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가 알사탕을 굴려서는 안 된다

2022.12.16 12:00:53

강석훈, 《조선의 大기자 연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0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10. 23.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고맙게도 KBS 강석훈 기자가 문상을 와주었습니다. 강기자는 자기가 쓴 책이 곧 나온다더니, 10. 31. 초판이 나오자마자 나에게도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大기자 연암》이란 책입니다. 대(大)기자라니? 연암을 좋아하고 열하일기를 애독한 나로서는 순가 ‘대기자’에 혼란스러웠으나, 이내 강 기자가 연암을 ‘대기자’라고 부르는 것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머리말에서 강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하일기는 대기자의 면모와 식견, 실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장정의 르포르타주다. 르포르타주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특정 주제나 지역 사회를 심층 취재한 기자가 취재 내용과 식견을 바탕으로 뉴스와 여러 에피소드, 논평 등을 종합적으로 완성한 기사이다.”

 

‘그래! 기자의 관점에서는 《열하일기》에서 연암의 대기자의 면목을 읽어낼 수 있겠구나!’ 그런데 강 기자는 연암이 능숙한 대기자의 필치로 《열하일기》를 썼을 뿐 아니라, 연암 스스로 《열하일기》에서 자신을 ‘기자’라고 했답니다. ‘으잉? 이건 무슨 말이야? 당시에는 ‘기자’라는 개념도 없을 때 아닌가?’ 1780년(건륭 45) 8월 1일 자 《열하일기》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나옵니다. “記之者誰 朝鮮朴趾源也” 하하! 기자의 예리한 눈은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네요. 물론 연암이 오늘날 ‘기자’를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닐 테고, 단지 ‘이 글을 쓴 자가 누구냐? 조선의 박지원이다.’라고 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之’를 빼면 ‘記者’가 나오는 것은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장일로 바쁜 기자가 어떻게 연암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강 기자는 중국 특파원 시절 《열하일기》를 탐독하며, 연암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대기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언제고 기자의 시각에서 연암 박지원을 조명하는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드디어 그 마음 먹은 결과물이 이번에 나온 것이네요. 그동안 《열하일기》를 다각도에서 분석한 글들이 많이 나왔지만, 아마 기자의 관점에서 《열하일기》를 본 것은 강기자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 기자는 《열하일기》에 나오는 연암의 기자 정신을 ① 현장 정신, ② 기록 정신, ③ 탐사 정신, ④ 투명성의 정신, ⑤ 불편부당 정신, ⑥ 비판 정신, ⑦ 공공 정신, ⑧ 취재 열정, ⑨ 철저한 취재 준비, ⑩ 사실의 정확성, 이렇게 10가지로 말합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말해보겠습니다. 요즘이야 북경까지 비행기를 타면 금방이지만, 그 시절 한양에서 출발하여 이후 북경까지 가는 길은 머나먼 길입니다. 가는 여정에 보통 사신 일행은 숙소에 도착하면 다음 날 여정을 체크하고, 술 한잔을 하거나 잠자기 바쁘겠지만, 연암은 현장을 누비며 기삿거리를 찾습니다.

 

“시냇가에서 떠들썩하니 다투는 소리가 나는데, 말하는 소리가 새소리인지 벌레 소리인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급히 달려가 보니’ 득룡이 되놈들과 예물이 많으니 적으니 하면서 다투고 있었다.”

 

하하! 현장에 충실하기 위하여 양반의 체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급히 뛰어가는 연암의 모습을 떠올리려니, 웃음이 나옵니다. 사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연암의 호기심’을 떠올렸는데, 강 기자는 ‘기자 연암의 현장 정신’을 떠올렸군요. 기자는 또 기록에 충실해야 하지 않습니까? 연암은 북경에 도착하였을 때 사절단에게 지급된 식자재 목록도 지루하다 싶은 정도로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만리장성의 고북구(古北口)를 지날 때는 급히 기록해야 하는데 벼룻물을 구할 수 없자, 술을 부어 먹을 갑니다. 하하! 나중에 술로 쓴 기록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면 술냄새가 날까요? 연암이 기록한 취재수첩이 많다 보니, 귀국할 때 다른 일행들은 두툼한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돌아가는데, 연암은 두툼한 취재수첩 보따리를 가지고 갑니다. 연암의 취재수첩 보따리를 보고 다른 일행들이 비웃었지만, 바로 이러한 취재수첩 보따리에서 위대한 《열하일기》가 탄생한 것 아니겠습니까?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보통 여행기는 눈 앞에 펼쳐지는 경치와 현지 문화를 보고 느낀 것을 단선적으로 기록하는데, 연암은 그 이면까지 예리하게 분석합니다. 바로 기자의 ‘탐사 정신’입니다. 바로 이러한 탐사 정신으로 연암은 황제가 라마승 판첸라마를 극진히 모시는 이유를 분석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황제는 서번의 승왕을 맞이하여 스승으로 삼고 황금 전각을 지어 거처하게 하고 있다. 천자는 무엇이 괴로워서 이런 격에 넘치고 사치한 예우를 하는가? 명목은 스승으로 모시면서 기실은 황금 전각 속에 그를 감금해두고 세상이 하루하루 무사하기를 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문으로 된 《열하일기》에는 유일하게 한글 ‘뱝새’가 나옵니다. 뱝새는 뱁새를 말하는데, 강 기자는 아마도 뱁새를 정확한 한자로 표기하기 어려워 한글로 쓰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강 기자는 이를 ‘사실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기자 정신으로 보는데, 이에 대해 강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일한 한글 표기 ‘뱝새’ 역시 정확한 사실 전달에 철두철미한 연암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단어다. 열하일기를 모두 한자로 쓴 마당에 뱁새의 한자를 모른다고 하면 그냥 ‘참새와 비슷한 새’라거나 ‘한 마리 작은 새’ 등의 한자로 표기해도 될 것이다. 아니면 이 단락을 쓰지 않아도 큰 무리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한글 ‘뱝새’로 표기한 것은 보고 들은 것을 쓰되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전해야 한다는 기자 정신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다. 모르는 내용을 얼렁뚱땅 포장하고 넘어가는 ‘적당주의’ ‘대충주의’라는 말이 연암의 사전에는 없었다.”

 

《조선의 大기자 연암》을 읽으면서 연암의 기자 정신을 10가지로 분류하고 설명하는 강 기자의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가 하면, 강 기자는 연암의 취재 기법도 ‘현장 취재 기법’, ‘현상(現象) 취재 기법’, ‘인물 취재 기법’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열하에 왔을 때 궁궐 안에서 연회가 열리는데, 연암은 삼종형인 정사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따라온 것이기에 연회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연암은 궁궐 담장을 돌며 혹시라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까 하여, 작은 문의 구멍을 통해 들여다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문지기가 담배를 달라고 하자 재빨리 주면서 걸상 하나를 얻습니다.

 

그리고 걸상 위에 올라가 한 손으로는 문지기의 어깨를 잡고 한 손으로는 문 위의 가로로 댄 나무를 잡고 연회를 구경합니다. 연암은 이런 자기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걸상을 딛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살찐 물오리가 횃대에 서 있는 것 같아서 오래 서 있기가 어렵다.” 하하! 역시 유머감각이 뛰어난 연암의 필치가 여기에서도 드러나네요. 그런데 강 기자는 이러한 연암의 모습을 보고 ‘엿보기’ 취재의 원조라고 하네요.

 

연암이 자제군관 자격으로 청나라 사신단 일행으로 가면서 가장 관심을 가진 부분은 천하의 형세입니다. 그리하여 청나라 주변 정세와 청나라 외교 정책, 청나라의 한족 관리 정책, 청나라의 대조선 정책 등을 탐구하고 분석하였습니다. 강 기자는 이에 대해 ‘연암은 천하의 형세, 천하의 대세를 살펴 천하의 근심거리를 걱정하는 게 취재의 목적이라고 누차 밝혔다.’라고 합니다.

 

《열하일기》 하면 언뜻 여행기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듯 연암은 조선을 위해 천하의 형세를 살핀 것입니다. 그렇기에 연암은 청나라 사람들을 만나면 이러한 취재를 계속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래도 민감한 문제가 따르니 취재하는 사람이나 취재원이나 말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암은 이러한 때의 취재 기법을 이렇게 밝힙니다.

 

“그들의 환심을 사려 한다면 반드시 대국의 명성과 교화를 곡진하게 찬미함으로써 먼저 그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고, 중국과 외국이 한 몸이나 다름없음을 부지런히 보여주어 혐의를 받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한편으로 예법이나 음악의 문제에 뜻을 두어서 스스로 전아하게 보이도록 하고, 또 한편으로는 역대의 역사 사실을 거론하되 최근 사정에 대해서는 다그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연암의 말에 강 기자는 아무리 연암이 출중하다고 해도 언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 취재 기법과 ‘취재원 대우’를 이처럼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설파할 수가 있을까 하며 탄복합니다. 저 역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연암의 기자 정신을 분석한 강 기자는 에필로그에서 오늘날 언론이 권력에 동조하고, 편 가르기와 편파보도를 한다면서, 기자 정신이 실종된 오늘날의 기자세계를 통렬히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연암에게 배우라고 하며,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습니다.

 

“천하지우(天下之憂)의 고뇌에서 보듯 연암의 글에는 늘 고심처가 있었다. 관찰과 생각을 늘 깊이 있게 했다. 연암처럼 생각이 깊어지면 기자가 깊어지고 기자가 깊어지면 언론이 깊어진다. 언론이 깊어지면 사회가 깊어지고 나라가 깊어진다. 혼미해지는 기자 정신과 권력 동조화, 편 가르기, 편파보도는 분명 21세기 대한민국 언론계의 요괴이자 천하지우다. 바로 지금 우리의 문제로서, 우리 스스로 깊이 고민하여 그 실체를 정확하게 비추고 극복해서 ‘언론의 도’를 되찾아야 할 때다. 대기자 연암이 남긴 기자 정신의 거울을 지금 다시 닦아야 하는 이유다. 말똥구리가 알사탕을 굴려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말똥구리가 알사탕을 굴려서는 안 된다... 깊이 음미해봐야 할 말이군요. ‘기자가 알사탕을 탐하면 이미 그는 기자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런 기자 같지 않은 기자가 많지 않은가?’ 강 기자가 말똥구리 비유를 들면서 우리에게 하려던 말이 아닐까요? 강 기자님! 연암을 좋아하는 저에게 기자의 관점에서 본 《열하일기》를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 소주 한잔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연암에 관한 얘기 나눠봅시다.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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