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칠현 혜강이 연주했다는 해금

  • 등록 2024.08.13 11: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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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하였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데,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에도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통소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당악(唐樂) 계통에 편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악(鄕樂)에도 쓰였으나 현재는 민간의 시나위나 산조, 탈놀음의 반주음악에 쓰이고 있다. 통소는 취구(吹口, 나팔ㆍ피리 등의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와 지공(指孔), 지공 중간에 청공(淸孔)이 있어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음색이 일품이란 점과 단소보다는 굵은 대나무로 만들어 다소 거칠면서도 힘찬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혜강이 연주했다는 <해금>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보기로 한다. 해금을 연주했다는 혜강은 어떤 인물이며, 또한 그가 연주했다는 해금(奚琴)은 어떤 악기인가?

 

 

혜강은 중국 진나라 사람이다. 중국의 위와 진나라의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는 정치권력의 부패가 극심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에 기회를 엿보며 출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그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바로 죽림칠현(竹林七賢), 곧 7명의 선비가 세상을 등지고, 대나무 숲에 모여 앉아서 거문고를 타고, 술을 즐기면서 탐욕 없는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해금을 연주했다는 혜강이란 인물은 그 7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들은 탁한 속세와 멀리 떨어져 있는 대나무 숲속에 모였는데, 그 7인은 1. 산도(山濤), 2. 왕융(王戎), 3. 유영(劉伶), 4. 완적(阮籍), 5. 완함(阮咸), 6. 혜강(嵆康), 7. 상수(向秀) 등이었다. 이들을 죽림칠현, 또는 강좌칠현(江左七賢)이라고도 부른다. 7인 가운데 특히 해금을 연주했다는 혜강은 《가계(家誡)》라는 책을 통해 자식들에게 예절과 주의사항을 훈계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은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는 또다시 관직에 올랐다는 점으로 세상의 혹평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 죽림칠현은 속세와 연을 끊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호화롭게 살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며, 또는 혼란기에 한적한 도성 교외에서 청담(淸談, 속되지 않은, 맑고 고상한 이야기)을 읊으면서 술 잘 마신 걸로 유명해진 사람들이었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혜강은 끝내 절의를 지키다가 죽었으며, 그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이 그의 사형을 말리려 했다는 점, 등등으로 이 같은 혹평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혜강이 연주했다는 해금이란 어떤 악기인가?

 

해금은 원래 유목민족이었던 해부족의 악기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분명치 않다. 중국의 전통음악에서 아부(雅部) 악기는 주ㆍ은나라 시대의 악기를 말한다. 그리고 호부는 외국에서 들어온 악기이고, 속부는 중국 본토에서 제작한 악기를 말하는데, 해금은 호부에 속하는 점에서 중국이 원산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들어왔음에도 해금을 《고려사악지(高麗史樂誌)》에는 향악기로 편성해 놓기도 했다.

 

 

해금(奚琴)은 두 줄로 된 현악기지만, 피리나 대금과 함께 편성되고 있어서 이를 관악기화 시켜 분류하기도 한다. 해금의 생긴 모습은 큰 대나무의 밑뿌리를 통으로 삼고, 입죽(立竹)이라 해서 해 묵고 마디 촘촘한 오반죽(烏斑竹, 검은 얼룩무늬의 대나무)을 통에 꽂아 세우고는 입죽 상단에 2개의 주아를 붙여 통 아래로부터 연결된 줄을 감는다.

 

활(弓)은 안 줄인 중현(中絃)과 바깥 줄인 유현(遊絃) 사이에 넣고, 울림통 위를 지나가면서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울림통과 두 줄은 작은 괘 곧 원산(遠山)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원산의 위치에 따라 음량의 크기가 달라진다. 대(大)편성의 합주나 관악 합주일 경우는 그 위치를 울림통 가운데로 옮기고, 줄 풍류나 노래반주에서는 가장자리에 놓아 음량을 조절한다.

 

해금이라는 악기에는 일정한 음자리가 없다. 왼손을 올려 잡으면 낮은 소리가 나고, 내려 잡으면 높은 소리가 나며 같은 자리에서도 얼마나 줄을 당기느냐에 따라 그 높이가 달라진다. 조선조 성종 이전에는 줄을 당기지 않고 연주하는 주법에서 그 이후는 줄을 당기는 역안법(力按法)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해금의 용처는 매우 넓다. 궁중은 물론, 민속 전반과 무용 반주에도 피리, 대금과 함께 매우 중요한 악기로 쓰이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산조와 시나위, 창작 국악곡의 독주악기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악기는 특별히 정해 놓은 음자리가 없어서 음감이 정확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고, 음빛깔의 변화가 적어 다소 단조롭다는 평가도 있으나, 자유스러운 주법이라든가 다양한 농현은 이를 잘 보완해 주고 있다.

 

궁중음악의 해금 연주가로는 이왕직 아악부 출신으로 김천흥, 이순봉, 김만흥, 왕종진, 김종희, 김교성, 이덕환 등이 있고, 민속악에는 지영희, 한범수 외에도 수많은 명인이 활동하였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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