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오른 절 가운데 하나자,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공주 마곡사에 있는 보물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하였다. 또 이와 함께 조선 후기 후불도인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와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하였다.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은 고려후기에 세운 5층 석탑으로, ‘풍마동(風磨銅)’이라고도 불리는 길이 1.8m의 금동보탑을 옥개석 위에 올려 이른바 ‘탑 위에 탑’을 쌓은 매우 특수한 양식을 갖췄다. 특히, 금동보탑은 중국 원나라 등에서 유행했던 불탑양식을 재현하고 있으며, 제작기법이 정교하고 기술적,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석탑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당시 불교문화의 국제적인 교류 양상을 보이는 문화유산으로서 값어치가 매우 크다.
* 풍마동(風磨銅): ‘바람에 닳아서 빛이 난다’라는 뜻으로, 이의봉(1733~1801)이 1761년 1월 1일 북경의 궁궐을 방문한 뒤 《북원록(北轅錄, 북경 견문록)》을 통해 ‘십자각에는 금정(金頂)을 더해 놓아 빛이 유난히 찬란했는데, 이는 금이 아니요 이른바 풍마동(風磨銅)으로 외국의 소산이었다. 금보다 귀하고 바람에 마모되면 더욱 빛나는 까닭에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 마곡사(麻谷寺)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옥개석: 탑신석 위에 놓는 지붕같이 생긴 석재
세운 때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후기 충청과 호남 지역에 성행한 백제계 석탑 양식을 보인다는 점, 2층 탑신에 조각된 사방불의 머리 위 장식이 고려후기의 불상에서만 등장하는 동그란 모양이라는 점, 사방불 가운데서도 동쪽에 새겨진 약사불이 든 약함이 뚜껑이 없이 위가 볼록한 형태로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고려 1346년)에서 보이는 것과 같다는 점 등의 세부 표현기법으로 미루어보아 고려후기(14세기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 사방불: 탑신의 사면(동ㆍ서ㆍ남ㆍ북)에 불상을 새긴 것
또한, 2중으로 세운 석탑의 기단은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백제계 석탑 양식을 보이며, 석탑 지대석에는 게의 눈과 같은 형상의 곡선 모양을 일컫는 해목형 안상(蟹目形 眼象)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현존하는 석탑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로 학술적, 예술적 값어치가 크다.
* 기단: 석탑의 탑신과및 옥개석 등을 받치기 위해 흙, 돌 등으로 쌓은 단
* 지대석: 석탑의 맨 아랫부분에 하중을 지탱할 힘을 높이기 위해 놓은 기초석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陜川 海印寺 靈山會上圖)」는 화면 하단의 화기(畵記)를 통해 1729년(조선 영조 5)이라는 제작 연대와 의겸(義謙)을 비롯, 여성(汝性), 행종(幸宗), 민희(敏熙), 말인(抹仁) 등 화승(畵僧)들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이다. 이 가운데 제작 책임자 격인 의겸을 붓의 신선인 ‘호선(毫仙)’이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기록하여 그의 뛰어난 기량을 짐작할 수 있다.
* 화기: 불화 하단에 제작 연대·봉안 장소·제작 목적·시주자·제작자 명단 등을 적은 것
* 화승: 불화를 전문적으로 그리거나 회화 작업에 종사하는 승려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가운데 석가여래는 크게 부각시키고 나머지 도상들은 하단에서부터 상단으로 갈수록 작게 그려 상승감을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불화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제자들의 얼굴 표현, 그리고 세부 문양에서는 조선 전기 불화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불·보살의 얼굴과 신체를 금으로 칠하고 불·보살을 포함해 모든 존상의 복식 문양을 가는 금선으로 세밀하게 표현하여 화려함을 더하는 등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
이어서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釋迦如來三佛會圖)」는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조선 후기 후불도로, 가운데의 영산회상도, 왼쪽의 약사여래설법도, 오른쪽의 아미타여래설법도 3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존 삼불회도 가운데 3폭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작품으로, 세관(世冠)을 비롯, 신각(神覺), 밀기(密機) 등의 화승들이 1744년(조선 영조 20) 완성해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하였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공간적 삼불회도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불화로, 장대한 크기에 수많은 등장인물을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장중하게 그려냈다. 3폭 모두 사방 테두리 부분에 《조상경(造像經)》에 근거한 원형의 범자문 진언을 배치하여 상징성을 부여한 점도 주목된다.
* 조상경: 불상 조성에 관한 의식과 절차를 정리한 불교 의례서
* 범자문 진언: 고대 인도문자인 산스크리트 문자로 된, 불교의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주문
세 폭의 하단에는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의 정보가 담긴 화기가 있는데, 이를 통해 직지사 화승 외에 인근 절의 화승들이 다수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명의 화승이 함께 작품을 완성하였지만, 유기적인 분업과 협업을 통해 세 폭 모두 한 사람이 그린 듯 통일감이 느껴진다. 또한 화기에는 화승의 역할에 따라 차례를 구분하고 화승의 이름 뒤에는 소속 절이 함께 기록돼 있어 화승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국가유산청은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등 3건에 대해 30일의 예고기간 의견수렴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