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이 발원한 <‘회암사’ 명 약사여래삼존도>

  • 등록 2023.04.22 1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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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약사불(藥師佛)’은 과거 아직 부처가 되지 않은 보살이었을 때 12가지의 소원을 세웠습니다. 아픈 자의 질병을 치유하고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하게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랐고, 반드시 그 바람을 이루리라 맹세했습니다. 약사불은 오랜 시간 쌓은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고, 간절했던 서원(誓願)으로 인해 병든 자들을 구원하는 부처로 오랜 시간 신앙이 되었습니다. 금동불, 석불, 마애불(암벽에 새긴 불상), 목조불 등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꾸준히 조성되었으며, 그의 모습은 보물(옛 지정번호 보물 제2012호)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처럼 불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보물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약사불과 그의 두 협시보살을 그린 조선시대 불화입니다. 높이 60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적갈색 화면 위에 부처와 두 보살의 찬란한 모습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금니(금박 가루를 아교풀에 갠 것)로 그려져 있습니다.

 

보상화(寶相華)와 연꽃무늬로 장식된 높은 수미단 위에 금니로 섬세히 그려진 연꽃이 활짝 피었고, 그 위로 약사불이 앉았습니다. 바탕재가 훼손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다리 위에 올린 왼손에는 약사불의 상징인 약합(藥盒)이 그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장대한 윗몸에 견줘 약사불의 이목구비는 상대적으로 가늘고 섬세합니다. 뒤에서 적색을 칠해 은은히 색이 배어나게 했고, 앞에서는 피부 부분에 백색을 칠했으며 다시 금니로 덮은 뒤 이목구비를 그렸습니다. 부처의 입술과 머리를 장식한 정상계주는 금색으로 가득한 화면에서 유일하게 붉은색을 뽐냅니다.

 

두 협시보살은 수미단(절의 불전 내부의 정면에 부처를 모셔 두는 단) 아래에 자리하여 부처를 향해 합장하고 있습니다.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진 보관을 쓴 보살은 해처럼 빛나는 지혜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일광보살이고, 절구 찧는 토끼가 그려진 보관을 쓴 보살은 달처럼 청정한 덕을 갖추었다는 월광보살입니다. 부처와 보살을 위아래로 구분한 2단 구도는 고려불화의 전통을 보여주고, 약사불의 높고 뾰족한 육계와 옷 주름 표현은 조선 전기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줍니다. 갈색의 공간을 가득 메운 금색 꽃과 구름만이 캄캄한 밤하늘의 별처럼 약사삼존이 자리잡은 공간은 장엄(莊嚴)한 모습입니다.

 

 

조선 왕실이 심혈을 다한 대작 불사(佛事)

 

작은 공간 안에 펼쳐진 부처의 금빛 세계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불화를 포함해 모두 400점의 화면에서 부처의 정토가 펼쳐졌습니다. 이중 약사삼존을 그린 불화는 모두 100점이었습니다. 월광보살의 오른편과 화면 아래쪽에는 이와 같은 불화가 얼마나 많이 조성되었는지 적혀 있습니다.

 

 

“가정(嘉靖) 을축년(1565, 명종 20) 정월(음력 1월)에 우리 성렬인명(聖烈仁明) 대왕대비 전하(문정왕후文定王后)께서 주상전하 성체가 만세를 누리시고 (가운데 줄임) 왕비 전하가 부디 임신하여 왕손을 생산하기를 기원하면서 내탕(內帑)의 보화를 내어 솜씨 좋은 장인에게 명하여 석가불, 미륵불, 약사불, 아미타불과 보살을 갖추어 각각 금화(金畫) 50탱, 채화(彩畫) 50탱씩 모두 400탱을 장엄하게 완비하였다. 삼가 회암사 중창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법에 따라 점안(點眼: 새로 조성한 불상이나 불화를 처음 봉안하며 눈동자를 그려 넣는 의식)하고 이를 내려주시었다. (하략)”

 

이 불화는 1565년, 명종(明宗, 재위 1545-1567)의 어머니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가 회암사 중수 기념으로 발원하여 전국 절에 나누어준 불화 400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정왕후는 12살로 즉위한 아들 명종 대신 섭정하면서 정치적 권력을 쥐었고, 불교 중흥에 적극적인 정책을 취했습니다. 사라졌던 선종과 교종을 다시 세우고 승과(僧科)를 실시했으며 나암 보우(懶庵普雨)를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고 그와 함께 양주 회암사 중건을 도모했습니다.

 

문정왕후는 억불숭유로 기억되는 조선시대에 불교를 중흥시켰던 몇 안 되는 최고 권력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막강한 권력과 재화가 있었기에 아들인 명종의 만수무강과 왕비의 임신, 왕손 생산을 기원하며 석가모니불ㆍ약사불ㆍ미륵불ㆍ아미타불을 그린 불화를 각각 금니로 50점, 채색화로 50점씩 모두 400점이나 함께 조성했던 것입니다. 명종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가 1563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왕실을 책임지는 대왕대비로서 명종의 새로운 후사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했고, 그만큼 불사의 규모도 남달랐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크기는 작지만 굵고 가는 선을 적절히 사용하여 채색 없이 필선만으로 약사불과 보살의 찬란한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유려하고 정교한 필선은 상당한 기량을 가진 화가가 불화를 그렸음을 알려줍니다. 화기(畫記)에 화가 이름까지는 적혀 있지 않아서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왕실 발원이었던 만큼 당시 활동하던 궁중 화원이 불사에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 불화와 함께 조성된 다른 불화의 화기 마지막 부분에 ‘청평산인 나암(淸平山人 懶巖)’이라고 적혀 있어, 당시 문정왕후와 함께 불교 부흥을 이끌었던 나암 보우 역시 대불사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왕실 으뜸 권력자인 대왕대비, 불교계를 대표하는 고승 나암 보우, 그리고 왕실의 화원까지 모두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기념비적 대작 불사의 한 조각입니다.

 

역사 속에 사라진 회암사와 400점의 불화

 

손자인 순회세자를 잃자 문정왕후는 복을 기원하기 위해 회암사의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준비했습니다. 무차대회는 승려나 속인 가리지 않고 일반대중에게 베푸는 법회입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고, 대중에게 그 공덕이 두루 미치길 바라며 열리는 일종의 잔치였습니다. 화암사의 무차대회를 위해 당시 사방에서 몇천 명이 넘는 승려가 모여들었습니다. 붉은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고 황금으로 가마를 꾸미고, 앞뒤로 북을 치고 피리를 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때의 화려함을 비판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문정왕후 자신도 무차대회 참석을 위해 계율(戒律)에 따라 정결히 목욕재계하고 소식(小食)했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였던 문정왕후는 이 일로 몸이 상해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1565년 4월 6일(음력)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정왕후의 병환으로 무차대회는 중단되었고, 그녀의 죽음으로 보우가 잡혀가자 온 나라 가장 큰 규모의 왕실 사찰로 번창했던 회암사는 불태워지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1565년 1월 400점의 불화를 조성했을 당시에는 4달도 못 되어서 이렇게 허망하게 모든 것이 사라질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대단했던 불사였고 절이었지만, 구심점이 없어지자 과거의 영광은 한순간에 흩어지고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정점을 지난 역사와 문화 모두 이와 같은 길을 지나왔겠지요. 문정왕후가 발원한 불화 역시 400점 가운데 단 6점만 전하고 있습니다. 4점은 일본에, 1점은 미국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는 금니가 아닌 채색으로 그린 불화도 있습니다. 보물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단 하나 국내에 전하는 귀중한 불화입니다.

 

후대 역사에서는 권력을 휘둘러 조선이 그토록 억압하려고 했던 불교를 중흥한 문정왕후와 나암 보우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준으로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은 화면 안에 남아 있는 찬란한 금빛 세계는 한때나마 저 멀리 별이 빛을 발하듯 반짝였던 문정왕후의 바람과 조선 전기 왕실 불화의 한 면모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이한영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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