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의 농부가 공정무역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면?

2021.09.16 12:43:40

‘공정무역 마을운동’ 이야기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6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공정무역 운동은 주로 개인의 소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각성’한 개인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를 알아보고 방문하여 물건을 사는 식이다.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소비행동은 ‘윤리적 소비’ 또는 ‘착한 소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으로 공정무역 운동의 질적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은 2000년 영국의 작은 마을 가스탱에서 시작됐다. 그 뒤 이웃나라들로 퍼져 지금은 세계 35개 나라에 2,030개의 공정무역 마을이 있는데, 유럽에 95% 이상이 몰려 있다. 독일이 687개로 가장 많고, 영국(425개), 오스트리아(207개) 등이 뒤를 잇는다.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달성하면 심사를 거쳐 공정무역 마을로 오른다.

 

심사의 기준이 되는 다섯 가지 기준은 1) 지방정부 및 의회의 지지 2) 지역 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 확보 3) 공동체에서 공정무역 제품 사용 4)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대중의 지지 5) 공정무역위원회 구성 등이다. 지방정부의 지지와 지역 내 주민들의 참여를 인증 조건으로 삼고 있어서 민과 관이 협력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인증 심사는 나라별로 꾸려진 공정무역 마을위원회가 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에 한국 공정무역 마을위원회(이하 한국마을위)가 출범했다. 한국마을위는 공정무역 도시(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공정무역 대학, 공정무역 학교, 공정무역 실천 기업과 기관, 공정무역 종교기관 등으로 나눠 공정무역 마을 인증을 한다. 다만 국제마을위원회에는 공정무역 도시만 등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서울시가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2012년 5월 ‘공정무역도시 서울 추진선언문’을 발표한 이후 같은 해 11월 ‘서울시 공정무역 지원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공정무역 활성화에 나섰다. 2013년 3월에는 공정무역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공정무역 확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후 서울시는 공정무역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였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에 ‘세계공정무역의 날 한국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또 2013년 1월부터 서울시 시민청에 공정무역제품을 판매하는 지구마을을 개장해 시민들이 공정무역제품을 쉽게 접하고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는 또한 학생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정무역 교육을 하였다. 서울시내 60개 초중고에 공정무역동아리와 공정무역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정기적으로 공정무역을 홍보하고 장터 등을 열어 구매 촉진에 나서는 등 서울시는 다양하게 공정무역 확산에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공정무역 정착을 위한 활발한 정책 추진 덕분에 서울시는 2018년 7월에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도시 가운데 세계 최초로 ‘공정무역도시 공식 인증’을 받았다. 2012년에 ‘공정무역도시 수도 서울’을 선언한 지 6년 만에 이룬 성과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공정무역제품을 쉽게 접하고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공정무역 자판기를 설치해 시범 운영하였다. 공정무역 자판기는 서울도서관과 중랑구청, 도봉구청에 설치됐다. 자판기에 1,000원을 넣으면 남미 페루의 농부들이 아마존 정글에서 재배한 카카오로 만든 코코아와 우간다의 시골 농부들이 재배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자판기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네팔, 멕시코, 필리핀 등 10개국에서 생산된 초콜릿, 커피, 코코아, 건조 체리 등 12가지 제품을 살 수 있다. 판매가격은 1,000∼3,000원이다. 공정무역자판기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작은 상자에 담겨 있다. 상자에는 생산국의 정보 및 생산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가상의 탑승권(보딩패스)이 함께 들어 있다. 또한 제품 원료의 생산지와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자판기 전면에 인쇄된 공정무역 10가지 점검목록을 통해 사용자의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8월 1일 현재 공정무역 마을로서 인증받은 도시는 서울시, 경기도, 하남시, 부천시, 인천시, 화성시, 광명시, 시흥시, 수원시, 성남시 그리고 인천 계양구, 서울 양천구 등 모두 12개다.

 

공정무역 운동은 지구상의 빈곤을 해결하려는 방편의 하나로서 시작되었다. 공정무역 운동은 “지구촌 인류가 함께 잘 살자”라는 숭고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인류에게 이러한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밖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증명하고 있다.

 

노령의 이어령 교수는 2021년 8월 27일 서울대의 비대면 졸업식 연설에서 인류는 공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코로나 마스크를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서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기침 하나가 내 일상의 생활을 뒤집어 놓은 상황도 겪었습니다... 이러한 코로나 팬데믹의 학습효과로 누구나 쓰고 다니는 똑같은 마스크 한 장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각과 생각을 얻게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유를 물으면 ‘나와 남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간단한 대답 같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나[自]에게 득이 되는 것은 남[他]에게는 실[失]이 되고 남에게 득이 되는 것은 나에게는 해가 되는 대립관계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 배재의 논리가 지배해 왔던 까닭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마스크의 본질과 그 기능이 그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면을 모두 통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는 곧 남을 위해서 쓰는 마스크’라는 공생관계는 지금까지 생명의 진화를 먹고먹히는 포식관계에서 남을 착취하는 기생관계로 해석해 왔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역시 석학다운 혜안이다. 아프리카나 중국이나 인도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기침에 섞여 있는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구촌을 돌고 돌아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가난한 농부의 삶은 바이러스를 통해서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3세계의 가난한 농부가 공정무역의 혜택을 입고서 가난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돌고 돌아 나의 행복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지구촌의 모든 인류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포식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에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성철스님은 1988년에 다음과 같은 법문을 남겼다.

“인류는 한 몸입니다. 너와 나의 분별은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남을 해치는 것은 나를 해치는 것이요. 남을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입니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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