눈물’이겠지요. 가사를 음미하다 보니 다시금 제가 아침마다 뛰어오르던 유달산이 생각나고, 유달산에서 내려보던 삼학도가, 또 차를 타고 건너다니던 영산강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에 유달산에 올랐을 때 운해(雲海) 위에 우뚝 선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던 생각도 납니다. 운해의 바다에서는 산들도 실제 섬들과 형제처럼 떠 있는데, 어느 것이 섬이고, 어느 것이 산인지 헷갈리더라고요. 그때 한 폭의 동양화 같은 경치에 넋을 놓고 바라보던 생각이 납니다. 2절 처음에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라고 하였지요? 삼백 년은 임진왜란이 끝난 1597년부터 목포가 개항한 1897년까지 300년입니다.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봉우리에 짚과 섶을 둘러놓은 데서 노적봉(露積峯)이라고 부른다고 하지요. 그래서 노적봉이 300년 동안 임진왜란의 상처를 잊을 수 없어 ‘삼백 년 원한 품은’이라고 한 것이겠네요. 그런데 이 노래가 1935년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일제강점기이니 일제는 이 노래 가사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 때에는 이 노래 가사를 ‘삼백 년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로 바꿨습니다. ‘원안풍’이라는 바람이 있나요? 일제의 검열을 피하려고 ‘원한 품은’과 발음이 비슷한 ‘원안풍은’으로 바꾼 것이지요. 이제 사설은 그만두고 눈을 지그시 감고 유투브에서 검색한 이난영 선생의 ‘목포의 눈물’에 빠져들어 보겠습니다. ▲ 이난영 선생의 ‘목포의 눈물’ 노래 듣기(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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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영화, 뮤지컬에 이어 판소리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이 판소리로 재탄생한다. 젊은 판소리 공동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의 신작이다. 원작의 서사를 바탕에 두고 ‘세상은 한 척의 배’라는 설정으로 새롭게 각색했다. 공연은 오는 4월 8일부터 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열린다. 입과손스튜디오는 원작의 공감대를 확장하기 위해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프랑스 배경과 인물의 이름은 모두 한국식으로 바꿨다.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모두 한배에 타고 있다는 설정은 사회 구조적 모순을 말하고자 한 원작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소리꾼과 고수 중심의 ‘전통판소리’에 배우, 자작가수(싱어송라이터), 드러머 등과 협업해 대중적인 감성을 더했다. 비장하고 엄숙한 이야기 가운데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판소리식 유머와 재담도 곳곳에 배치했다. ‘판소리 레미제라블 구구선 사람들’은 3년 동안의 창작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여러 토막소리가 모여 완창 판소리가 되는 ‘전통판소리’의 연행 방식을 창작동기로 했다. 여자(팡틴), 청년(마리우스), 아이(가브로슈)를 토막소리 주제로 뽑아 무대화했다. 원작에서는 주변에 머물렀던 각 인물의 서사와 음악을 개발하는 연구가 되었다. ‘완창 판소리’ 격인 ‘구구선 사람들’은 ‘장발장’을 중심으로 세 인물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인다. 토막소리의 과정이 있었기에, 세부 인물들의 서사가 ‘구구선 사람들’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입과손스튜디오 이향하 대표는 “원작 ‘레미제라블’은 시대와 장소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작이지만 다 읽은 사람이 드물고, 영화나 뮤지컬로 만났을 때 한국에 빗대어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판소리를 통해 동시대 관객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는 ‘한국판 레미제라블’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원작의 비장함과 웅장함에 판소리의 풍자와 해학을 더해 우리식으로 이야기해 보았다.”라고 창작 의도를 밝혔다. 이 공연은 두산아트센터와 공동 기획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4월 8일(토)부터 22일(토)까지 열린다. 올해 9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유통 협력 지원을 받아 경기 광명과 영덕에서도 만날 수 있다. ▶ 공연 예매는 인터넷 누리집 두산아트센터(doosanartcenter.com) 및 인터파크(ticket.interpark.com)에서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에누리가 마련되어 있다. (전석 3만 5천 원. 장애인ㆍ국가유공자ㆍ예술인 50% 에누리, 학생ㆍ청소년ㆍ재관람 30% 에누리) ▶ 공연 관람은 11살 이상부터 가능하고 ▶ 기타 공연 관련 문의는 입과손스튜디오 전화(070-8848-0124)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