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 가장 종요로운 것은 대화

2023.01.05 12:02:47

<메밀꽃 필 무렵>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견줌 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세 번째 공통점을 찾자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메밀꽃의 배경인 봉평면에서 매년 9월 첫 주에 열리는 메밀꽃 축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봉평면에서는 이효석 문학관, 문학의 숲, 효석문학 100리길, 문학산, 달빛언덕 등등 여러 가지 이효석 관련 시설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죽은 이효석이 살아있는 봉평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매디슨의 배경인 아이오아주 매디슨 카운티 역시 유명해졌다. 다리에서 혼인 사진을 찍으려는 신혼부부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오고,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들어섰다. 한적한 농촌 마을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소설이 매디슨 카운티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런데, 두 소설을 읽은 뒤에 자꾸만 생각나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동서고금 수많은 소설 그리고 수많은 실화에서 보면 남녀가 은밀히 1:1로 만나면 대화 나누기로 만족하지 못하고 육체적인 사랑에까지 나아가게 된다. 왜 멈추지 못할까?

 

물방앗간에서 처녀와 허생원은 대화만 나누고 끝날 수는 없었을까? 가족이 박람회로 떠나고 없는 시골집에서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는 식사하고 음악 듣고 대화하고, 거기서 끝날 수는 없었을까?

 

문학 평론가는 메밀꽃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허생원이 물방앗간에서 우연히 만나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는 이유를 ‘애욕의 신비성’이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한다. 매디슨에서 프란체스카가 사랑이라는 이름의 불륜에 빠지는 이유 또한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서로에게 끌리어 육체적인 사랑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목적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이 물음에 대하여 내가 수긍할 수 있는 그럴듯한 설명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므로, 이 질문 역시 그냥 접어 두고 신비의 영역에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직설적으로 다른 질문을 해 본다. 프란체스카는 사랑했을까? 불륜을 저질렀을까? 그녀는 사랑이라고 말하였지만, 남들은 불륜이라고 말할 것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내가 보기에는 불륜이다. 그렇다면 왜 프란체스카는 불륜에 빠져들었을까?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프란체스카가 불륜에 빠진 원인은 농부였던 남편 존슨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남편은 무난하게 가정을 꾸렸다. 농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자녀 둘을 잘 키웠다. 정직하며 온화한 성격이었다. 그러면 남편이 잘못한 것은? 큰 잘못은 없다. 굳이 흠을 찾아내자면 아내에게 변화 없는 평범한 삶을 살게 한 것이 흠이었다. 감성을 추구하는 아내 프란체스카에게 꿈을 이루어주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무미건조한 삶을 살게 했다는 것이 잘못이다. 내가 나이 들면서 깨달은 인생의 진리 가운데 하나는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나는 인생과 사랑에서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란체스카 부부는 서로 얼마나 대화를 나누면서 살았을까? 평소 남편에게 자신이 꿈꾸던 세상에 관해 이야기했을까? 가보지 못한 다른 세상인 아프리카에도 가고 싶고, 어릴 때 자란 이탈리아의 시골에도 가고 싶고, 클럽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춤도 추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어땠을까? 남편에게 자신의 감정과 꿈을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남편인 존슨이 병원 침상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프란체스카,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미안하오. 당신에게 꿈을 심어주지 못해서.”

남편의 고백을 들은 프란체스카는 마지막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함께 살았던 생애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지.”

 

매디슨에서 남편은 아내의 정신세계에서 배제되고 사랑의 승리자가 되지 못한다. 몸이 같이 있다고 마음마저 항상 같이하지는 않는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을 달려가면서 부부가 얼마나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남녀가 사랑한다고 해도 소통을 소홀히 하면 마음 한구석에 앙금이 남는다. 부부가 나이 들어가면서 대화가 줄어들고, 소통이 막힌 결과로 쌓인 앙금이 무거워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별거, 이혼, 졸혼, 휴혼 등이 아닐까?

 

두 소설을 비교하면서 읽은 뒤 쓴 이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하나 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부 사이 대화를 절대 필요하다.

 

<덧붙이는 말>

 

매디슨의 작가인 로버트 제임스 월러(1940~2017)는 1990년에 그가 자신의 청춘을 보낸 아이오아주 시골 동네를 지나다가 우연히 다리를 보고 그 자리에서 형언할 수 없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뒤 날마다 4시간씩 잠을 자고 종일 글을 써 11일 만에 원고를 끝냈다고 한다.

 

소설은 1992년에 발표되었는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37주 동안 차지했고 미국에서만 850만 부가 팔렸다. 한국에서는 1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전 세계에서 5,0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 소설로 작가인 월러는 백만장자가 되었는데, 그는 2017년에 77살로 죽었다.

 

소설을 주제로 한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1995년에 2,40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영화는 미국에서 7,150만 달러, 외국에서 1억 1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2014년에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프란체스카의 집은 원래는 버려진 폐가였는데 영화 제작을 위해 5달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2002년에 소설이 불륜을 미화한다고 생각한 기독교 광신도가 다리를 불태웠고, 2003년에는 프란체스카의 집도 방화로 불탔다. 다리는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더니 내 친구 시인마뇽이 말했다. “사람들은 불륜에는 흥분하면서 불의에는 관대하다.”

 

메밀꽃을 쓴 이효석(1907~1942)은 29살 때인 1936년 월간지 《조광》에 이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1967년에 이성구 감독에 의해 흑백영화로 만들어졌다. 허생원 역에는 박노식, 동이 역에는 이순재, 분이 역에는 김지미, 조선달 역에는 김희갑이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 96분인데, 흥미로운 사항은 청소년관람불가로 등급이 매겨졌다는 것이다.

 

이효석은 1942년에 35살의 나이로 평양에서 요절했다. 평창군 진부면에 있던 그의 무덤은 1972년 영동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인해 용평면 장평리로 이장되었다. 1998년에 영동고속도로를 확장하면서 그의 무덤은 연고가 없던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묘지로 다시 이장되었다. 그의 무덤은 2021년 11월 봉평면 창동리에 복원된 이효석 생가 뒷산에 마지막으로 안장되었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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