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240년 전 연암 박지원이 ‘열하’를 향하던 당시에 연암의 손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호곡장(好哭場, 좋은 울음터)이니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다’ 한 요동벌판의 광활함을 응당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기이하고 우뚝 솟아난 이 산의 형세를 무어라 형용키 어렵다’ 한 봉황산을 실물 대신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사진가 박하선이 《열하일기》의 행로를 사진으로 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압록강 건너 만주 지역 일대와 요동벌판, 그리고 당시 연경이라 불렀던 북경 일대와 사신단인 연암 일행의 최종 목적지였던 열하(지금의 승덕)까지의 과정을 하나하나 톺아가면서 기록한 것이다.
지금껏 여러 사진가가 시도했으나 성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는데, 오랜 두메 취재의 경험을 지닌데다 실체를 찾기 어려운 우리 고대사부터 근대사까지를 사진으로 추적함으로써 ‘집념의 사진가’로 불리는 박하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접근이 어려워 한번도 제대로 기록된 적 없던 티베트고원의 장례의식을 담은 사진으로 2001년 월드프레스포토상(World Press Photo)을 받은 <천장(天葬)>의 사진가가 아닌가.
“이제 연암은 가고 없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남아서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당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그 열하의 행로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현대의 언어이자 나의 언어인 사진으로 그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10여 년 동안 ‘현대의 언어이자 박하선의 언어’인 사진으로 기록한 열하일기, 사진으로 쓴 열하일기가 이제 전시로 선보여진다. 오는 9월 6일부터 종로구 청운동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리는 박하선 사진전 <사진가와 열하일기>가 그것이다.
연암이 눈으로 직접 보았을 그때나 이제나 위용이 여전한 산해관의 천하제일관부터 청석령의 당산나무, 그리고 연암이 달밤에 성벽을 넘으며 솟구치는 감회를 누를 길 없어 술로 먹을 갈아 글을 남겼던 고북구 장성의 처연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두 50여 점의 사진이 전시된다.
전시로 다 보여줄 수 없는 사진들을 350쪽에 달하는 책 속에 담은 《사진가와 열하일기》도 선보인다. 열하일기에 배경이 되는 여러 장소의 사진에 연암의 글이 어우러지고, 사진가 박하선의 산문이 곁들어진 드문 책이다.
전시 문의 : 류가헌 02-7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