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전하는 “시전지(詩箋紙)”

  • 등록 2017.07.31 10: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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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 속 왕실유물 이야기 7월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시전지(詩箋紙)는 시를 적거나 편지를 적어 보내는 작은 종이를 말합니다. 또는 마음에 드는 문구나 필체를 간직하고자 상대에게 부탁하여 글을 적는 종이를 말하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부터 유행된 시전지는 조선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쓰였습니다.



 

시전지는 화전지(花箋紙)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그 종이의 다양한 색상과 아름다운 문양들 때문입니다. 시전지에 무늬를 넣는 방법은 무늬가 있는 판을 눌러 굴곡을 만들거나, 직접 손으로 문양을 그리거나, 목판에 새긴 문양에 색을 입혀 찍어 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9세기 시전지와 명성황후의 한글 편지가 적힌 시전지를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시전지는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당시의 포장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있어서 시전지를 만든 곳이나 판매 단위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시전지는 편지글 없이도 종이에 표현된 문양이나 짧은 문구로 의미를 담아내기도 합니다. 시전지 무늬로는 꽃이나 과일, 복을 비는 문구가 많고, 물고기곤충 등도 자주 쓰이며, 그 밖에 문방구 무늬나 기하문도 간혹 쓰였습니다.



 

가장 즐겨 사용한 무늬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난국죽(梅蘭菊竹)’입니다. 여기서 매화는 선비의 기풍과 고결함을, 난은 우정과 우아함을, 국화는 군자의 기상과 장수의 뜻으로, 대나무는 흔들림 없는 곧은 절개를 나타냅니다. 매화는 옛 이야기와 더불어 그리움을 뜻하기도 합니다. 시전지에 그려진 매화 한 가지는 범엽(중국 남조 송의 역사가로 후한서의 저자)의 고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육개(陸凱)가 범엽(范曄)에게 매화 가지를 꺾어 보내며 시를 쓰기를 매화를 꺾어 역사(驛使)를 만나 농두(隴頭, 언덕이나 산의 꼭대기) 사람에게 부치네, 강남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한 가지의 봄을 보내네.’라 하였다.”

 

또한, ‘매위화지수(梅爲花之首)’는 매화가 꽃 가운데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매화는 한해 가운데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 추위를 이겨 내고 핀 모습에서 영원불변, 변하지 않는 우정을 뜻합니다. 이 같이 매화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범엽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멀리 떨어진 벗에게 안부를 묻거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나타냅니다.



 



꽃과 더불어 시전지에 자주 등장하는 과일은 자손 번창을 의미하는데, 잘 익어 반으로 갈라져 씨앗이 드러난 석류,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뭇가지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물고기 가운데서는 잉어가 편지소식의 의미로 많이 쓰였습니다. 이 같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멀리 있는 남편이 아내가 보낸 잉어 두 마리를 갈라보았더니 작은 서신이 들어있어, 이를 통해 그리움을 전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쌍어척서(雙魚尺書)’라는 문구는 2마리의 잉어 뱃속에 편지가 있었다는 의미로,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뜻합니다. 또한, 시전지에 그려진 기러기는 서로 마주보며 그리움과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편지는 어안(魚雁, 물고기와 기러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시전지에는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는 무늬도 쓰였습니다. 학과 나비는 받는 이의 장수를 비손하는데 특히, 나비는 80살의 뜻으로 장수의 상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밖에도 인물, 다기, 악기, 서책, 문구 등이 시전지에 애용되었습니다.

 

시전지에 나타난 무늬과 문구는 옛 선인들이 주고 받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書不盡言言不盡意 

雲山萬重寸心千里 


글로는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한다지

구름 낀 산은 겹겹 쌓였으나 이 내 맘은 천리를 향한다네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 생활실(2)에는 명성황후 한글편지와 시전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정희원(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한성훈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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