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배알’과 ‘속알’

  • 등록 2024.05.03 10: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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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서럽다 30]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배알’과 ‘속알’은 오랜 업신여김과 따돌림 속에서 쥐 죽은 듯이 숨어 지내는 낱말들이다. 그런 가운데서 ‘배알’은 그나마 국어사전에 올라서 목숨을 영영 잃지는 않았다 하겠으나, ‘속알’은 아주 목숨이 끊어졌는지 국어사전에조차 얼씬도 못 하고 있다. 국어사전들에서 풀이하고 있는 ‘속알’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알맹이. (평북)

   2) 단단한 껍데기가 있는 열매의 속알맹이 부분.

   3) ‘알맹이’의 방언. (평북)

 

이런 풀이는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속알’의 뜻과 사뭇 다른 엉뚱한 풀이들이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는 ‘배알’은 풀이가 또 이렇다.

 

   1) ① 동물의 창자. ② ‘사람의 창자’의 낮은말. ③ ‘부아’의 낮은말. ④ ‘속마음’의 낮은말. ⑤ ‘배짱’의 낮은말.

   2) ‘밸’을 속되게 이르는 말.

   3) ① ‘창자’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② ‘속마음’을 낮잡아 이르는 말. ③ ‘배짱’을 낮잡아 이르는 말.

 

‘동물의 창자’라는 것 말고는 모조리 ‘낮은말’이니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니 ‘낮잡아 이르는 말’이니 해 놓았다. ‘배알’은 제 뜻을 지니지도 못하고 겨우 다른 말을 낮추어 쓰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배알’을 얼마나 업신여기고 있는지 잘 알려 주는 풀이들이다.

 

 

‘배알’은 보다시피 ‘배’와 ‘알’이 어우러진 말이다. 그러니까 배 속에 들어 있는 알, 곧 밥통(위)과 염통(심장)과 애(창자)와 쓸개(담낭)와 지라(비장)와 이자(췌장)를 모두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무엇을 낮잡거나 속되게 이르는 말이 아니라 그저 제 뜻을 불쌍하도록 고스란히 지닌 말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낱말이 글에는 올라설 꿈도 못 꾸고 간신히 입으로만 떠돌며 살다가, ‘내장’이니 ‘복장’이니 ‘오장육부’니 하는 한자말에 자리를 빼앗기고 쫓겨난 것이다. 그러고는 ‘밸’로 줄어진 채 “밸이 꼬여서 못 견디겠다.” 또는 “밸이 뒤틀려 못 참겠다.” 하며 아니꼬움을 참고 견디는 하소연에다 겨우 자취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

 

‘속알’은 ‘속’과 ‘알’이 어우러진 낱말이다. 여기서 ‘속’이란 ‘사람의 속’ 곧 ‘마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속알’은 ‘마음의 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마음은 ‘느낌’을 겉으로 삼고 ‘생각’과 ‘뜻’을 속으로 삼고 있으므로, ‘마음의 알’이란 곧 ‘생각과 뜻’을 말한다. 그래서 ‘속알’이란 ‘마음의 알’이란 말이고, 그것은 곧 ‘생각과 뜻’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런 뜻의 ‘속알’이라는 낱말은 글말에 올라서 자취를 남기지도 못한 채 아주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일찍이 소리 나는 대로 ‘소갈’이라 적혀서, 그것도 낮잡는 뜻을 나타낸다는 ‘머리’를 뒷가지(접미사) 삼아 달고 글말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왕동이는 원래 소갈머리가 없는 녀석이니까 로밤이란 놈의 허풍에 놀아났다 치구…….

- 홍명희, <임꺽정>

 

덕분에 ‘소갈머리’는 국어사전에도 올라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우리는 ‘소갈’이 곧 ‘속알’이며 ‘생각과 뜻’을 이르는 낱말임을 미루어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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