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왕궁에 폭탄던진 김지섭의사 편지, 문화재 등록

2021.11.07 11:28:44

의열투쟁에 앞장선 김지섭 의사 편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격렬한 투쟁성을 지녔던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무너지기 전부터 대대적으로 일어난 의병전쟁 등이 있었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만주 등지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에 의해 독립군 항쟁으로 발전하는 등 해방되기까지 꾸준히 무장독립투쟁의 맥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의열투쟁이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온 인류에게 자유와 정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족 독립의 대의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일어난 무력적 투쟁이다. 이러한 인류공영의 투철한 목적성을 토대로 진행된 의열투쟁이 단순히 개인 또는 일부 집단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자행한 테러와 명확히 구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경북 안동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난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 1884~1928) 의사(義士)는 반평생을 민족의 해방을 위한 의열투쟁에 헌신한 독립투사다. 그는 팔련오계(八蓮五桂)로 유명한 풍산김씨 오미마을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 숙부인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 1845~1914)에게 한학을 공부했다.

 

 

김병황은 당시 한학자로서 명망이 높았고, 의병이 일어날 당시 풍산김씨 문중을 대표하여 의병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의 맏아들인 김정섭(金鼎燮, 1862~1934)은 을미ㆍ병신년 당시 의병 활동에 관해 기록한 《일록》의 저자이기도 하다. 또한, 김지섭의 일생에 많은 영향을 준 김응섭(金應燮, 1878~1957)의 생가 부친이기도 하다.

 

김지섭 의사는 유년기부터 집안에서 한학을 수학하며,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퇴계학의 전통과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전쟁으로 표출되었던 유학의 실천정신을 꾸준히 익혀왔다. 그는 1907년 이후 구국계몽운동에 헌신하며 상주보통학교 부교원을 지내기도 하고 교남교육회에 참가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1909년 대한제국 재판소 번역관 시험에 합격하여 전주구 재판소 번역관보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대한제국 법부가 폐지되고 통감부 사법청이 개설되어 금산구 재판소 통역생 겸 서기로 이직하게 되었고,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금산군수 홍범식(벽초 홍명희의 부친)이 자결하는 상황을 겪으며, 독립운동의 길에 뛰어들게 되었다.

 

 

1915년 김응섭의 변호사 사무소에서 서기로 근무하면서, 김응섭 등이 대구에서 결성한 비밀결사 단체 조선국권회복단 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다가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이 무렵 김지섭 의사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고려공산당에 가입하고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하면서, 같은 해 의열단에 가입하는 등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도쿄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질 것을 계획하고 상해에서 도쿄로 잠입하던 도중, 이 의회가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 왕궁을 폭파하기로 결심하여 결국 이중교(二重橋)에서 폭탄을 투척한 후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25년 5월에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1927년 20년 형으로 감형되었지만, 이듬해 결국 의문의 옥사로 순국하였다. 반제국주의 이념으로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이에 대한 실천 방략으로 의열투쟁을 선택한 김지섭 의사의 의거는 일제의 한인 동포 학살에 대한 민족적 응징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주범인 일왕의 권위를 부정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오늘 몸 숨기고 바다 건너는 사람

지난 몇 해를 와신상담한 사람인가

이미 정한 이 걸음 평생의 뜻이기에

다시금 고향 돌아갈 길 묻지 않으리

- 김지섭 의사가 상해에서 동경으로 가는 배 안에서 읊은 시 가운데 -

 

한편,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독립운동가 김지섭 의사의 편지 4건(5점)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하였다고 지난 4일 발표했다.

 

 

국가등록문화재 ‘김지섭 의사 편지’는 김지섭 의사가 1924년 1월 5일 일본 도쿄 왕궁 입구의 이중교에 수류탄 3발을 던지고 투옥된 후, 옥중에서 동생과 부인에게 보낸 편지 4건이다. 강력한 의열투쟁에 나섰던 항일 투사 김지섭 의사의 진솔한 내면세계와 인간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동생 김희섭에게 보낸 편지 3건에는 판결 언도일을 앞둔 상황에서도 의연한 태도, 투옥된 동지의 안부,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에 대한 염려가 담겨있다. 아내인 권석희에게 보낸 유일한 한글 편지에는 수감된 일본까지 면회를 오려는 아내를 만류하는 절절한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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