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바라보는 한국

  • 등록 2025.07.23 10: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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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역사, 세계에 알리는 전환점을 만들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31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달 초 중남미 카리브해라는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나라 쿠바의 수도 아바나 외곽의 한 유대인 묘지에 우리나라 대사가 헌화를 한 행사가 있었다. 묘지의 주인공은 아이작 본다르(Isaac Bondar)라는 이름의 한 쿠바인으로 우리의 6ㆍ25 전쟁에 미군 병사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사람이다. 1928년 쿠바에서 태어난 본다르는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다가 미군에 입대해 미군 45보병사단 소속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전장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1952년 5월, 23살의 나이로 전사했다. 쿠바는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전에는 미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여서 많은 쿠바인들이 미국에서 살다가 미군에 입대했었기에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본다르 상병만 알려져 있다. 이날 이호열 주쿠바 한국대사는 재쿠바 유대인협회와 함께 묘소를 방문해 "한국 정부를 대표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며 "본다르 상병을 대한민국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먼 나라였다. 카리브해 중간에 있으므로 뱃길로 바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거기에 가려면 미국 마이애미나 다른 지역에서 비행기로 두세 번 갈아타고 가야 한다. 1960년대 초 미국 케네디 대통령 시절 소련이 코 밑인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한 문제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런데 그보다도 40여 년 전인 1921년에 일련의 한국인들이 쿠바에 노동자로 들어간 역사가 있다.

1905년 대한제국 당시 한 일본 송출회사가 멕시코 일대에 많이 자라는 애니깽(Henequen)이라는 식물의 농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게 해준다고 인력을 모집해 천여 명의 한국인들이 1905년에 멕시코로 가서 일을 하게 된다. 일본인 회사는 한국인들에게 하루 1원 30전의 고임금(당시로서는)과 4년 뒤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약서를 보여주었지만, 실상은 노예로 팔려 간 것으로 1905년 5월에 멕시코 유카탄 주의 메리다 시에 도착하여 이 일대 애니깽 농장으로 배정되었다.

 

그들은 한낮 40도가 넘는 고온에도 하루에 1,000개의 애니깽 잎을 따고 모아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가죽 채찍으로 맞거나 굶거나 했다. 그동안 고국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었고 계약기간이 끝나고 갈 데 없는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이들 가운데 이웃나라인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1921년에 100여 명이 건너가서 일을 하며 살다가 거기서 생을 마친 슬픈 역사가 있다. (이때의 이야기는 1996년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개봉하기도 전에 대종상의 최고작품상으로 뽑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멕시코 이민 1세대 에니깽들은 대부분 1950년대에 사망하였고 그들의 후손들이 멕시코와 쿠바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하는데 쿠바의 후예들은 한국어를 잊어버리고 스페인어를 쓰는 현지인이 되었으나 한국 음식 문화나 전통 의상 등을 간직해 왔고 최근 한국이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면서 이들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긍지를 되찾아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우리하고는 그런 역사가 있는 쿠바, 그런데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의 한 공원에 칼을 찬 일본인 무사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을 아는가? 일본에서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 먼 곳에 왠 일본 무사의 동상이란 말인가? 그 이면에는 해양강국이었던 일본의 숨은 역사가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새로 일본을 지배하게 된 도쿠카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당시 일본에 와 있던 신부들을 통해 스페인과 유럽에 대해 알게 되고 이들 나라들과 통상 허가를 받기 위해 스페인과 로마교황청에 사절을 보내기로 한다. 그래서 인접한 센다이번(仙台藩)의 번주인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에게 큰 범선을 만들어 사절단을 보내도록 한다. 약 40일 동안에 막부에서 기술자가 내려오고 각지의 배를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영국형 범선을 만들자, 이 센다이번의 하세쿠라 쓰네나가(支倉常長 1571년~1622년)라는 무사가 단장이 되고 180명 규모의 사절단이 꾸려져 1613년 음력 9월 보름날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향한다. 이른바 게이초유럽사절(慶長遣欧使節)이다.

 

 

이들은 석 달 뒤에 멕시코의 아카풀코에 도착한 후 거기서부터 육로로 카리브해 쪽 베라크루스로 이동해 이듬해 6월에 스페인 함대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은 7월 23일 쿠바의 아바나에 입항했다가 8월 7일에 아바나를 출항해 이윽고 10월에 스페인에 상륙한다. 사절단은 1615년 1월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를, 그리고 10달 뒤인 11월에는 로마에 가서 교황 바오로 5세를 알현하였으나, 통상교섭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1620년 9월 20일(음력 8월 24일)에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로마에까지 다녀오는 동안 일본 내의 기독교 상황이 아주 달라졌다. 그가 귀국하였을 때 이미 일본에는 기독교 금교령이 내려져 기독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이 잇달았다. 멀리 로마까지 다녀온 하세쿠라는 실의 속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20년 뒤엔 그의 아들 쓰네요리(常頼)가 하인이 기독교 신자라는 까닭으로 처형당하고 그의 가문은 단절되었다.

 

그가 사절로 로마에까지 간 것은 일본 막부 정부의 통상 목표를 위해서였고 그 목적이 성공하지 못해 쓸쓸한 최후를 맞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일본사절단의 배가 1만킬로가 넘는 태평양을 건너고 거기서 스페인 배로 8천 킬로미터를 더 항해해 로마에까지 다녀온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임진왜란으로 쓰디 쓴 고난을 당하면서도 우리의 활동반경은 한반도 주변 바다에 국한되어 있을 때 일본은 편도 약 2만 킬로, 왕복 4만 킬로의 항해를 한 것이다. 지구 둘레가 약 46,250km라고 하니 거의 지구를 일주하는 대항해였다.

 

 

일본인들은 그런 일본인들의 해양에서의 역사를 자랑하고 기리기 위해 2006년에 아바나에 하세쿠라의 동상을 세웠다. 하세쿠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에도 참여한 무사라고 하는데, 수십만 리 떨어진 쿠바에서 마치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라는 듯 교황청이 있는 로마 방향을 가리키는 동상이다. 첫 상륙지인 아카풀코에도 동상을 세웠다.

 

 

우리의 역사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뤄졌기에 일찍이 나라 밖을 경략한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발자취를 나라 밖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았지만, 일본인들은 중국 시안(西安)의 흥경궁공원에 일찍이 당나라 때 장안에 와서 벼슬을 하며 활동한 아베노나카마로(阿倍仲麻呂, 698~770, 중국 이름은 晁衡)의 기념비를 만들어놓았고, 하세쿠라의 동상을 멕시코와 쿠바에 만들어 놓았다. 나라 밖에 나가서 활약한 자기 선인들의 동상을 각각 동양과 서양에 세우고 자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 대륙에서 활약한 한국인 조상을 현양한 사례가 최치원을 빼고는 거의 없다. 그 대신에 피해를 본, 혹은 가해자를 상징하는 조각을 이곳저곳에 세워놓고 있을 뿐이어서 밝은 역사를 알리는 일본의 방식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동안 한반도와 그 주변 바다에 갇혀있던 한국인들은 이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닫혀있던 쿠바도 우리와 서로 문을 열고 통상과 교류를 시작했다. 우리를 위해 죽은 한 병사를 우리 정부가 추모하는 첫발을 내디딘 만큼 우리도 기왕이면 우리를 도운 사람이나 나라를 현양하고 우리들의 역사 속에서도 자랑스러운 역사를 찾아서 알려야 한다. 생각해 보면 그 사례는 많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시각을 더 진취적이고 긍정적으로 만들어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넘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전환점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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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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