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죽은 아내를 생각하여 슬퍼함(도망-悼亡)
- 추사 김정희
那將月姥訟冥司(나장월모송명사) 어찌 월하노인과 함께 저승에 가 하소연하여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 내세에는 부부가 처지를 바꾸어서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나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남아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그대가 나의 이 슬픔을 알게 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 이름난 학자들은 거의 한글을 외면했지만 추사 김정희는 평생 40통의 한글 편지를 남겼다. 그 40통 가운데 며느리에게 보낸 2통을 빼곤 모두 부인 예안이씨(禮安李氏)에게 쓴 것이다. 추사는 첫째 부인 한산 이 씨가 혼인 5년 만에 죽자 삼년상을 마치고 예안 이 씨와 재혼해서 20여 년을 살았는데 추사는 예안 이 씨를 무척 사랑했으며 이것이 38통의 한글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추사는 당쟁에 휘말려 20여 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한 까닭에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편지로 썼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제주도로 유배가 있는 동안 쓴 편지는 빠르면 두 달, 늦으면 일곱 달이나 걸렸다. 편지에서 추사는 병약한 몸으로 지아비가 없는 20여 년 동안 효성을 다하고 덕을 쌓은 이 씨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표했고, 이에 이 씨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위 시는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추사가 대성통곡(大聲痛哭)하며 쓴 것이다. 아내가 죽은 줄도 모르고 유배지 제주도 음식이 맞지 않음을 투정하여 젓갈 등을 보내달라고 했던 추사였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추사는 시에서 내세에는 부부가 서로 바꿔 태어나 자신이 죽고 아내가 천 리 먼 제주도에 살아남아 아내를 잃은 자신의 이 슬픔을 알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