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단국대 국악과 창설 40돌 기림 동문연주회 관련 이야기로 악곡 선정에서부터 연습과정, 출연자들의 열의, 등등이 충실한 편이어서 음악회가 알차고, 수준이 높았다고 이야기하였다.
여러 종목이 선을 보였지마는, 특별히 김계희 동문이 생황(笙簧) 협연자로 나선 협주곡, <저 하늘 너머에>라는 작품은 생황 특유의 아름다운 음색도 음색이려니와 협연자의 자신감 넘치는 연주 태도, 그리고 독주악기와 관현악의 신비로운 대화, 등에서 관객은 압도당한 분위기였다.
생황협연곡과 함께 이원희 동문이 연주해 준 퉁소(洞簫) 협주곡 <풍전산곡>이나 박정숙 동문이 출연한 해금협주곡도 다양한 음색과 기교로 객석의 공감을 얻어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추임새를 쏟아낸 순서는 단연 <민요연곡>과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이었다. 민요연곡은 남도민요와 경기민요를 교차로 불러나가는 형식이어서 자칫하면 다른 음악적 분위기가 충돌하여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연습과정으로 이를 무난하게 풀어낸 점도 이채로웠다.
흔히 보면, 한 무대에서 음 체계가 다르고, 표현법이 같지 않은 두 부류의 음악을 교차로 진행해 나가는 형식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런데 계면조로 진행되는 남도창 ‘육자배기’를 부르고 나면, 이를 받아 경기소리꾼들은 평조의 ‘노랫가락’을 부르는 진행이었다. 이렇게 남도창과 경기창은 음계도 다르고, 이에 따라 요성이나 퇴성 등, 표현법에 따른 감정이나 느낌이 서로 다르게 마련이어서 관현악의 조율도 달라져야 한다. 서로 다른 악곡에 따라 표현기법이나 음악적 분위기가 순간순간 변화하기 때문에 동시에 한 무대에서 분위기가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음악을 연출하는 예는 거의 보기 힘든 일이다.
이날, 남도소리 창자들은 어수민(제21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 이윤선(전북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홍장미(동국대 한국음악과 외래교수), 차유라(가야금병창 대제전 일반부 대상) 등의 4인이 반주음악과 호흡을 맞추며 소리와 발림으로 객석의 추임새를 끌어내며 시종일관 흥을 유지해 나갔다.
또한 경기소리에는 김미림(무형유산 경기민요 이수자), 장민지(안비취대회 대상 수상), 제현정(무형유산 경기민요 이수자), 이다빈(전국대회 학생부 최우수상) 등 4인 등, 모두 8인의 독창과 제창으로 이어져 갔다. 남도소리 전공자나 경기소리꾼들은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어색하지 않은 음악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특징을 들어내 주었다.
민요연곡에 이어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인 ‘신모듬 3장’이 장문성 지휘로 올려져 객석의 환호를 받았다. 이곡은 1987년 당시, 중앙국악관현악단의 박범훈 지휘자가 만든 곡으로 사물(四物)놀이에 편성되는 각 악기, 곧 꽹과리, 장구, 징, 북 등의 가락이나 역할 등, 그 특징을 잘 들어낸 유명한 곡이다. 협연에는 초창기 85학번의 타악 전공자, 김병곤과 전승희 동문이 중심이 되어 무대와 객석 전체를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객석에 앉아서 이들의 연주회를 지켜보는 동안, 나는 그들이 보여준 열정과 정성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일까?
나의 마음이 시종일관 편하지 않았고 몹시도 긴장되었던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길게는 40년 전에 만났던 제자들도 있고, 짧게는 15년 전, 현직에서 은퇴할 무렵, 지도한 제자들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섰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더욱 긴장되고 가슴이 뛰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마치, 나이 든 80대 할아버지가 환갑을 넘긴 60대 아들이 외출할 때, “차 조심 하거라”, “길을 걸으며, 한눈팔지 마라” 같은 물가에 내놓은 자식 걱정하듯, 잔소리하고 싶은 것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동문연주회 연습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이를 준비하고 기획하던 제자들로부터 연주회와 관련해서 격려사를 요청받게 되었을 때, 참으로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몇 줄 써 주면 되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했지만, 그 요청을 받는 순간부터 가슴이 서서히 뛰기 시작하였고, 어쩐 일인지 억제가 쉽지 않는 것이었다.
이들은 오래전 학교를 떠난 졸업생들이며, 누가 시켜서 하는 행사도 아니고, 순수하게 학교를 사랑하며 학과를 못 잊어 자발적으로 구상하고, 준비해 온 연주회인데, 왜 나의 가슴이 이렇게 뛰는 것일까?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그 까닭이 도대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분명한 이유는 찾기가 힘든 것이다. 그러다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 졸업생들을 처음 만나게 되면서 사제(師弟)의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그들과 함께해 온 시간들, 함께 한 경험 등등이 떠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