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4년 5월 13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나명흔, 박명수, 윤희태, 이상훈, 전선숙, 최동철, 황병무 (8명)
답사기 쓴 날자: 2024년 5월 21일
효석문학100리길 제2-2구간은 제2구간 대화 장터 가는 길의 후반부로서 평창군에서 만든 소책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지역 명소인 토마토유리온실재배단지, 금당산 등산로, 법장사, 대흥사, 땀띠공원과 농촌체험마을인 대화6리 광천마을 등을 둘러보며 옛 추억의 정취와 평창의 따뜻한 인심과 정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이효석 이야기를 이어가자.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효석은 13살 때에 학교장 추천으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당시는 중고등학교를 통합하여 5년제이었음)에 입학한다. 나는 제일고보 다닐 때의 이효석 행적에 관해서 궁금했다.
봉평면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에 가서 문화해설사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한다. “1학년 때에는 하숙을 한 것 같고, 2학년부터는 기숙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지만 명확한 근거 자료는 없다” 이효석은 제일고보에서 이후 평생을 절친한 벗으로 지내게 되는 1년 선배 현민 유진오 선생과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제일고보의 학교 분위기는 문학적인 기풍이 넘쳐났다. 그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체호프의 단편집이었다. 그는 영문으로 된 셀리의 시를 탐독하고서 시에 빠지기도 했으며, 예이츠의 시에서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법을 배웠다. 이효석은 이 시기에 세계문학작품들을 섭렵하여 세계문학의 윤곽이 머릿속에 잡혔다고 한다.
이효석의 <나의 수업시대>라는 작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십사오 년 전 조선 신문학의 초창기였던 만큼 일반으로 문학열이 지극히 높았던 모양이다. 학교 기숙사 안에서도 전반적으로 문학의 기풍이 넘쳐서 자나 깨나 문학이 아니면 날을 지우기 어려우리만큼 한 기세였다. … (가운데 줄임) … 어떻든 주위의 자극이 너무도 세었던 까닭에 십 육칠 세 경에는 세계문학의 윤곽이 웬만큼 머릿속에 잡혔고 세계 문호들의 인명록이 대충 적혔었다.
이효석의 <노마의 십년>이라는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고등보통학교 일 학년 때 이름을 잊었으나 젊은 영어 교사 한 분이 있어서 시간마다 하는 소리가 소설 안 읽는 것은 바보라기에 소설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 것이구나 하고 그것이 아마도 마음속에 어지간히 배었던 모양이다.
이제 답사기로 돌아가자. 신리2리 마을회관에서 9시 15분에 출발하였다. 이날 날씨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기온은 20도 정도. 바람이 약간 있었으나 춥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더운 날씨도 아니었다. 그늘에서는 약간 서늘함이 느껴지는 그런 봄날씨였다. 이날 모이는 장소는 대화버스터미널 주차장이다. 각자 타고 온 차는 넓은 주차장에 두고, 우리 일행 8명은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신리2리 마을회관으로 이동하였다.
제2-2구간은 금당산 동쪽 산자락을 따라 이효석이 걸었던 옛길을 걷는 길이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고 걷는다.
차 한 대가 겨우 갈 수 있는 폭이 좁은 옛길이 이어진다. 왼쪽에 있는 넓은 밭에서 두 사람이 농사일하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밭고랑 사이의 밭이랑에 풀이 나지 못하도록 검정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농기계가 발달하여 비닐을 씌우는 작업도 기계로 한다. 옛날보다 농사일이 훨씬 쉬워졌다. 그러나 내가 봉평에서 살면서 관찰해 보니 농사일은 여전히 힘들다.
최근에는 농사일을 외국인 노동자가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업은 물론이고 어업도 제조업도 유지할 수가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통계 자료를 찾아보니 2024년 3월 31일 기준,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259만 명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5%에 해당한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백안시하지 말고 그들과 사이좋게 공생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오른쪽 경사면에는 애기똥풀이 만발했다. 황병무 선생이 시범 삼아 애기똥풀 줄기를 손으로 꺾으니, 즙이 나온다. 노란 즙이 애기똥과 같다고 해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백과사전을 검색하여 애기똥풀을 알아보니 아래와 같이 나온다.
양귀비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로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몽고 등에 분포한다. 키는 50cm 정도이며 줄기나 가지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의 즙이 나온다. 양귀비과 식물은 줄기를 잘랐을 때 유액을 분비하는 특성이 있으며, 이는 곤충을 퇴치하는 자기방어 수단이다.
잎은 어긋나지만, 날개깃처럼 갈라져 있으며, 갈라진 조각 가장자리에는 조그만 톱니들이 있다. 노란색의 꽃은 5~8월에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가을에 줄기와 잎을 그늘에 말린 것을 백굴채라고 하여, 여름철 벌레 물린 데 사용한다. 꽃말은 ‘몰래 주는 사랑’이라고 한다.
여기 백과사전의 설명은 우리를 더욱 혼란에 빠지게 한다. 사전이란 쉽게 풀어주는 구실을 하는 것인데 ‘산형꽃차례’라고 쓴 것은 풀이가 아니라 더 어렵게 하는 것이다. ‘화서’를 우리말 ‘꽃차례’로 바꾼 것은 다행이지만, ‘산형’은 무슨 말이던가? ‘산형’은 우산살처럼 퍼진 모양을 말한다. 그렇다면 ‘꽃이 우산살처럼 핀다’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 국어사전》,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같은 책을 펴내며 우리말 속에 일본말 찌꺼기를 파헤친 이윤옥 박사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에 미나리아재비꽃은 ‘취산(聚繖) 화서’, 콩꽃은 ‘총상(總狀) 화서’ 담배는 ‘원추(圓錐) 화서’, 토란꽃은 ‘육수(肉穗) 화서’로 핀다고 설명해 놓았다며, 참으로 딱한 노릇이라고 했다. 어떤 아이는 “육수화서”라고 하니까 “육수를 부어 키우는 꽃인가요?”라고 물었다는 얘기도 한다.
조금 걸어가니 서울대 평창캠퍼스의 정문이 오른쪽에 나타난다.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의 정식 이름은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이다. 2014년에 총사업비 2605억 원을 들여서 개원하였다. 대학원의 부설 기관으로서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GBST)이 있고 산하에 6개의 연구소가 있다. 캠퍼스 면적은 84만 평에 달하여 서울대 관악캠퍼스(70만 평)보다 더 크다. 대학원 과정만 있는데, 학생 정원은 1학년이 50명, 2학년이 50명이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교직원들도 관사에서 생활할 수 있다.
나는 언젠가 평창의 향토사학자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대 평창캠퍼스는 거문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거문산(巨文山)의 한자는 클 거, 글월 문이다. 그러므로 아주 오래전 옛날부터 서울대 캠퍼스가 이곳에 올 것이라고 땅이름에 예정되어 있었다.” 듣고 보니, 부정하기도 긍정하기도 모호한 풍수지리적인 해석이었다. 나는 “소년 이효석은 100리길을 걸어 다니면서 거문산의 기운을 받아서 나중에 큰 문인이 되었다”라고 추가하고 싶다.
우리는 정문 앞 도로를 가로질러 작은 옛길로 들어섰다. 서울대 정문을 지나면서 표지판이 광천선굴로 가라고 안내한다. 우리가 걷는 옛길 양쪽으로는 모두 논밭이다. 왼쪽에 놀랍게도 모내기까지 끝낸 논이 나타났다. 밭에는 여러 종류의 작물이 심겨 있었다. 인삼, 양배추, 비트, 브로콜리, 감자, 옥수수 등이 작지만 뚜렷하게 보인다. 일행 중에는 텃밭을 가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이 무엇인지 물으면 누군가에서 금방 답이 나온다. 햇빛을 가리는 비닐지붕을 만들어 재배하는 작물은 인삼이다. 인삼은 햇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차양을 만들어 준다. 그렇지만, 바람은 잘 통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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