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制)와 유(流)를 다시 생각해 본다

  • 등록 2024.07.09 11: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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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8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연수 명창을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1907년 전남 고흥 출신이며 한학(漢學)과 신교육을 받았고, 유성준, 정정렬 송만갑 등에게 판소리를 배워 명창의 반열에 올랐고, <여성국극단> 단장, 판소리 예능보유자, <국립창극단> 단장을 지내며 판소리 확산에 전력하였다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짠 판소리를 <동초제(東招制)>로 부르고 있는데, 이 소리는 서편제와 동편제가 융합되어 있다는 특징과 함께 사설의 전달이나 맺음, 끊음이 분명하며 너름새(동작)가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동초제 판소리>, 또는 <동초 김연수제>와 같이 명창의 이름을 밝히고 그 뒤에 붙어 다니는 제(制)란 무슨 뜻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악보로 전해오지 아니하고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해오는 판소리와 같은 성악 분야의 이름난 소리꾼들을 우리는 명창(名唱)이라 부르며 가야금 산조나 거문고 산조와 같은 민속기악의 이름난 연주자들을 명인(名人)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들 명인이나 명창의 이름 뒤에, 또는 아호를 넣어 동초제, 김연수제, 박상근류, 김죽파류 등등, 제(制)라든가 류(流)라는 이름을 붙여 해당 음악의 전승계보나 성격을 소개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제(制)라든가 류(流)라는 용어는 누구에게나 붙여지는 게 아니다.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신진들은 물론이고, 중견 음악인들에게는 붙이지 않는 명칭이다. 그렇다고 고령이거나 이름을 낸 명창이라고 해서 모두 그 이름 뒤에 붙이는 용어도 아니다. 그러므로 <제>나 <류>는 곧, 그 소리나 악곡이 전해오는 지역, 또는 어떤 명인의 특징적인 구성이나 가락 표현법을 기본으로 하는 말이어서 해당 음악의 전승계보를 알 수 있는 계파(系派), 혹은 류파(流派)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의미를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원 줄거리에서 갈려 나온 큰 갈래, 또는 더 작은 줄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류(原流)에서 갈려 나와 또 다른 갈래가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음악이다. 판소리나 산조 음악은 물론이고, 그 외 각 지방의 고유한 노래나 춤 등, 전통예술분야는 원래의 본류(本流)라 할 수 있는 큰 줄거리가 있고, 여기에서부터 갈려 나왔거나 더 작은 갈래로 갈려 나온 예가 허다하다.

 

 

판소리의 경우는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그 사설 위에 가락을 얹고 장단을 붙여 한 사람이나, 또는 여러 사람이 불러나가는 성악이다. 그런데 이 분야는 어느 한 사람이 이야기 한 바탕, 곧 사설을 새로 쓰거나 여기에 가락이나 장단을 새로 입히는 작업(이를 새로 짠다고 표현함)이 어렵기에 유명 창자들은 기존의 음악적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고쳐 후대에 전해 준 것이 일반적인 예가 되고 있다.

 

5바탕 외에 새로운 판소리를 만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명창의 이름 뒤에, 예를 들면 <권삼득제>나 ,<고수관제>, 또는 <김세종제>와 같이 이름 뒤에 <제>를 붙여 그 갈래를 알 수 있도록 전해오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개념이 바로 <더늠>이라든가, <바디>, 또는 <조(調)>라든가, <파(派)> 등이다.

 

특히 <더늠>이란 말은 특이하게 사설을 새로 짜거나 또는 기존의 곡조를 붙여 부르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바디>는 송만갑제 춘향가, 유성준제 수궁가와 같이 어느 명창이 독특하게 불러오던 판소리 한마당 모두를 가리키는 말로도 써 왔다. 현재 판소리 전승 바디는 20여 개로 보고 있다.

 

제(制)라고 하는 말은 판소리 한바탕을 가리키는 용어 말고도 악조(樂調)의 성격으로도 쓰고 있어 혼란스럽다. 예를 들면 설렁제, 서름제, 호령제, 석화제, 산유화제, 강산제와 같이 음악의 분위기와 관련이 깊은 말이다. 또한 파(派)라고 하는 말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전승되어 오는 판소리의 특성을 가리키거나, 그러한 특성을 전승시켜 오는 명창들의 분파를 뜻하는 말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한국판소리보존회>는 매년 ‘판소리 유파발표회’를 열고 있는데, 여기서 <유파>란 유명한 명창이 전승해 온 다양한 갈래의 소리다.

 

 

이와 같은 제나 유파는 시대에 따라 명인 명창들의 표현방향이나 취향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스승에게 배운 제자들이 처음에는 같거나 비슷하게 부르지만, 경륜이 쌓이면서 자신의 음악을 특징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하게 되고, 이를 후대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락을 특징 지워 거명하거나, 또는 다른 명창들과 구별하기 위해 스승의 이름 뒤에 <제>나 <류>를 붙여 온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창작이나 음악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긍정적 생각이 존재하는가 하면, 오히려 변형이 원형에 못 미친다는 부정적 생각도 감지되고 있는 점으로 보면 하루아침에 선생의 가락을 임의대로 뜯어고치는 것, 이것은 원형과 변형이란 측면에서 더욱 신중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글쓴이의 생각이다.

 

유파를 두고 각자가 보는 시각이나 관점은 특히, 그것이 국가나 지방의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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