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에야 문을 여는 달맞이꽃

2022.12.15 12:03:01

오대천 따라 걷기 5-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개다래나무가 자주 나타난다. 다래나무과에 속하는 개다래나무는 덩굴식물로서 줄기는 4~6m에 달한다. 잎의 상반부 또는 전체가 하얗게 되는 산반현상을 나타내어 멀리서도 개다래나무를 뚜렷이 알아볼 수 있다.

 

 

걷기에 좋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벌들이 나타난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보고 벌을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벌통이 400통이나 길가에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람이 지나가자 호기심 많은 가양이 요즘 무슨 꿀을 따느냐고 물었다. 피나무꿀과 밤나무꿀 그리고 잡꿀을 딴다고 한다.

 

 

벌통을 지나고 도로 차단기를 지나자 다리가 나타났다. 수항교다. 반대편에서 수항교까지는 차로 들어올 수 있다.

 

 

 

 

우회도로(구 59번도로)가 끝나고 터널을 통과한 59번 도로로 나왔다. 이제부터는 막동리가 시작된다. 막동리(幕洞里)는 진부면의 남부지역으로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움막을 치고 살았다고 해서 막골이라고 불렀다. 1906년에 평창군에 편입되었다. 《조선지지(朝鮮地誌)》에 막동, 현재도 막동이다.

 

 

59번 도로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터널이 보인다. 이 터널이 막동터널인데 우리는 터널로 들어가지 않고 우회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길은 한적하고 산과 물이 어울리는 경치는 빼어났다. 녹음이 우거진 초여름 안개가 낀 산길을 걷는다. 걷기에 좋은 매우 매혹적인 구간이다. 길가에 달맞이꽃이 보인다. 달맞이꽃은 제4구간 답사기에서 소개했던 황금낮달맞이꽃보다 키가 훨씬 크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해뜨기 전에 우리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산책을 날마다 한다. 아침 산책길에 달맞이꽃이 많이 있어서 나는 달맞이꽃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꽃이 피는지를 잘 안다. 요즘에 해뜨기 전에 산책하면 달맞이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밤이 아니더라도 이날처럼 흐린 날에는 때로는 달맞이꽃을 볼 수 있다.

 

 

달맞이꽃은 밤에 활동하는 곤충이 수분작용을 돕는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월견초(月見草)’ 종자를 ‘월견자(月見子)’라고 하여 약재로 쓴다. 달맞이꽃 씨앗 기름은 피를 맑게 하며 염증 저항 성분이 있어 피부염이나 종기를 치료하는 데에 효능이 있다. 칠레가 원산지인 달맞이꽃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태양의 신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마을에 낮보다는 밤을, 해보다는 달을 더 좋아하는 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로즈라고 불린 아리따운 아가씨가 사는 마을에는 여름마다 15살이 된 처녀들이 곱게 단장을 하고 줄을 서 있으면 총각들이 한 사람씩 나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혼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로즈도 15살이 되어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고, 1년 전 만났던 형제 부족 추장의 작은 아들이 다가와 손을 잡아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추장의 아들은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가버렸고 로즈는 당황하는 사이 다른 남자가 로즈의 손을 잡아버렸습니다. 로즈는 절망감에 빠져 신랑을 거절하고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규율에 따라 다시 병사들에게 잡혀 귀신의 골짜기로 추방되었습니다. 거기서 로즈는 밤이 되면 달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울면서 남자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추장의 아들이 로즈가 생각나 그곳에 갔지만 로즈는 없었고 희미한 달빛에 한 송이 꽃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 꽃이 바로 달맞이꽃이라고 합니다.“

 

로즈가 2년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듯이 달맞이꽃은 두해살이 꽃이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라고 한다. 달맞이꽃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기 위하여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해인 수녀의 달맞이꽃이라는 시를 발견하였다. 시가 좋아 여기에 옮겨 본다.

 

      달맞이꽃

 

                  - 이해인

 

당신은 아시지요

달님

 

당신의 밝은 빛

남김없이 내 안에

스며들 수 있도록

이렇게 얇은 옷을 입었습니다

 

해질녘에야

조심스레 문을 여는

나의 길고 긴 침묵은

그대로 나의 노래인 것을

달님

 

맑고 온유한

당신의 그 빛을 마시고 싶어

당신의 빛깔로 입었습니다.

 

끝없이 차고 기우는 당신의 모습 따라

졌다가 다시 피는 나의 기다림을

당신은 아시지요

달님

 

이 시를 읽으며 발칙한 상상을 해보았다. 이처럼 애틋한 사랑의 시를 쓴 이해인 수녀님은 수녀가 되기 전에 속세에서 연애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 만해 한용운 스님이 쓴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을 읽으면서 혼자 사는 스님으로서 어떻게 이처럼 가슴을 울리는 연애시를 쓸 수 있었을까 궁금했었다. 전에 언젠가 석영과 대화하던 중 만해스님이 신흥사에 계실 때 속초에 사는 과부와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오랫동안의 의문이 풀렸던 적이 있다. 궁금한 독자는 아래 홍주일보 기사에서 만해 스님의 연애 이야기를 확인하기 바란다.

 

<만해 한용운, 불교 승려로 원적을 둔 설악의 신흥사> 기사 보기

http://www.hj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5755

 

우회 도로가 끝나고 다시 59번 도로로 돌아왔다. 조금 내려가니 막동계곡 입구가 나온다. 이날 답사의 종점이다. 저녁 5시 10분에 답사를 마쳤다. 이날 5명이 동강 따라 걷기 제5구간 12.4km를 4시간 동안 걸었다. 비가 오고 덥지 않아서 그런지 매우 빨리 걸은 셈이다.

 

 

 

<답사 후기>

석영이 이날 답사를 마치고 소감문을 보내왔다. 전문을 여기에 싣는다.

 

6월 27일 평창, 비가 오는 날입니다. 오대천 따라 영월 동강까지 걷는 답사의 5회차 행정입니다. 장마 시즌에 들었답니다. 추적추적 오는 비라고 하기에는 다채롭습니다. 장대처럼 굵은 빗줄기가 빗금으로 내려꽂히기도 하고, 다시 구름 걷어내고 말갛게 빈 하늘 보이다가 어느새 부슬부슬 추적거리다가 굵은 빗줄기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합니다. 그 변주의 간격에 모종의 리듬감이 있기도 합니다.

 

그 빗속을 우리는 걷습니다. 쏟아질 때는 잠시 피할지언정 걷습니다. 걷는 각오가 은연중 굳셉니다. 이렇게 걸으며 마음에 새겨놓는 정서는 1942년에 백년설이 부른 '나그네 설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나온 세월이란 으레 눈물을 불러오는 연동 기제로 작동합니다. 내 기분은 자못 그러합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

 

오대천 따라 영월 동강까지 오로지 평범한 걸음으로 강을 벗하여 걷는 우리 옛 친구들의 걷기가 오늘 5회 차입니다. 평창군 진부에 있는 청심대(淸心臺)가 오늘의 시발점입니다. 물론 이는 지난 6월 14일 걸었던 길의 종착점입니다. 이 은근하고 깊숙한 재미는 아는 이만 압니다. 동사를 목적으로 하는 실천은 단조로운 듯해도 대체로 순정하고 명료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목적도 그냥 '걷다'입니다.

 

“비 온 뒤에 경물(景物)이 달라진다”는 표현이 고산(孤山)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나오는데, 문자로만 익혔던 그 풍경을 오늘은 나의 감관으로 평창의 산악과 골짜기에서 가득 차오르게 느끼며 걷습니다.

 

청심대 언덕 꼭대기 정자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를 피합니다. 이 안온함과 구출감과 보호감이 얼마나 좋은지요. 마치 피안의 세계에 있는 듯, 어떤 은혜의 영토에 머무르는 듯합니다. 왔던 길도 돌아갈 길도 아득히 잊어버립니다.

 

폭우 빗겨 치는 사이로 내다보는 가까운 산들은 갑자기 낯설어 보이고, 아득한 운무에 잠기는 먼 산들은 왜 그리도 친근한지요. 사랑하는 그대, 그대도 여기서는 먼 산으로 아득하여 나를 다가오라고 손짓합니다.

 

<동영상> 비 내리는 답사길

 

비가 물러가고 걷기를 이어갑니다. 산들 가파르게 하늘 항하여 그 힘든 경사면에 울울창창 자란 숲들이 녹색의 장관을 보여줍니다. 고개 들어 가파른 정상에 눈을 주면 장마 구름 언뜻언뜻 흘러갑니다. 걷는 길 좌우로 산은 이어지고, 금방 우르르 쏟아 내릴 듯한 경사가 협박의 각도로 묵시록처럼 자태를 보입니다.

 

산곡으로 흐르는 강물은 잠깐 사이 물이 살찌듯 불었습니다. 골골이 급하게 흘러내린 물들은 경사를 훑어오며 적잖은 흙을 거느려 평창강 강물은 누런 빛깔입니다. 장마 호우를 강은 이런 기색으로 드러내며 급류로 흘러갑니다. 그 옆으로 우리는 걷습니다.

 

오늘은 가지 않는 길을 걷는 감회가 각별합니다. 예전에 도로로 활용하던 길이었으나 새 길을 내면서 또는 터널을 내면서 옆으로 밀려난 길입니다. 차도 인적도 멸절이라 무인지경을 걸어가는 심정이 호젓했습니다. 이 호젓함을 누가 같이 누려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잠시 비집고 들기도 합니다. 군가 수백 개의 양봉 벌통을 진설하여 벌떼와 함께하는 길을 걸어보기도 합니다.

 

오늘 행정은 막동계곡 입구가 종점입니다. 저녁을 오리구이를 기막히게 하는 봉평면 유포리 부근의 음식점에서 합니다. 친구 무심(無心)의 수고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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