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수렁에 빠진 세 나라, 출구전략 찾다

  • 등록 2024.12.16 11: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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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와 타협,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김경태, 동북아역사재단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출구전략.

어떤 상황에서 빠져나갈 때 쓰는 전략이다. 전진보다 후퇴가 더 어려울 때가 있듯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무사히 탈출하기는 무척 어렵다. 특히 양자관계가 아니라 셋 이상이 얽힌 다자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조선, 명, 일본이 전쟁을 벌인 임진왜란이 그런 상황이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어차피 확실한 승부를 내기는 어려워졌다. 남은 것은 서로 적당히 체면을 지키며 본국으로 철수하는 것이었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전쟁보다 어려운 것이 강화 협상이었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연구교수인 김경태가 쓴 이 책, 《허세와 타협: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은 이런 딜레마에 처했던 세 나라의 상황을 자세히 보여준다. 협상에서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허세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있는 척해야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허세만 부릴 수는 없다. 결국 타협을 해야 한다.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건너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는 조선에 직접 건너와 일본군을 지휘할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끝내 조선으로 넘어오지 않았고, 현장에 있는 장수들이 보고하는 불리한 전황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에 불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그는 빠르게 전략을 바꿨다. 주어진 현실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한편 나고야에 도착한 명나라 교섭단 일행이 받아 든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은 충격적이었다. 명나라와 일본의 혼인, 무역 재개, 화친 서약, 조선 4도 할양, 조선 왕자와 신하를 인질로 보낼 것 등이었다.

 

이는 마치 일본이 전쟁에 승리하기라도 한 듯한 강화 조건이었다. 히데요시는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거만한 조건들을 내세웠는데, 이는 교섭을 유리하게 펼치기 위한 일종의 허세였다.

 

말도 안 되는 조건에 평행선을 달리던 교섭이 막바지에 이르자 히데요시는 본심을 내비쳤다. 영토나 보물과 같은 실물을 요구하지 않겠으며, 무엇보다 명예가 중요하니 영토를 줄 수 없다면 이를 대체할 무언가를 달라고 하였다. 그가 계속해서 요구한 것은 명의 황녀였다.

 

명의 황녀와 같은 고귀한 사람을 일본에 오게 하고 이를 일본인들에게 ‘항복의 대가’인 것처럼 선전하여 승리로 포장하려는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이 불리한 상황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고, 항상 승리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유난히 공연을 좋아하고 선전에 능했던 그의 면모가 드러난다.

 

강화 교섭은 명과 일본 사이에서 진행되었고, 조선은 강화 교섭에 개입하지 못했다. 교섭을 담당하던 명군 지휘부가 교섭에 반대하던 조선을 배제한 것이었다. 조선이 강화 교섭 자체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나, 교섭보다는 무력 보복을 이어가고자 했다.

 

지지부진하던 교섭은 결국 결렬되었고,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교섭을 주도하던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은 옥에 갇혔다. 명나라 쪽 책임자로 교섭에 참여하던 심유경은 북경으로 압송된 뒤 처형되었다. 명 조정에서 기존의 강화 교섭은 폐기되고 새로운 파병이 이루어졌다.

 

상황은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급변했다. 히데요시가 죽기 전에 남긴 철수 명령, 현실적인 전쟁 상황, 군사적 고려 등을 종합했을 때 일본군은 무조건 철수해야 했다. 일본은 거의 교섭권을 일선 장수들에게 내던지다시피 하며 타협을 마무리지었다.

 

(p.167)

최후의 철수 교섭을 예외로 두면 임진왜란 중에 진행된 강화교섭은 결국 성공하지 못하였다. 전투에서의 패배나 강화 교섭 실패에 대한 책임은 이를 주도한 이들이 져야만 했다. 그러나 명의 황제, 조선의 임금,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과 교섭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역사가 늘 그렇듯, 전쟁을 이끈 최고 지도자는 책임에서 빠져나가고 휘하 장수들과 신하들이 줄줄이 문책당했다. 비록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지언정 전쟁이 끝나고 나면 각종 비난과 책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교섭자의 운명이다.

 

지은이는 전쟁이 한창이거나 끝난 이후에도 교섭은 존재했으며, 전쟁의 역사를 읽을 때 전투와 더불어 항상 전쟁을 끝내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에도 눈길을 줄 것을 당부한다. 지은이의 말대로, 모든 전쟁에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이 뒤따른다. 잘 싸운 전투도 기억해야 하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해 교섭하고 애썼던 역사도 함께 기억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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