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이사장 어머님과 빨치산 이현상

2020.09.05 11:46:34

효사재 가는 길 2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4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6.25 전쟁 때 경찰이나 빨치산이나 모두 나눔의 명가 효사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를 하였다고 했지요? 이때의 이야기 가운데 그냥 덮고 가는 것이 아쉬워 몇 가지 더 이야기하렵니다.

 

처음 빨치산이 효사재에 내려오니까, 장 이사장 어머님은 귀중품을 뺏기지 않기 위해 숨기려고 하셨습니다. 집에 당시에 제일 좋은 재봉틀과 축음기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값비싼 부분인 재봉틀과 축음기 대가리 부분을 어머니가 보자기에 싸서 보릿대 쌓아놓은 곳에 파묻어 놓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이를 눈치챈 빨치산 한 명이 “그 물건을 거기 놔두었다가 비를 맞으면 못쓰게 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 집 물건에 손을 안 대니까 그런 걱정은 마시고 갖다가 제대로 쓰십시오.”라고 하더랍니다. 지레 의심하고 숨겼던 어머님은 당황하셨겠지요. 그리하여 축음기를 제대로 해놓으니까, 이를 즐겨 들은 사람이 빨치산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었답니다.

 

이현상이 오면 늘 듣던 음악이 있었는데, 장 이사장은 그때는 무슨 음악인지도 모르다가 나중에 성장해서야 그 음악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라는 것을 아셨다는군요. 당시 장 이사장이 뭉툭해진 축음기 바늘을 숫돌에 갈아주면 이현상은 기특하다며 장 이사장에게 엿도 주곤 하였다네요.

 

 

이현상은 휴전 직후인 1953년 9월 무렵 지리산 빗점골에서 토벌대에 사살되었지요. 그때 토벌대를 지휘하던 차일혁 총경은 이현상을 적장(敵將)으로 예우하여 장사를 지내주었지요. 빨치산 우두머리를 장사지내준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제가 예전에 이 이야기를 글로 써보았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아래 제 블로그 주소를 눌러 보시지요.

 

<차일혁 총경> 글 읽으러 가기

https://blog.naver.com/yangaram1/80138714657

 

차일혁 총경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빨치산이 효사재 식구들에게 인간적으로는 잘 대해 주었지만, 자기들 작전에서는 엄격했습니다. 한 번은 빨치산이 장 이사장 아버님이 아직도 효사재에 숨어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 소재를 대라고 닦달하면서 집을 수색하더랍니다. 그러나 이미 피난 건 사람 찾아야 나오겠습니까?

 

그 대신 한 빨치산이 집안을 수색하다가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발견했습니다. 그 빨치산은 무슨 대단한 증거라도 찾은 양 시계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가더랍니다. 그래서 화가 난 장 이사장이 쫓아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얼른 붙잡으셨지요. 꼬마 시절부터 장 이사장님 성격 대단하셨군요.

 

그런데 열흘쯤 지나 인민군 복장을 한 젊은 사람이 찾아와 그 회중시계를 꺼내더랍니다. “이 댁에서 잃어버린 시계가 맞지요?” 그 인민군은 빨치산 대원이 효사재에서 시계를 탈취한 것으로 생각하고 돌려주러 온 것이지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실 것 같은데, 어머님의 대답은 뜻밖입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제가 드린 겁니다.”

 

어머님은 맞는다고 하면 그 시계를 가져간 빨치산 대원이 처벌받을 것까지 생각하신 것이지요. 중국 공산당도 대장정을 할 때 인민의 재산을 노략질하면 엄하게 처벌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정말 사려 깊은 어머님이시군요. 의외의 대답에 놀란 인민군은 재차 물어도 같은 대답을 하자, 어머니에게 시계를 돌려주면서 확인서를 받아 돌아갑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그 시계를 가져갔던 빨치산이 찾아 왔더랍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깊이 고개 숙이면서 수없이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장 이사장은 지금도 눈물지으며 말하던 그 사내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레미레자블>이 생각나는군요. 경찰관이 은접시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데리고 사제관을 찾아오자, 미리엘 신부는 경찰관에게 훔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준 것이라고 얘기하였지요? 정말 존경해야 할 어머님이십니다. 그런 어머니께 교육을 받았으니, 장 이사장님도 청백리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었겠군요.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두 분을 존경합니다!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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