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원 ‘우통수’에 가다

2022.07.28 11:32:23

오대천 따라 걷기 1-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산길을 오르는데 백합과에 속하는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얼레지 군락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색다른 이름 때문에 언뜻 외국 꽃이려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얼레지는 심심산골에 자라는 우리의 토종 꽃이다. 이유미가 지은 《한국의 야생화》 책에서는 얼레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고개를 숙인 채 다소곳이 맺혀 있던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하면 6장의 꽃잎이 한껏 펼쳐져 꽃잎의 뒷면이 서로 맞닿을 정도로 완전히 뒤로 젖혀진다. 그래서 꽃잎 속에 감춰져 있던 긴 보랏빛 암술대며 이를 둘러싼 수술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줍은 듯 고개 숙이는 산골 처녀로서는 파격적인 개방인 셈이다.”

 

<그림8>

 

그 밖에도 보라색 현호색과 노루귀, 별꽃, 양지꽃 등등 이른 봄에 피어나는 들꽃이 많이 보였다. 뜻밖에 내가 아는 제비꽃은 매우 드물었다.

 

 

계절은 이른 봄. 사방에서 신선한 기운을 발산하는 연두색 새잎에 반한 해당(오종실의 호)이 춘흥(春興)을 억누르지 못하고 큰 나무 아래에서 단가 사철가를 멋있게 불렀다. 계절과 사람과 소리가 아주 잘 어울렸다. 내가 중간중간에 추임새를 넣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작년의 답사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왜 그럴까? 내가 추측하건대 이것은 정선에서 온 카타리나 때문인 것 같다. 간호부장인 부명숙씨를 부부장이라고 부르면 좀 어색하다. 천주교 신자이고 세례명이 카타리나이므로 이하 ‘카타리나’라고 부른다. 본인의 허락을 받았다. 모두 70살 넘은 남자들 사이에 모처럼 젊고 예쁜 여자가 한 사람 끼니 모두 기분이 좋아지고 말이 많아진 것이다. 음양의 조화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윽고 능선이 나타났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중대(中臺) 사자암이 보인다. 능선에서부터는 평탄한 산길이다. 조금 걷자 서대가 보이고 이어서 서대 오른쪽으로 우통수가 나타났다. 도착 시간은 낮 1시 50분. 주차장에서부터 거리는 1.8km고 시간으로는 80분이 걸렸다. 사전답사 때는 70분이 걸렸는데, 아무래도 인원이 많다 보니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서대는 출입금지 차단기로 막아놓아서 들어가지 않았다.

 

 

우통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평소에 등산 가면 나는 믹스커피를 준비하는데, 오늘은 인원수도 많고 해서 믹스커피와 블랙커피를 준비해왔다. 블랙커피가 인기가 좋았다. 누군가 가져온 사탕, 귤, 비스켓 등을 같이 나누어 먹었다. 우통수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시원스럽고, 근사했다. 우리나라 5,000만 국민 중에서 우통수에 다녀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어쨌든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지질학 석사 논문을 쓴 석주(원영환의 호)가 우통수의 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지질학적인 설명을 하였다.

 

우통수는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아니다. 우통수 인근의 암석은 변성암인 편마암이다. 편마암은 지각변동에 의한 열과 압력을 받아 생성되기에 구성 광물들이 압력 방향의 수직인 방향으로 재배열하는 줄무늬구조(편마구조)가 잘 나타난다. 이런 편마구조의 틈을 따라 암석의 풍화가 일어나 토양이 잘 발달하는 흙산의 형태가 나타난다. 우통수는 이런 편마암에서 생긴 갈라진 틈을 따라 주변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 고이면서 작은 우물이 된 곳이다. 지하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아닌 점에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는 차이가 있는 곳이다.

 

수질관리를 전공한 나도 우통수를 보니 할 말이 있다. 지하수는 지층을 통과하면서 불순물이 걸러진다. 지하에 오래 체류하는 지하수는 광물질의 함량이 많다. 또한 영양물질이 걸러지고 분해되었기에 세균 등에 의한 오염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에 반해 지표수가 흘러들어 고인 물은 지하수에 견줘 오염 가능성이 더 크다. 고인 물이 지하수에 견줘 수질이 더 좋기는 어렵다. 우통수가 높은 산에 있어서 수질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력의 산물이지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우통수에서 20분을 쉰 뒤에 우리는 낮 2시 10분에 산에서 내려갔다. 이제부터 동강 따라 걷기 제1구간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답사 출발점으로 올라온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걷기가 수월했다. 걸음이 빠른 나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내려가는데, 뒤에서 남녀의 대화 소리가 연신 들리더니 해당이 판소리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서 가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제비노정기를 불렀다고 한다. 흥보의 도움을 입었던 제비가 이듬해에 보은의 박씨를 물고 다시 찾아오는 과정을 그린 대목이다. 이날의 답사 분위기는 모처럼 화기애애하였다.

 

내려오는 길은 50분이 걸렸다. 이날 카타리나가 직장일 때문에 4시에는 떠나야 한다고 해서 답사를 3시에 끝냈다. 시간이 조금 남았다. 우리는 상원사에서 운영하는 청량다원에 가서 차를 마시며 환담을 하였다. 찻집에는 출입문 외에 창문이 13개나 있어서 사방으로 오대산의 아름다운 경치가 다 보였다. 지붕이 높고 나무로 지은 운치 있는 찻집이었다.

 

일요일인 5월 8일이 ‘부처님 오신날’이어서 연등이 절 마당에 가득했다. 청량다원 입구의 철쭉동산에는 꽃봉오리들이 피어나기 직전의 웅크린 모습으로 기온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면 꽃이 활짝 필 것이다. 카타리나가 일행의 찻값을 냈다. 돈 쓸 줄 아는 여인이다. 우리는 고맙다는 뜻으로 손뼉을 쳤다.

 

 

 

오후 3시 30분에 주차장을 출발하여 3시 45분에 한강시원지 체험관 앞에서 답사를 끝내고 해산했다. 은곡과 카타리나는 승용차를 타고 진부로 떠났다. 떠나면서 카타리나는 나머지 8명에게 일일이 정식으로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이 만날 때 그리고 헤어질 때 손바닥을 쥐며 정식으로 악수한 적이 그 언제였나?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은 2년 이상 주먹을 대는 약식악수를 해야 했다. 오랜만에 젊은 여자의 정식악수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악수보시를 받는 느낌이었다. 보시란 주는 사람은 즐겁고 받는 사람은 고마운 법이다.

 

 

두 명이 먼저 가고 나머지 8명은 한강시원지 체험관을 구경했다. 한강시원지를 소개하는 소책자에 우통수와 한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통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충열왕 7년(1281)에 일연이 펴낸 사서인 《삼국유사》에 처음 나타난다.

 

권근(1352~1409)의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에는 “서대 아래에 테두리를 두른 샘이 솟아나는데 색과 맛이 보통 물보다 뛰어나고, 또한 무거운데 우통수라고 한다.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가서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라고 되어있다.

 

이중환의 《택리지》(1751)에서는 “한강의 시원이 우통수의 물이다. (漢江之源 于筒之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오대산 서대의 아래에 샘이 솟아나는 곳이 있으니, 곧 한강의 시원이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에》 “우통수, 곧 금강연이 한수의 시원이 되니, 이로 인하여 봄과 가을에 관원에 명하여 제례 하게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한강의 시원이 되는 우통수(금강연)이 신성히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지도에 금강연이 표시된 지도는 11종, 우통수가 표기된 것은 5종, 우통수와 금강연이 동시에 표기된 것은 5종이 있다.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1861)’에도 우통수가 표시되어 있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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