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돌림병이 돌 때 차례를 생략했다

2022.01.28 11:07:35

퇴계 이황종가, 차례상에 5가지 제수 진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명절과 기일에 행하는 차례와 제례는 조상을 기억하기 위한 문화적 관습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기간 지속해온 전통이다. 다만 나라와 종교에 따라 조상을 기억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2017년부터 제례문화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서(禮書)》와 종가, 일반 가정의 설차례상에 진설하는 제수를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전통 《예서》와 종가에 견줘 일반 가정의 차례 음식이 평균 5~6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간소한 종가의 차례상

 

제례문화의 지침서인 《주자가례》에 따르면 설날은 새로운 해가 밝았음을 조상에게 알리기 위해 간단한 제수를 진설하고 예를 갖추는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그래서 설날과 한가위에는 제사를 지낸다고 하지 않고 차례[茶禮]를 올린다고 한다. 《주자가례》에서는 설 차례상에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 등 3가지 음식을 차리고 술도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전통 격식을 지키는 종가의 설 차례상 역시 《주자가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북 안동에 있는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5가지 제수를 진설한다. 과일 쟁반에는 대추 3개, 밤 5개, 배 1개, 감 1개, 사과 1개, 귤 1개를 담았다. 《주자가례》에 견줘 차가 생략되었고, 대신 떡국과 전, 북어포를 추가했다. 그런데 일반 가정의 차례상에는 평균 25~30가지의 제수가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일은 종류별로 별도의 제기에 각각 담았으며 그 외 어류와 육류, 삼색 채소, 각종 유과 등이 추가되었다.

 

돌림병과 제례

 

또한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일기자료 가운데 돌림병이 유행하는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기도 찾아볼 수 있다.

 

경북 예천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1582년 2월 15일자)에서 “돌림병이 번지기 시작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하였다”라고 했으며,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하와일록》(1798년 8월 14일자)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 안동 풍산의 김두흠 역시 《일록》(1851년 3월 5일자)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라고 했다.

 

 

 

이처럼 예로부터 집안에 상(喪)을 당하거나 환자가 생기는 등 우환이 닥쳤을 때는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는 유교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곧 조상에게 제수를 올리는 차례와 기제사는 정결한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데, 돌림병에 따라 오염된 환경은 불결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돌림병이 돌 때 차례를 비롯한 모든 집안 행사를 포기한 이유는 무엇보다 돌림병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었던 셈이다.

 

제례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우리 제례문화도 시대의 변화와 환경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며, “《주자가례》에 기록된 것이나 종가의 차례처럼 술과 떡국, 과일 한 쟁반을 기본으로 차리되, 나머지는 형편에 따라 약간씩 추가해도 예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요즘과 같이 돌림병이 창궐할 때는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일상의 변화를 통해 차례의 예를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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