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의 ‘시인의 마을’

  • 등록 2015.08.16 12: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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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51] 수채화같이 투명한 어린시절 꿈

[한국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칠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조그만 산골학교 운동장에도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도 더위에 지쳐 잎이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지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마저 둔탁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덥다고 투덜대거나 눈빛이 흐려진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비록 꽁보리밥에 고추장밖에 없는 점심이지만 꿀보다 달게 먹고 서로 뒤질세라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학교에 있는 공이라곤 바람 빠진 축구공 하나밖엔 없었지만 남자아이들은 먼지가 뽀얗게 일도록 공놀이를 하였고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나 오자미던지기를 하며 놀았다. 

어느새 즐거운 점심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우물가로 몰려들어 두레박물을 돌려 마시며 타는 목을 적시고 있을 때였다. “머리카락이다!” 한아이가 자지러지는 듯 소리쳤다. 모두들 놀라서 들여다보니 정말로 머리카락 두어 가닥이 떠 있었다. “사람이 빠져 죽었다!” 아이들은 혼비백산하여 교실로 도망쳤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용이 되려는 이무기를 소사아저씨가 삽으로 찍어 죽여서 우리가 소풍 갈 때마다 비가 온다고 하더니 이제는 사람이 빠져죽고.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선생님들이 우물가로 뛰어가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고 잠시 후 진상이 밝혀졌다. 우리가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했던 그 이물질은 두레박줄부스러기로 판명되었다. 한낮의 더위를 잊게 해준 머리카락 소동을 가라앉히고 우린 다시 책상에 앉았다.  

선생님께서는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를 지어보라고 하시었다. 난생처음 지어보는 동시인지라 뭐가 무언지도 모르는 채 몇 자 끄적거려 냈는데 선생님께서는 내게 글 짓는 재주가 있으니 글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렴풋이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인을 동경하게 되었다. 

오늘은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닮은 노래, 정태춘의 1978년 데뷔작인 시인의 마을을 감상해 본다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푸른 하늘 흘러가며
당신의 부푼 가슴으로 불어오는 맑은

   
▲ 정태춘 음반 "시인의 마을" 표지

한줄기 산들바람
살며시 눈 감고 들어봐요 먼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오는
숨 가쁜 자연의 생명의 소리
누가 내게 따뜻한 사랑 건네주리오
내 작은 가슴을 달래주리오
누가 내게 생명의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 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
우산을 접고 비 맞아 봐요 하늘은 더욱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서
당신의 울적한 마음에 비 뿌리는
젖은 대기의 애틋한 우수
누가 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주리오
내 작은 손잡아 주리오
누가 내 마음의 위안 돼 주리오
어린 시인의 벗 돼 주리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면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ccr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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