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천 명무가 남긴 춤의 유산적 값어치

  • 등록 2024.05.12 12: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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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천 명인의 향토문화 살리기와 춤 유산 가치 2
민속학자 양종승의 <명인⦁명무 열전> 7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민속학자]  굿춤은 종교적 목적으로 추는 의례춤이다. 무당이 소정의 목적 달성을 위해 자신의 기(氣)를 상승시켜 신을 기쁘게 하거나 죽은 망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 추어지는 신앙 행위의 춤인 것이다. 황홀경에 도취한 신바람의 율동은 굿춤의 결정체이며, 혼돈과 세속적 질서를 깨트려 삶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어 신탁을 받는다.

 

그리하여 활력을 재생산하여 삶의 활력소를 갖도록 하는 것이 굿춤의 궁극적 목표다. 또한, 죽은 망자의 한을 달랜 뒤 저승문을 열어서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도 굿춤이 추어진다. 이와 같은 신앙의례의 굿춤을 춤 예술로 전환하여 세간에 소개한 박병천의 굿춤은 제석춤, 지전춤, 고풀이춤이다. 미학적 율동을 앞세워 무대예술로 등극한 이러한 춤은 삶의 정서와 관념을 담론화하여 예술 미학의 극치를 드높인다.

 

제석춤은 인간의 재복, 수명, 자손 점지를 관장하는 제석신의 춤이다. 환인, 환웅, 단군왕검 등 삼신의 제석은 존엄함의 상징이기에 제석춤 또한 엄숙함과 위엄성의 극치를 표출한다. 이러한 신앙적 제석춤을 신명적 흥과 미학적 멋을 불어 넣어 예술 춤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종이로 오려 만든 지전(紙錢)을 들고 죽은 망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한 망자 천도의 지전춤은 이제 산자의 삶을 인도하는 예술 미학의 격조 있는 춤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고단한 현세적 아픔을 헤치고 망망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게 돕는 예술적 몸부림의 행위로 구조화되는 것이 지전춤의 특징이다.

 

망자 저승길에 뿌렸던 노잣돈의 돈춤, 죽은 이의 넋을 건져 원혼을 달랬던 넋춤이었지만, 예술로 승화되면서 삶의 길을 위해 열어 슬픈 이의 멍든 가슴을 달래게 된 춤으로 승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전춤은 삶을 부르짖는 영혼의 노래와 함께 미화돼 정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춤 예술로 등극 되어 그 빛을 발한다. 아픔과 슬픔을 극복하여 기쁨과 환희의 몸부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 박병천의 신앙적 삶과 고뇌 그리고 예술적 철학과 사상이 담기게 되었다. 기다란 하얀 천으로 고를 메어 춤을 추면서 풀어나가는 고풀이춤은 망자가 살아 있는 동안 행했던 일련의 일생사를 고리로 묶었다가 하나하나씩 풀어내는 신앙적 춤이었다. 이러한 행위는 과오를 풀어내어 이를 깨끗하게 정화함으로써 망자의 승천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구조에 의한 신앙 행위의 고풀이가 이제는 예술 미학의 고풀이춤으로의 전환을 통해 행복한 산자 삶의 행로를 열어주는 미학적 춤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박병천 명무가 남긴 여러 춤에서도 가장 덧보이는 것은 북춤이다. 박병천은 어려서부터 악(樂)ㆍ가(歌)ㆍ무(舞)ㆍ극(劇)ㆍ예(禮)를 두루 섭렵하고 예술의 극도(極度) 경지에 오른 명무이다. 그러한 그가 승화시킨 북춤은 춤 예술계의 밥상을 더욱 다양하게 그리고 빛나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더욱 드높였다.

 

이 춤은 애초 진도지방 모내기 때 들노래를 부르며 가슴에 둘러맨 북을 양손으로 치면서 추는 춤이었다. 북춤을 추는 자가 여타의 소리꾼들을 지휘하는데 마치 대열을 이끄는 풍물패의 상쇠와도 같은 역할이었다. 끈으로 맨 북을 양어깨에 걸고 추는 춤이라 하여 걸북춤이라 하거나 양면의 북을 치면서 추는 춤이라 하여 양북춤, 한 쌍의 북채를 양손에 하나씩 나눠 들고 양면 북을 치면서 추는 춤이라 하여 양북춤 또는 쌍북춤, 대열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북 잽이가 추는 춤이어서 설북춤이라고도 하였고, 지역명을 붙여서 진도북춤이라고도 불렀다.

 

진도의 북춤을 한국 춤계에 빼어난 예술로 승화시킨 박병천은 북춤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과 춤계에서는 이 춤을 ‘박병천류 북춤’이라 칭한다. 이렇듯 박병천 북춤을 하나의 유파로 분류하는 까닭은 그의 업적을 드높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북춤 명인들의 그것과 구별하기 위함이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북춤의 명인으로 알려진 김행원, 김기수, 김성남, 임장수, 박태주, 양태옥, 장성천, 박관용, 곽덕환, 김내식 등의 춤제와는 다른 춤으로 분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병천 북춤이 윗대 명인들로부터 전해진 것이지만 자신의 활동 시대에 이르러 박병천만이 갖는 독자적 춤 예술을 구축한 것이 높이 평가되었고, 그 업적은 한국 무용계에 길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춤 예술은 주어진 공간에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대정신과 삶의 사상 그리고 철학이 함축된 것이어야 값어치를 갖는다. 그러면서 시공 변화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는 특성을 내세움으로써 살아 숨 쉬는 예술로써 의미가 있다. 전승자의 예술적 지혜와 기술을 기반으로 전승되는 것이 춤 예술이기 때문에 계승자에 따른 색채가 중시되고 사회성 그리고 예술가의 독창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기반으로 성립된 북춤이 바로 박병천류의 북춤인 것이다. 이제 오늘날의 박병천 북춤은 한국 춤 공연에서 주요한 공연 종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또는 무형유산적 값어치도 높이 평가된다.

 

박병천류 북춤은 호남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 음양 조화의 혼합으로 살아 숨 쉬는 삶의 에너지를 표출하는 특징을 지닌다. 괄괄하고 투박스럽게 표현되는 춤사위마다 박병천 명무만이 품어내는 교묘한 맛을 풍기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박병천류 북춤은 꼿꼿한 춤새를 통해 호방함과 경쾌함을 창출한다. 시원시원한 벌임새는 남성 춤의 표상으로 손색이 없다. 손끝의 미세함으로 뿌림과 거둠의 미를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기교보다는 내면으로부터 솟구치는 공력의 미를 더욱 중시하여 춤새를 승화시킨다.

 

천상으로 승천하려는 춤꾼의 몸부림은 북의 울림으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린다. 북가락에서 풍겨 나오는 미학 세계는 박병천 삶의 고뇌와 예술적 철학을 환희의 세계로 풍겨낸다. 고난과 역경을 걷어내고 기쁨이 가득한 삶의 노래로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 박병천류 북춤의 진실이고 또한 본색이다.

 

지역의 향토성과 정체성 그리고 예술성과 신명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북춤은 박병천 명무의 예술적 철학과 사상이 녹아 있는 춤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병천류 북춤은 막연히 옛 전통연희를 무대 위에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정중동의 법칙 그리고 억제미와 절제미 등 춤 예술의 미학적 표현방식을 준수하는 예술로 거듭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명무의 북춤은 전래 문화의 표본을 기반 삼아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시대성을 담보하고 표출된 것이어서 내일을 비추게 하는 예술적 사상으로 작용하고 미래 춤 예술의 창조적 바탕이 되기도 한다. 현대인의 삶 속에 보편타당성을 갖고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한국 춤 예술의 골격이 서려 있는 북춤으로 거듭났기에 그 값어치가 더욱 빛난다.

 

 

박병천 명무가 남긴 무형유산 가운데 특히 북춤이 한국 문화예술사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보호되고 현대인의 안목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하면 이는 문화다양성 존중의 기본적 안목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명무의 춤 유산에 녹아 있는 정신적, 철학적, 물질적, 감성적 특성을 잘 살려 한국 무형유산 발전을 위한 전략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구체적 활성화 및 보존 방안이 정책적으로 수립된다면 이에 대한 전승 방안도 수립될 것이다. 영화, 연극, 무용, 뮤지컬 등의 무대예술뿐만 아니라 미술, 장치 등 설치예술 그리고 소설, 시 등의 문학예술 등까지도 전통연희가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 요즈음, 박병천류 북춤의 시대적 가치와 역할은 더욱 커질 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형유산이 지닌 저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계적으로 무형유산에 대한 인식 전환에 따른 새로운 가치관 정립과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춤의 궁극적인 보존 방안은 무엇보다도 국가 차원의 무형유산 지정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올바른 전승 대책이 수립될 수가 있고 국가 차원의 예술 산업적 기획력도 철저하게 수립될 수가 있다.

 

박병천이 남긴 무형유산은 한국 전통연희 예술의 대명사로써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무대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특히 박병천류 북춤은 한국 민속 연희가 대중성과 세계성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는 좋은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는 세계 경쟁 시대에 대응하는 국가의 예술 문화 전략과도 긴밀한 연관 선상에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양종승 민속학자 yangsha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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