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H, 가든 No.9 기획초대전>은 우선 입체 설치 작품들의 화려한 빛깔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 놓인 작품 <꽃밭에서>는 ‘정원(Garden)’의 느낌을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려한 꽃 모양의 작품 15점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으며, 각 작품들마다 작고 예쁜 정원들을 하나씩 드러내 보인다. ‘정원’을 주제로 한 이번 작품들은 쓸모없이 버려진 폐기물들을 가져다 아름다운 정원을 꾸밈으로써, 황량했던 바닷가 마을에 희망을 심었던 영국의 예술가 데릭 저먼(Derek Jarman)을 떠올리게 한다.
<가든 No.1>과 <가든 No.3>는 조립상자로 만든 흉상 조각과 함께 꽃 또는 별 모양의 정원을 기하학적으로 구성한 작품으로 관람객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여 눈을 즐겁게 한다. 크고 작은 꽃과 별의 형태를 패턴화한 모듈은 상업화의 시선으로 구축된 세계를 의미하면서도, 그 세계에 갇혀 있는 현대인의 자아와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상품의 목적에 맞게 디자인된 조립상자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은 소비와 자아를 동일시하는 현대인의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소비하는 인간)적’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상품을 선전하고 충동적인 구매 의욕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립상자야말로 현대인의 소비적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매개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퍼즐H> 작품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3가지 형태의 특징이 눈에 띈다.
첫 번째는 조립상자로 제작한 흉상 조각들인데, 이는 자본주의시대에서 소비와 생산의 주체인 현대인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소비하는 현대인은 누구나 사실상 자본주의사회를 이끌어가는 진짜 ‘지도자’인 셈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구매자가 아닌 적극적인 시대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소비하는 현대인이야말로 끊임없이 상품을 개발하고 재생산하도록 기업을 추동하는 자본주의시대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화려한 조립상자의 빛깔을 미학적으로 재구성한 흉상들에서는 강렬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작품 <마이 리얼 마리아(My real Maria)>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감독 프리츠 랭의 역작, ‘메트로폴리스’의 지하 세계 지도자 ‘마리아’를 연상하게 한다. 그녀의 강렬한 이미지가 작품 속에 선명하게 녹아 있다. <하이트>와 와 <더블A>, <삼양라면> 등 등 상품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흉상 작품들은 지도자의 두상을 유달리 크게 표현하는 아프리카 부족들의 관습을 끌어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번째 형태적 특징은 조립상자로 재구성 한 작품들이다. <계단위의 남자>, <걸어가는 사람>, <오! 예스>와 같은 작품들은 유행에 빠르게 반응하는 소비자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조립상자를 긴 마름모꼴 형태로 재구성 해, 이를 불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집적한 작품들에서는 시간성과 속도감, 변화하는 유행의 흐름을 실감할 수 있다.
꽃과 별 모양 형태의 부조 작품들은 데릭 저먼의 콘셉트를 잘 담아냈다. 축소모형(미니어쳐)과 작은 오브제(물체의 작춤화)를 이용해 앙증맞은 미래지향적 정원을 완성함으로써 소비하는 현대인, ‘소비하는 인간’의 희망을 표현했다.
지난 2011년부터 조립상자를 이용해 설치 작업을 해 온 퍼즐H(김성호, 조창환)’는 이번 <가든 No. 9> 기획전을 통해 ‘조립상자가 연출하는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립상자는 상품 포장 외에도 광고와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높이는 판매 촉진 기능을 고려해 각 상품의 최고 디자이너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하지만, 포장을 뜯고 나면 쓰레기로 전락하곤 한다. 최고의 브랜드 판촉물에서 폐기물로 사라지는 태생적 운명을 지닌 것이 바로 상품 조립상자인 것이다.
퍼즐H(김성호, 조창환)는 이러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조립상자에 새로운 생명과 희망(Hope)을 불어넣어 자연과 환경 그리고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조립상자가 펼쳐 보이는 화려하고 입체적인 현대인의 자화상과 미래지향적 정원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갤러리 울(고양 아람누리 미술관 B3)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286.
Tel: 031-922-77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