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자 명창의 《선녀와 놀량》 펼쳐져

  • 등록 2024.11.19 12: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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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0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몇 차례 단국대 국악과 동문들이 펼친 음악회와 관련하여 내가 몸담고 있던 당시의 이야기들, 예를 들면 1980년대 초, 타악(打樂) 전공과 경서도 민요 전공을 신설하게 된 배경 이야기, 1999년도에는 서울의 한남동 교정으로 이전을 하면서 학과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으며 뜻을 같이하는 선후배 및 큰 제자들과 함께 <한국전통음악학회>를 설립하고, 국악학 학술대회의 개최, 학술지 발간, 국제적인 학술교류를 해 왔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 활동으로는 미국의 <UCLA>와 공동으로, ‘Korean Music Symposium’을 해마다 개최해 왔으며 여름에는 중국의《연변예술대학》과 정례적인 ‘학술 및 실연(實演)교류회’를 20회 이상 치러 왔다는 이야기, 또한, 2005년도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시행되어 온 <국악분야 예술 강사의 지원사업>의 실행 등도 매우 보람 있는 활동이었는데, 이러한 결과는 대학 당국의 관심과 동료 교수 및 몇몇 졸업생들의 헌신적인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 졸업생 제자들이 진실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이웃을 섬기는 인품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국가 무형유산의 한 종목인 <선소리 산타령>의 전승교육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건자(李建子) 명창의 <선녀와 놀량> 발표회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면서 대한민국은 잔치 분위기가 절정에 이루고 있다. 이건자의 발표회는 올해로 12번째인데, 이번에는 성북구 삼선동 소재, 분수마루에서 펼쳤다.

 

국악계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산타령 발표회를 제자들과 함께 열고 있는 이건자 명창은 뛰어난 실기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예능인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은 그가 지닌 실기능력이나 소리실력보다는 순수하면서도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후배와 제자들을 대하고, 지극 정성으로 선배, 선생을 모시는 겸손의 소리꾼으로 더욱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명창은 2012년부터 성북구에서 사설 국악원을 운영하기 시작하며 제자들을 키워 왔고, 애호가들과 함께 하면서 지역의 봉사활동을 펼쳐 오며 해마다 개인 발표회

를 열어오고 있는데, 그 이름이 바로 <선녀와 놀량>이다.

 

‘선녀’와 ‘놀량’은 서로 어떤 연관이 있기에 해마다 이 이름을 선택한 것일까? 양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의 주무대가 바로 <산-山>이라는 점이다. 곧 ‘선녀’가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오는 아름다운 존재가 천사라면, ‘놀량’은 산타령의 첫 곡 이름으로 아름답고 멋진 산을 보며 선녀가 부르는 노래로 연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북구가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지역민들에게 맑은 공기, 맑은 마음, 맑은 노래를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이번 무대에는 성북국악협회 농악분과의 비나리를 비롯하여 경기지방과 서도지방의 산타령이 울려 퍼지고, 설장구와 함께 대표적인 민요 한마당이 주민들과 함께 할 것이며, 좌도 필봉 농악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여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건자 명창을 떠 올리면, 오래전 중국 교류회에 참석한 그가 하소연이 담긴 다음과 같은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오른다.

 

“선생님, 제가 이력서를 쓸 때마다 그 ‘학력란’ 메우는 일이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못 배운 것도 서러워 감추고 싶은 마음인데, 그것을 세상에 공개해서 부끄러움을 내보이자니 여간 싫은 일이 아니었지요.

 

(가운데 줄임)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제 더 늦으면 더 많은 아픔을 겪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잠을 자도, 어디 좋은 데를 가도, 즐거움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뒤늦게나마 용기를 내어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남들의 눈을 피해 새벽 4시에 수업을 듣기 시작했지요.

 

배운다는 것이 좋기는 했지만, 그 어려웠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이를 악물고 참고 어려운 시간을 힘겹게 지나면서 고입(高入)도 통과했고, 드디어 대입(大入) 검정에 어렵게 합격이 되었지요. 그리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그리고 대학 졸업 뒤에는, 대학원의 석박사 통합과정까지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학구열이 대단하다는 점을 알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이건자 명창이야말로 경기 소리꾼으로는 드물게 실제의 기능과 학술적 이론에 충실하면서도 겸손한 명창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20여 년 전부터 성북구에 사설 <국악원>을 설립하고, 대중을 상대로 강습과 강의, 공연 등을 통해 국악 보급에 힘쓰고 있는 이건자 명창의 끝없는 도전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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