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커리어우먼, 집밖에서 날고 달렸던 여성

2021.03.06 11:23:10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3월호 펴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국국학진흥원(부원장 김동룡)은 지난 1일, “여성의 날 특집: 조선 여성시대”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3월호를 펴냈다. 3월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내세우며 대규모 파업을 벌이기 시작한 날을 기념하는 여성의 날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가부장적 사회로 알려진 조선에서도 존재했던 다양한 전문직의 여성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래를 잘하고 싶은 조선 여아의 본능이 이상의 길로 현실을 끌어 올리다

 

조선시대 음악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여성은 기녀(妓女), 혹은 노비 신분이었다. 송지원 교수의 <나의 길은 노래의 길, 여성음악가 석개>에서는 유몽인(1559-1623)의 문집 《어우야담》에서 유몽인이 “근 100년 동안 그녀만 한 명창이 없었다.”라고 칭송했던 여성 음악가 석개(石介)에 관하여 자세히 알아본다.

 

석개는 어린 시절 송인(宋寅, 1516~1584) 집의 어린 종이었다. 송인은 중종의 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혼인한 인물로, 16세기에 문장과 인망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나이가 어려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석개에게 물 길어오기, 약초 캐기 등을 시켰지만,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종일 노래만 불렀다. 노래를 특별히 배운 적이 없었으나 되는대로 열심히 불렀다고 한다.

 

석개는 어느 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 이상의 길로 자신의 현실을 끌어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송인은 그녀에게 노래를 배울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허락했고, 그 실력은 나날이 좋아져 가장 노래를 잘하는 음악인으로 성장하였다. 송인이 지어 놓은 동호(東湖)의 수월정(水月亭)에 가면 석개는 늘 화제의 중심이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시로 썼다. 여러 재상도 화답하여 큰 시첩을 이룬 것도 있다.

 

 

 

이름 없는 김씨와 옹녀 · 심청이의 재발견으로 짜릿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다

 

이응 작가의 <이야기 속 여성들의 운명 탈출기>에서는 가장 미약하다 여겨졌던 여성들이 나라를 구하거나, 유약한 남성을 구하거나, 가문을 구하는 영웅으로 떠올라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작자미상인 이춘풍전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제목인 이춘풍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김 씨로서 2018년 국립극장 마당놀이에서는 아내 김 씨에게 오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신분을 거듭 바꿔가며 자신이 반한 남자의 내면을 뜯어고치는 당찬 여성으로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재평가되고 있는 심청전 속 심청이는 효도의 상징이 아니라 효도를 강요했던 사회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변강쇠전의 실질적인 주인공 옹녀는 색정의 대명사가 아니라 신들도 협박하는 여장부로 재조명받고 있다.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세월이 흐르고, 생각이 바뀌면서 이야기 속 인물들에 대한 시각이 변한다. 특히 소외되어 있었던 여성들에 대한 시각은 더욱 그렇다. 작가는 여성의 날이 잊혀질 그 날을 기다린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일개 여종 출신이 지은 시일지라도 맑고 아름다워 마음을 울리다

 

권숯돌 작가의 <이달의 일기 - 여종 詩心을 품다>에서는 17세기 김령(金坽, 1577~1641)의 일기 《계암일록(溪巖日錄)》 속에서 시희(詩姬) 얼현(乻玄)의 일화를 만화로 소개한다. 얼현은 천성(川城, 현재 영주)의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의 여종이었다가 어떤 자의 첩이 되었는데, 미모가 시들자 이별을 당했다고 한다. 김령을 찾아올 때 시권(詩卷)을 가져왔는데, 그 시어(詩語)가 매우 맑고 아름다웠다고 전한다.

 

 

 

사료 속 단 몇 줄 나오는 여성의 이야기에 상상력이 더해져 생동감이 흘러넘치다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미디어로 본 역사 이야기-그녀는 예뻤다]에서 온통 지어낸 이야기 같은 실화 바탕의 사극과 단 한 줄의 기록에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판타지 작품까지 사극 속의 여성 주인공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우리는 드라마 <거상 김만덕>을 통해 관기에서 거상이 되어 굶주림에 죽어가는 백성을 구휼한 김만덕의 서사를 보며 힘들게 번 재산을 이웃들을 위해 아낌없이 쾌척했다는 점에서 감동한다.

 

조선판 메이크업 아티스트 ‘매분구’가 주인공인 웹툰 <매분구>를 비롯하여 깊숙하고 내밀한 안채까지 스며들어 책을 읽어주곤 했던 여성 전문인 ‘책비’가 등장했던 드라마 <암행어사>나 <화랑>도 함께 소개한다. 2019년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속 구해령은 여성 사관(女史)으로 뽑혀 다른 세 명의 여성과 함께 예문관 권지(정식 관리로 발령받기 전 일을 배우는, 지금으로 말하면 인턴) 생활을 시작한다. 중종실록을 살펴보면 여사는 공론되긴 했었으나 실제 탄생하지는 못했다. 일부의 기록에 판타지적 상상력을 더해 퓨전 사극으로 우리는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편액이야기]에서는 최초 내방가사인 상벽가(雙璧歌)를 지은 안동 하회마을 풍산류씨의 정부인(貞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 1737∼1815)를 소개한다. 여성이 주도하는 내방가사 창작의 전통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활동이다. 남편 류사춘이 하회 충효당(忠孝堂)에서 분가하여 지었던 초가집을 시작으로 건립한 ‘화경당(和敬堂)’의 편액에서 ‘화경’은 하나의 가풍으로 형성된 ‘충효’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이슈]에서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어린이들에게 한국 정서를 심어주기 위하여 추진하고 있는 여성 자원봉사자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를 소개한다. 이야기할머니는 현재 12기까지 선발되었으며 지난해 전국 2,733명이 활동하고 1,300명이 교육과정을 수료하였다. 평균 나이 65세인 이야기할머니는 유아교육기관을 찾아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직접 방문이 어려워져 동영상 녹화를 배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이수진 뮤지컬 작가는 “여성과 남성이 그저 모두 사이좋게 지내자는 피상적인 말”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지 더 많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8권을 기반으로 한 6,10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한영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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